'더 패키지'가 우리사회에 주는 메시지

jtbc <더 패키지>가 인기리에 종영을 맞았다. 100% 사전 제작 드라마로 <태양의 후예> 이후 드라마 성공 공식을 보기 좋게 깨뜨린 jtbc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수작 드라마였다. 연령대와 각자 처한 사정이 다른 네 쌍의 당면한 삶의 문제를 여행자의 시선이라는 객관적 장치를 통해 조명해 보는 완성도 높은 힐링 드라마로, 인생과 관계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대사와 한장면 한장면을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작가주의적 연출력이 돋보이는 예술 드라마였다.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프랑스의 명소인 파리의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중세 성곽 도시 생말로, 노르망디의 예술혼을 품은 도시 옹플뢰르와 1300년의 서양의 신비를 간직한 수도원 몽생비셸, 소박한 고흐의 무덤이 있는 오베르와, 아름다운 클래식 자전거 길이 펼쳐진 도빌 등 눈요기 드라마라는 명성답게 UHD 시대에 걸맞는 파노라마적 영상미를 장착한 드라마였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천성일 작가가 의도한 대로 모든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여주 윤소소 역을 소화한 이연희는 여행가이드로 더 이상 대체 카드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자기 사전에 없던 엉뚱남 산마루 역을 맡아 사고유발자이자 훌륭한 연인은 훌륭한 소울메이트라는 점을 보여주었던 정용화의 인간적인 연기도 여운이 남는다. 흙수저 N포세대에게 버거운 사랑과 결혼의 무게감에 흔들리는 서른 즈음의 갈등을 연기한 한소란 역의 하시은과 성공의 불확실성 속에서 프로포즈를 주저하는 청년사업가 김경재 역을 맡은 최우식의 갈등 연기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최연장자 커플을 연기한 정규수와 이지현의 연기가 돋보인다. 생존을 위해 일하고 다투는데 익숙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데 영 서투른 우리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기한 오갑수 역의 정규수와 주방과 식당에서 솥뚜껑 운전수이자 생업조력자로서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가정을 부양해온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을 연기한 한복자 역의 이지현의 연기가 매우 기억에 남는다



시종일관 수상한 관계를 보여준 정연성-나현 커플은 미스테리 상황을 연출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감초 역할을 했다. 커플의 정체가 밝혀진 후 시청자들이 뒤로 넘어졌다는 후문. 류승수의 연기력이야 워낙 뛰어나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고, 엣지 있고 시크하며 세상에 물든 듯하면서도 순수함을 보여주는 나현 역의 박유나의 연기도 이채로웠다. 박유나는 개성있는 배우이다. 장점을 잘 살려나갔으면 좋겠다.

 

<더 패키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소감은 한마디로 눈 호강 한번 잘했다!”는 평가다. “810일 프랑스 여행 한번 잘했네!” 그리고 이연희와 정용화에 대해서는 인생작품을 만났다는 평가였다. 운명과 우연, 신의 섭리와 개인의 자유의지가 조합된 사랑의 신비를 잘 형상화 시켰다는 것이다. 미카엘 천사의 다리 밑에서 때론 퐁네프의 연인 같고 때론 라스트 콘서트의 리처드와 스텔라처럼 프랑스 영화같은 사랑을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자가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프랑스 관광도시의 화려함이나 배우들의 빵빵한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극중 배경이 되는 프랑스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천성일 작가의 현실 인식과 비판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등장인물들이 가진 인생의 문제들과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810일이라는 패키지여행으로서 우리 시청자들에게 여행자의 시선이 부여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많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드러난다.


 

 

여가를 위해 일하는 사회

Vs. 일하기 위해 여가를 주는 사회

 

<더 패키지>에서 산마루는 사내 연예중인 오예비와 연차휴가와 휴일을 붙여 810일짜리 프랑스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한다. 그러나 약속 당일 예비는 오지 않고 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휴가 첫날밤부터 직장 상사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는다.

"신입사원이 열흘이나 휴가를 가냐. 왜 이렇게 용감해. 미쳤냐!"

"전 직원 야근인데 나 엿 먹으라 이거냐?

