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이로운 미스캐스팅으로 드러난 한국 드라마 제작의 민낯?

연일 시청률과 화제성에 있어 고공행진을 구가하던 JTBC <부부의 세계>가 뜻하지 않은 악재를 만났다. 극중 이태오와 여다경의 딸 제니 역으로 출연 중인 아역배우 이로은의 미스캐스팅 논란이다. 


문제는 17일 방송된 7회분에서 불륜으로 이혼 후 부부가 된 이태오(박해준 연기)와 여다경(한소희 연기)이 떠난지 2년 만에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 제니(이로은 연기)를 데리고 화려하게 고산으로 컴백한 장면이 발단이 되었다.



문제는 제니가 드라마 설정상 2년도 채 안된 아이일텐데, 화면 속의 아이는 4~5세는 훌쩍 넘어 보였다는 것. 아빠 이태오의 팔에 안겼을 때 아빠의 이마에 뽀빠이 힘줄이 생길 정도로 무거워 보였고, 아이 전용 유모차를 탈 때는 마치 과적 차량처럼 유모차가 꽉차 보였다는 것.


이 장면에 문제를 느낀 일부 네티즌들이 ‘부부의 세계 논란의 장면’이란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리자 수많은 댓글이 이 장면을 풍자하게 된다.


“엄마 아빠가 장신이라 슈퍼 베이비 탄생.ㅋㅋㅋ”

“빵 터졌다. 다리가 유모차 밖을 나오다 못해 접혀있다.”

“유모차는 무슨, 뛰어다니겠구먼.”

“2살 치고는 애가 너무 크다. 저러다 한글도 읽겠다.”

“성의가 없네. 그냥 걸음마 하는 애기 하나 섭외하지”

“PD가 미혼인가”

“LTE급으로 자란 자이언트 베이비”


한편 맘카페와 SNS상에서 딸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본 이로운의 모친은 자신의 SNS상에 딸의 미스캐스팅 논란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고백하며 악플에 대한 자제를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려 미스캐스팅 논란과 함께 출연자 가족의 악플 대응 논란으로 이 문제는 네이버 다음 실시간 이슈 상위권에 오르는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면 간단한 문제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 아역 배우를 둘러싼 시청자들의 악플과 그에 따라 상처를 입은 한 아역 배우 어머니와의 갈등 문제로 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방송계에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악플에 얽힌 간단한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해 들어가 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이로운 미스캐스팅 심층 분석,

한국 드라마의 전근대적 제작 과정의 문제점 노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행복과 사랑으로 포장된 잘나가는 한국 명망가 가정의 위선을 걷어내고 외도와 불신으로 가득찬 현실 부부관계의 민낮을 공개했다면 이로운 미스캐스팅 사건은 한국 드라마 제작 과정의 졸속주의와 편의주의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로운 미스캐스팅 사건의 핵심은 넷플릭스 시대, 무제한 방출되는 콘텐츠 경쟁 시장에서 하늘 높이 치솟는 드라마 시청자들의 눈높이 수준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 한국 드라마 제작 공정의 현주소이다. 이 사건은 한국 드라마의 정체된 제작 관행과 제작 편의주의가 만들어낸 낙후된 한국 드라마의 제작 과정의 민낯을 보여준다.  


K-pop과 함께 한류의 한축으로서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성장과 넷플릭스와 왓챠 등 주문형 콘텐츠 서비스의 확산에 따라 오늘날 드라마 시청자들은 작품을 선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고 있으나 제한된 제작비와 시간에 맞춰 많은 작품을 찍어내야 하는 작업 현장의 제작 관행은 그 이전 시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부부의 세계> 이로운의 미스캐스팅은 더 수준 높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더 빠르고 수월하게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제작진의 의지가 상충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선택 기준은 드라마의 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현장 제작진들의 제작 관행은 아직도 드라마의 양에 초점을 맞춘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드라마 소비자들의 기대치를 따르지 못하는 드라마 현장 제작진들의 관성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이 이 글이 지향하는 방향이라 할 수 있겠다.




정말 악플의 내용은 

제니를 향하고 있을까?


<부부의 세계> 악플 논란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어떤 악플을 달고 있는지 익명성을 표방하여 자유로운 댓글쓰기가 가능한 82cook 시청자들의 반응 내용을 정리해본다.


“얘가 커도 너무 크다”

 “유모차에 너무 꽉차게 애를 우겨 넣어놨다” 

“역에 안어울린다”, 

“2살인데 애가 너무 큼 말 못하는 척까지 해야할 듯 ㅠㅠ” 

“성장속도 실화냐 자이언트 베이비다 유모차가 낑긴다”

“실제 나이도 4살이면 미스캐스팅이다” 


댓글의 내용은 대부분 아이의 덩치가 크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부 외모가 예쁘지 않다거나 배역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역으로 아이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반론이 더 많았다.


또한 댓글 중에는 본의 아니게 아이에게 화살이 돌아간 것이 안쓰럽게 여겨진다는 글들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실제 아이에 대한 악플로 보기는 어려운 글들이었다.


그런데 이 댓글들에 이로운의 실제 어머니는 자신의 SNS를 통해 캐스팅논란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아이의 성장한 모습이 맡겨진 배역의 아이와 달리 크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아이에 대한 SNS상의 구설들이 아이와 자신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말이었다. 특히 아이가 선의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왜 제작진을 향한 정당한 비판이

아역 배우에 대한 악플로 둔갑한 것일까?


사실 이로운 캐스팅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악플인지 정당한 지적인지 이번 사안에서는 구분하기 애매하다. 하지만 언론지상에서 악플이라 지칭하고 있음으로 이 글에서도 일단 악플이라고 용어를 정리하고 논리를 전개해 가도록 하겠다.


논란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를 보면, 겉으로 드러난 아이에 대한 평가를 볼 때 부정적 내용이 많아 악플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시청자들의 주 공격대상이 제니를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맘카페 회원들이 얘기하듯 악플이 지목하는 대상은 아이가 아닌 제작진이다.   



역시 82쿡의 익명의 시청자들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아 논란의 대상이 제니가 아니라 제작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애한테 악플 단 것도 아니고 제작진 미스캐스팅이다. 아이가 너무 크다 한건데..” 

“애가 크다고 그랬지 악플은 못봤어요” 

“애한테 악플 달진 않았겠죠.” 

“근데 제작진은 왜 그랬을까요?” 등등


시청자들의 의견은 아이가 크다는 객관적 사실을 명시했을 뿐 그 평가가 아이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실 아이가 큰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맘카페 회원들이라면 4살 짜리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맘카페 댓글러들은 오히려 이 논란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제작진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제작진은 제니(이로운) 캐스팅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일반적인 미스캐스팅보다 훨씬 질적으로 아쉬운 미스캐스팅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스캐스팅은 주로 주인공 캐스팅과 신인 캐스팅에서 발생된다. 주인공 캐스팅에서는 배역에 맞지 않은 인물을 캐스팅한 것이 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워낙 많은 프로덕션에서 드라마와 영화, 이젠 예능까지 찍고 있다 보니 캐스팅 담당자들은 배역에 맞는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것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미스캐스팅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 외 자주 미스캐스팅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이 신인들의 연기력 논란 때문에 나타나는 발연기 미스캐스팅 현상이다. 캐스팅 담당자가 신인의 잠재력을 과대 계상하고 표면적 이미지만을 고려하여 캐스팅 했을 때 이런 문제가 발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제니(이로운) 미스캐스팅 문제는 기존의 캐스팅 문제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주인공 캐스팅과 신인 캐스팅의 문제는 제작진과 배우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미스캐스팅 문제라고 본다면 아역배우 특히 연기력을 논할 수 없는 어린 아기 배우에 대한 캐스팅 문제는 온전히 제작진이 홀로 짊어져야 하는 미스캐스팅이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제작진에게 책임이 있다. 