"오늘까지 보고서 올려! 하기 싫으면 관둬!"

이에 산마루는 새벽2시에 노트북을 켜고 과장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술김에 휴가를 가자고 약속해 놓고 공항에 나오지 않은 애인이나 휴가 결재를 해주고도 휴가를 갔다고 나무라는 직장 상사, 어찌 보면 앞뒤가 맞지 않고 생뚱맞은 상황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안다. 그들이야 말로 직장 생존율이 높은 처세의 달인이란 것을.

 

오히려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산마루의 상사 얘기에 더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어찌 감히 신입사원이 휴가를 열흘이나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가만 따져보면 산마루는 잘못한 것이 없다. 법정 휴가 일수에 맞춰 휴가계획서를 올렸고, 결재를 받아 휴가를 왔을 뿐이다.

 

노래하는 베짱이들의 나라 프랑스

Vs. 일하는 개미들의 나라, 한국

 

<더 패키지>에서는 바캉스의 나라 프랑스와 세계 최장 근로시간의 한국이 대비되어 어디가 진짜 정당한 사회인지 묻는다. 여행지가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는 짧은 근무시간과 긴 휴가, 여성은 물론 남성에 대한 긴 육아 휴직제도 등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35시간 근무에 연간 5주의 연차 휴가가 주어지지만 이건 최소한 기본조건이고 대부분 7주 휴가를 받으며, 9주 이상 휴가를 주는 회사도 많다. 여기에 가족행사 관련 특별휴가와 출산 휴가가 있고, 6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 주어지는 6~9개월간의 안식휴가가 있다. 물론 안식휴가는 무급이지만 휴가 후 동일 회사, 동일한 자리로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휴가를 간다고 상사와 주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휴가는 직원의 당연한 권리이고, 프랑스인들은 휴가를 위해 산다고 할 만큼 알차게 휴가를 누린다.

 

그에 비해 한국은 15일의 법정 연차 휴가가 주어지지만, 제대로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 내규로 5일만 주는 회사도 있고, 성과에 따라 무제한 휴가를 부여하는 회사도 있지만 성과제에 따라 휴가를 주는 회사는 아예 휴가를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휴가를 가는 것도 눈치작전이 필요하다. 결재 받기 위해 상사의 심기를 살피고 주변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좋은 날짜는 상사와 선임 차지이고 신입들은 여름의 끝자락 가을바다에 발자국만 찍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휴가를 떠났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인터넷과 SNS상에 수시로 업무지시가 내려진다. 휴가 복귀 때는 미안한 마음에 선물을 한보따리 상사와 동료들에게 돌려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라고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제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직종은 공무원뿐이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할 때 즈음이면 이미 자신의 책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후다.

 

<더 패키지>는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듯 아옹다옹 사는 걸까? 이처럼 바쁘게 쉴 틈 없이 늘 쫓기며 살아온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 삶의 여백도 없이 쉼표도 없이 끊임없이 연주되는 노래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더 패키지>에 가장 연장자 커플인 오갑수-한복자 커플이 가르쳐 준다. 쉬는 날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서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지친 몸과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이다. 한복자씨는 평생 꼰대 남편의 뒷바라지와 고깃집에서 쉼 없이 일한 삶의 결과가 암이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필자 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생애를 돌아보니 일할 때와 아플 때 두 가지 모습뿐이었음을 알게 되어 몹시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다.

 

한국 CEO들의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일중독 사회인지 알 수 있었다. 일로 쌓인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는 오로지 일밖에 모른다는 것이 리더십의 소양 부족이 아닌 창업주의 미담으로 전해져 오는 사회 풍조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에서 여가는 개인의 행복이란 삶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자아실현의 시간이다. 그리고 회사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여가란 비노동의 시간이며 생산적인 일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불과하다. 불필요한 시간이기에 되도록 줄일수록 좋고 회사의 우선순위에 따라 언제나 침범 당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글자를 깨우치지도 못한 미취학 아동들이 접하는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미는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놀다가 추운 겨울을 맞는다. 개미는 모아둔 양식을 먹으며 편히 보내고, 베짱이는 얼어 죽었다는 내용인데,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절반의 진실이라 한다. 개미들이 겨울에 완전히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맞지만, 개미들이 여름에 모두 열심히 일만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에 불과 대부분은 시늉만 한다. 그것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도 하루 6시간만 일한다. 이것은 일부 개미들의 천성과는 별개인 것이, 열심히 일하는 개미만 따로 분리해서 일을 시켜봐도 20%만 열심히 일하였다고 한다. 80%는 늘 쉬고 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히 일하는 생물로 성경의 잠언에도 등장하는 개미지만 알고 보니 순 태반은 휴가 중이었던 것이다.



 

일본 개미연구가 진화생물학 교수 曰

일정 비율 이상 쉬는 시스템, 지속 가능한 사회의 조건

 

그러나 이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일본의 훗카이도 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 진화생물학 교수에 의하면 개미집단에서 항상 일정 비율의 일하지 않는 개미가 존재하는 것은 집단의 공멸을 막기 위한 집단존속을 위한 방편이이라고 한다. 그 예로 노는 개미들만 따로 모으면 그 중에서 일정 비율의 개미들이 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하는 개미가 피로해 졌을 때 놀던 개미가 대신 일하는 것이 개미사회의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모든 개미들이 100% 일을 했을 때를 가정한 결과 단기적으로는 높은 성과를 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개미들이 집단 공멸을 맞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즉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일하지 않는 개미의 공존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본이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2017 OECD 고용동향에 의하면 한국 1인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2, 35개국 평균 1764시간보다 305시간이 많았다. 이를 법정 노동시간인 8시간으로 나누면 OECD 평균보다 38일을 더 일한 셈이라고 한다. 2000년도에서 2008년도까지 우리나라는 최장근로시간 부동의 1위였다. 정부 차원에서 주당 근무시간을 낮추고 초과근무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 시켜왔지만 지금도 항상 멕시코와 1,2위를 다투고 있다.

 

장기간의 노동시간과 짧은 휴가 시간은 개인의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이슈화하여 다룬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더 패키지>는 개인의 휴가와 여가적 삶이 보장되는 프랑스 여행 중에 벌어진 산마루의 직장 해프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일중독증과 조직사회의 비인간화를 비판한다. 이러한 직장문화의 현실적인 문제를 실감나게 다룬 것은 <더 패키지>가 최초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사회

Vs. 남의 그림 속에 사는 사회

 

<더 패키지>에서 윤소소는 여행자들을 이끌고 고흐가 자신의 그림을 완성한 오베르를 방문한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화가였음에도 불구 생전 자신의 그림을 하나도 팔지 못한 고흐의 일생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조용한 고호의 무덤가에서 노트를 나눠 주며 자신의 꿈을 적어보도록 사색의 시간을 주는데.....

 


프랑스는 수많은 화가를 낳은 나라이다. 그리고 예술의 자유를 찾아 전 세계에서 많은 화가들이 찾아온 나라이기도 하다. 오베르에서 생애를 마친 고흐도 프랑스 출신이 아니라 고향은 네덜란드 준데르트 태생이다. 전세계에서 화가들이 프랑스를 찾아온 것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예술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장자크 루소의 <에밀>이 씌여진 나라답게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자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받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진정 자신의 꿈을 그려 나갈 수 있는 사회인가? 나의 재능과 개성에 따라 꿈을 꾸고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는 사회인가?

 

우리 사회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남 다른 특별함과 개성을 경계하는 사회이다. ‘남자는 이러해야한다’, ‘여자는 이러저러 해야한다는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그 기준은 언제나 이다. 남들이 이 정도로 살아가니까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삶의 기준이다. 그리고 남 보기에 무시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삶의 마지노선이다.

 

<더 패키지>에서 7년째 연애 중인 오래된 커플 김경재와 한소란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획일주의의 희생자이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가장 평범한 직장여성이라 칭하는 한소란은 그렇고 그런 집안과 그렇고 그런 학교, 그저 그런 직장에 들어와 평범한 교육, 평범한 환경에서 성장한 까닭에 늘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그래서 항상 남의 얘기와 가십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 누군가에게만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고, 누구나 하는 사랑이지만 자신만은 특별히 사랑받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여성이다.