<부부의 세계>에서 제작진도 사전에 아이가 대본에 설정된 연령대와 다른 아이라는 것을 알고 캐스팅을 한 것이다. 아이의 키와 덩치는 아이의 노력이나 연기력, 이미지 보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비난과 비판으로부터 아이와 엄마는 자유로우며 제작진이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한

제작 책임자들의 제작 편의주의가 낳은 방송사고


제니(이로운) 미스캐스팅의 본질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다음과 같이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본다. ‘나날히 높아지는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 현업 드라마 제작팀의 제작 관성이 만들어 낸 인재(人災)’.


한국의 드라마는 원래부터 강했다. 국내 가요가 팝송에게 밀렸던 시대는 있었어도 한국 드라마가 안방 극장을 외산 드라마에게 내준 적은 없었다. 그러한 한국 드라마는 21세기에 들어와 높아진 위상에 따라 현재 K-pop과 함께 한류의 한축을 이루며 세계 대중문화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작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지 헐리웃을 정복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넷플릭스에서 <왕좌의 게임>을 능가하는 흥행을 보여주고 있는 <킹덤> 시리즈의 성공은 한국 드라마가 단순히 아시아 흥행 영화 수준이 아닌 세계명품 드라마 반열에 오른 명작이라는 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과감한 물량 투입과 오랜 시장조사와 사전제작 과정을 통해 제작된 종편 드라마들은 작품의 질적 완성도나 흥행성 모두에서 큰 선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고품질의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안목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눈이 아주 까다로워진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볼 수 있는 드라마 채널이 무한대로 넓어져 이젠 작품의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가 된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개미지옥의 마술

드라마 소비자의 성향을 바꾸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지상파, 케이블TV와 위성TV에 불과했던 드라마 채널이 넷플릭스와 왓챠 등 주문형 콘텐츠 서비스의 확장으로 세계 유명드라마를 저렴한 가격에 무제한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따라서 국내 드라마팬들은 드라마를 고르고 선택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로워졌으며 오랜 작품 감상 축적을 통해 습득된 드라마 심미안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도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의 제한성이라는 개념이다. 볼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현대인들의 삶은 매우 바쁘다. 시간이 부족하다. 작품은 시리즈물로 보다 길어졌고 재미있어졌지만 작품을 감상할 시간은 더욱 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 작품을 완주하는데 국내 16부작 미니시리즈의 경우 18시간에서 20시간이 걸리고 100부작이 넘어가는 아침드라마 하나를 완주하는데 최소 50시간 이상 투자해야 한다. 미드와 일드는 편수가 짧은 편이지만 중드의 경우는 40부작 50부작이 넘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넷플릭스는 일단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수 없는 드라마에 대한 중독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인들에게 드라마 시청은 그야말로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투입하는 영혼과의 거래이다. 하나의 드라마를 선택하는 것은 한 드라마에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내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오늘날 드라마 시청자들은 하나의 작품을 선택할 때 다양한 기준을 적용한다. 물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파워 블로거와 문화비평가들의 기사들, 시청자들의 평점들을 다양하게 참조한다.    


예전의 팬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한 팬덤에 따라 작품을 골라 보았다면, 이제는 작가와 감독 PD와 장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등장 인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대본과 연출력의 완성도, 주로 보는 장르가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최근 드라마 덕후들이

연출 실수와 미스캐스팅 및 발연기에 관대하지 않은 이유?


예전의 팬들은 편집상의 실수와 미스캐스팅에 대해 대체적으로 묵인하고 넘어갔다. 작품은 구려도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실컷 보았으니 본전은 뽑았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팬들은 그러한 연출상의 실수나 배우들의 발연기, 캐스팅의 오류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아까운 시간을 들여 수많은 작품중 이 작품을 선택해주었는데 드라마의 특정 부분이 거슬려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거나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발생되면 드라마 팬들은 이러한 분노와 짜증을 개인 SNS상이나 팬카페에 여과 없이 올리게 된다. 이것은 그만큼 이 시대 드라마팬들이 작품을 보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대의 드라마팬들이 작품을 대하는 방식은 마치 조선시대 도자기 장인이 백자를 대하는 방식과 같다. 일반인들은 조선시대 백자와 비슷한 형태의 오강조차 구분하지 못하지만 도자기 장인들은 백자의 작은 흠도 넘어가지 못하고 인정사정없이 깨뜨려 버린다. 


그와 같이 오늘날 드라마 시청자들은 작품이 전체적으로 보아 무난하고 완성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디테일 부분에서 오류와 실수가 있다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만큼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현장과 제작진들의 태도이다. 제작 현장은 아직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충실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이 못되고 제작진들도 아직 과거의 제작 관행에 머물러 있다. 그러한 제작진들의 정체된 마인드와 제작 환경이 이번 사례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제니(이로운) 미스캐스팅, 

정말 흔한 방송사고로 치부할 가벼운 사안인가?


어떤 시청자들은 제니가 극중 분위기를 지배하는 주연급 배우도 아니기에 이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을 경계한다. 작품의 세부적인 흠결에 집착하여 정작 이 작품이 가진 다양한 장점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이 미스캐스팅 문제는 그렇게 작게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첫째, 시청자들의 극중 몰입감을 방해하는 주 요인이 되고 있다. 


맘카페와 SNS상에서 <부부의 세계> 시청자들은 아이의 비현실적인 덩치 때문에 작품에 몰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먼저 이 작품에서 아이의 존재는 지선우와 이태오가 헤어진 이후 경과된 시간의 상징이다. 그런데 아이의 성장이 암시하는 2년이란 시간 변화 척도와 실제 시간과 맞지 않아 시청자들의 극중 몰입에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네 살짜리 아이 모습인데 부부는 2년차 부부 노릇 흉내를 내고 있다.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난 2년이 된 가정 모습과 4년된 가정 모습, 부부애의 정도, 남편과 아내의 역할 관계는 많이 다르다. 


작품 <부부의 세계>의 주 시청자층이 육아에 대한 이해력과 관심도가 높은 주부들과 맘카페 회원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시청자들이 현실과 작품의 괴리를 느끼는 정도가 얼마나 클지 제작진은 미리 계산했어야 한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맘카페의 주된 관심은 자녀의 성장과 교육 이슈이다.




둘째, 작품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사실 현실보다 더 강한 현실이다. 배우들은 등장 배역에 맞는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작품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예를 들어 <검사내전>이나 <비밀의 숲>에 나오는 검사는 배우에 불과하지만 현실의 검사들보다 더 검사답고, <골든타임>과 <뉴 하트>에 나오는 의사역을 맡은 배우들은 의대를 다녀본적도 없지만 진짜 의사보다 더 의사스런 모습을 보인다. 



<낭만닥터 김사부>에 나오는 한석규가 열연한 부용주 역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숭고한 노력을 하는 외과의사를 보여주는데. 실제 병원에서 보는 의사들보다 더 의사로서의 본질에 근접에 보인다. 이것은 그런 리얼리티를 획득하기 위해 연기자들이 오늘도 피땀을 흘리며 연기수업에 열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최근의 작품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척도가 극중 인물의 직업적 전문성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배역의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법학전문드라마와 의학전문드라마, 범죄전문드라마의 전성시대이다. 따라서 배우들은 어려운 법적 용어와 의학용어, 범죄 프로파일링 용어들을 자연스럽게 대사로 구현하기 위해 진짜 법조인들과 형사 의사들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러한 배우들의 노력에 비해 <부부의 세계> 캐스팅 담당자가 이번 이로운 캐스팅에서 보여준 노력은 많이 아쉽다. 정말 작품 대본에 나와 있는 캐릭터에 합치하는 배역을 물색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언어 구사가 불가능한 아기와 영아 배우들의 캐스팅에서 중요한 것은 연기력이 아니다. 연령과 키, 부모역을 맡은 배우와 약간 닮은 꼴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맞으면 시청자들은 큰 무리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4살짜리 아이를 2살짜리 아이로 둔갑시켜 버렸으니 시청자들은 도저히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부부의 세계>가 이것밖에 안되나? 마치 옛날 학예회에서 아기 연기자를 구하지 못해 인형을 안고 연기하는 아마츄어리즘과, 어른들을 아기 분장을 시켜 등장시키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같은 어설픔이 느껴진다. 