 

그러나 7년째 연인 관계에 있는 경재는 늘 미덥기만 하다. 무언가 얘기하면 늘 나중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걸까? 그녀는 경재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사랑해서 만나는 관계가 아닌 헤어짐이 두려워 만나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경재 때문에 결국 소란은 변비에도 걸렸다. 여기서 변비란 서른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그녀의 정체된 인생을 상징한다.

 

따지고 보면 사랑이 제일 쉬웠다고 말하는 김경재는 대입, 졸업, 취업, 결혼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대한민국을 사는 흙수저 청춘이다. 그나마 경재는 모든 것을 달관한 일본의 핫토리 세대처럼 이번 생은 끝났다고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보다는 낫다. 그래도 나중에~’하자는 의욕은 있으니까 말이다.

 


경재는 왜 한소란에게 나중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지금의 모습으로는 우리 한국사회가 규정한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프로포즈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많다.

 

가령 예를 들면,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하자고 할 때는 최소한 이 정도는 갖춰야 한다. 서울 근교 1시간 이내 17평 이상 전세 아파트와 중견 기업 대리급 이상에 연봉 3000천 이상, SUV 자동차 1, ...... 이런 식이다.

 

경재는 그런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다. 오랜 시간 자신을 기다려준 소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고 싶었다. 한마디로 남들만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경재는 우리 사회가 짜놓은 틀 속에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불가능한 싸움을 경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로 평범한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특별하다.

다만 사랑은 지금 이곳에만 존재한다.

 

만일, 소란이 좀 더 그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고, 자신 속에 있는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타인의 인정이나 남들과의 비교와는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면 변비를 통한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경재가 이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프로포즈 자격증과 결혼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느라 현재 눈앞에 있는 소란의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사랑을 매스미디어와 드라마가 만들어낸 환상과 이미지 속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잘나고 잘 사는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중산층 이하 남녀의 세상에선 사랑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사랑을 해방시킬 필요성이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프랑스 사회로부터 벤치마킹해야 한다. 프랑스의 시민 혁명의 모토는 자유, 평등, 박애였다. 진정한 민주화는 정치적으로 왕정을 단두대에서 끝을 내거나 혁명으로 독재권력을 무너뜨렸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학벌이나 지역, 재산,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할 자유가 있고 동등된 인격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휴머니스트가 꿈꾼 사회는 이 세상 젊은이들이 신분과 부모의 배경과 상관 없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유롭게 사랑하고, 평등하게 사랑하자. 아낌없이 사랑하자. 지금 이대로 사랑하자.


 

 

불공정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개인의 출발점

내부고발자의 용기와 주변의 보호

 

우리 사회는 쏠림현상, 즉 편중현상이 강하다. 이것이 대세라고 하면 모두 한 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하다. 그만큼 집단성이 강하다. 집단적인 흐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다른 소수 의견과 다른 방향은 철저히 무시된다. 집단의 논리, 조직의 논리,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과 직원과 가족 구성원의 꿈과 양심과 개성은 부차적이다.

 

우리나라에 내로라는 대기업에서 저질러진 탈법과 비자금 조성, 정경유착의 대형 범죄들을 한번 돌아보자.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이 엄청난 경제범죄에 대해 언론은 마치 모든 문제들의 근원과 책임이 재벌 총수와 피라밋 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몇몇 인물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 모든 자금 세탁과 불법 자금 조성과 관리, 전달에는 수많은 월급쟁이들이 관여하고 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도 공범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구현을 부르짖고 있으나 그러한 사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부정과 부패를 알고 있는 월급쟁이들이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기보다 자신의 대기업 사원이라는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공범 집단에 소속이 되어 공공의 정의보다 한 단계 낮은 조직의 논리 속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더 패키지>에는 그러한 인물들 간의 투쟁과 갈등의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세계제약의 전략기획실 김과장 산마루의 전 여친 오예비 대리는 기업의 조직논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회사의 벽에는 사훈이 걸려있다. 河己失音 官頭登可(하기실음 관두등가) 원래 한자 뜻은 물 흐르듯 조용히 열심히 하면 어찌 높은 관직에 오르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의역하자면 일을 순리대로 풀어 잡음 없이 열심히 하면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인데, 작품에서는 이중적인 의미로 쓰였다. 발음 그대로 하기 싫으면 관두든가?’와 회사에서 시키는 일에 잔말 말고 따르라는 의미로 쓰였다.

 

<더 패키지>에서 산마루는 개인 양심에 따라 아프리카 아동들을 실험군으로 사용한 회사 내부 비밀을 고발하려다 오히려 회사측과 애인으로부터 해고와 실연을 당하게 된다.

 

회사 비리를 담은 파일을 애인과 함께 한 커플사진에 암호화 시켰던 산마루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자신과의 커플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삭제시키는 오예비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더 패키지>를 볼 때 시청자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은 우리나라에서 공룡과 같은 대기업을 상대하는 개인 내부고발자에겐 출구가 없다는 것이다. 조직에선 괘씸죄가 적용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라 생업이 막히고 사회적으로 보호막이 되어줄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더 패키지>는 회사를 퇴사하고 전 여친과의 관계를 끝낸 산마루가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여행을 떠나고, 이젠 가이드가 아닌 여행자로서 세계 여행을 떠난 이연희가 프랑스에서 극적 재회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작품으로 볼 때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사회를 보면 그 다음에 연결되는 그 둘의 미래가 꼭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시청자들과 국가에 남긴 숙제가 아닌가 한다. 국가 전체의 공공의 선과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기업의 집단이기주의에 맞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개인의 용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좋은 조상을 둔 나라

Vs. 좋은 후손을 둔 나라

 

<더 페키지> 4회에서 소소는 여행자 일행들을 이끌고 몽셀미셀에 입성한다.

 

흔히들 프랑스 사람들은 조상을 잘 만났다고 하는데요.

조상 잘 만난 덕에 엄청 나게 많은 돈을 버니까요.

하지만 프랑스는 후손을 잘 만났죠.

작은 거 하나도 지키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더 패키지> 윤소소에게서 배운 귀중한 깨달음이다. 필자는 중국이나 프랑스,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하여 편하게 돈을 벌고 있는 국가들을 보며 많이 부러웠었다. 정말 그들은 좋은 조상을 두어 편하게 사는 구나 그리고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관광지와 같은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영광이라 생각했다. 파리와 로마는 도시 그 자체가 문화예술품이다. 이런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돈 한푼 내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평생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지금의 프랑스 사람들이 좋은 조상을 만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조상들이 좋은 후손을 만난 것이라는 윤소소의 말을 듣고 눈이 번뜩 뜨였다. 그리고 현재의 프랑스인들이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치뤘던 많은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문화에 대해 수용자 중심의 사고를 갖고 있다. 문화란 소유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는 것이 문화이기에 세상의 모든 문화재는 공공재라고 생각한다. 혹시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모나리자의 미소라는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첫째, 그림을 그린 다빈치

둘째, 그림을 돈으로 구입한 실소유주

셋째,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고 감동하고 이해하며 즐길 줄 아는 향유자

 

필자는 이 그림의 진정한 소유자는 셋째 모나리자의 미소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느낄 줄 아는 향유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해 국경선을 긋거나 민족주의적 사고를 투영하여 니 것 내 것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는 프랑스인의 자세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포함해서 수많은 전쟁의 중심지였다. 현대에 와서도 12차 대전을 치뤘던 국가이다. 그럼에도 1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몽셀미셸과 같은 유적지를 보존해 냈다. 이것은 단순히 관광자원을 지킨다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치의 지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유럽과 미국의 차이에 대해서 미국 사람들은 유럽의 건축물들의 벽돌 한장 한장 속에 담긴 역사적 흔적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유럽 광장과 도시의 벽돌 한장 한장에는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제 인물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배여 있다. 사실 여행은 그러한 역사적 때가 묻은 도시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앞으로 필자가 사는 동안 프랑스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일 기회가 된다면 <더 패키지>에 나왔던 관광노선을 따라 산마루와 윤소소의 러브스토리를 따라 걷는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 프랑스 혁명의 최대 유산은 남녀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이니까.


이미지 출처: jtbc 더 패키지 공식 홈,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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