그처럼 <부부의 세계> 이로운 캐스팅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셋째, <부부의 세계> 컨셉에 혼선을 주고 있다. 


극사실주의적 기법의 작품에서 로맨틱 코미디 캐스팅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부부의 세계>가 지향하는 작품 콘셉은 부부세계의 민낯 즉 부부 관계의 현실이다. 작품 자체가 매우 극사실주의를 표방한다. 현실과 사실을 다루는 작품들은 디테일 묘사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작품은 캐릭터들이 매우 입체적인 성격 변화와 갈등 양상을 보이며, 반전에 반전을 이루는 플롯 전개에 따라 인물간 역할 변화도 시시각각 다양하게 이뤄진다. 갈등에 따른 감정선의 변화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몰입과 관찰자 시점을 장착해야 한다.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 살 떨리는 입술 진동이나 충혈된 눈, 대사에 나타난 섬세한 뉘앙스와 억양 변화 등이 드라마의 전개를 읽는 매우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오랜 주인공 경력으로 연기력의 정점에 올라있는 연기력의 장인, 김희애가 아니었으면 <부부의 세계>가 이처럼 높은 인기를 구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의 세계>와 같은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은 시종일관 작품에 몰입하며 극중 지선우 역을 맡은 김희애가 느끼는 불안과 좌절에 대한 심도 깊은 탐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작품에서 4세 아이를 두 살로 둔갑하여 출연시켰으니 시청자들은 작품의 근본 성격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사랑 때문에 몇 번씩 환생하고 귀신이 된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황당무계한 소재를 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어느 외계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이보그와의 사랑을 다루는 SF코메디물이나 역사 이전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환타지 장르라면 2살 짜리를 4살이 연기하든 6살 짜리 아이가 연기하든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 관계의 민낯을 마치 범죄추리극에 등장하는 탐정처럼 남편의 외도에 대한 흔적을 조각조각 맞춰 가는 극사실주의적 작품에서 이런 캐스팅 오류를 범했으니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실수로 간단한 해프닝으로 용서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현행 제작 현장과 제작 관행이 만든 문제


그렇다면 왜 이런 미스캐스팅 문제가 발생될 수 밖에 없었을까? 왜 4살짜리를 두살짜리로 둔갑시켜야 했을까? 한국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아역 배우 캐스팅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였을까?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 배역보다 나이가 많은 아역 배우 캐스팅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동물 배우나 아역 연기자 캐스팅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동물이나 아역 배우들은 감독과 작가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방송 드라마와 광고업계에서 공통적으로 환영 받는 아이들의 연령은 5세~7세라는 불문율이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낮은 나이가 되면 감독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역 배우에 대한 수요는 다양한 연령층에 걸쳐 있기 때문에 나이보다 더 어려보이는 아역 배우를 많이 찾게 된다. 4살 역을 맡았으나 알고 보면 6살이나 7살인 아역 배우들이 많은 것이다. 대체적으로 유명한 아역 배우들은 또래보다 동안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부의 세계>에서 배역보다 나이가 많은 아역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나이라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2살로 보이느냐가 문제인데 실제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둘째, 아역 캐스팅은 매우 품이 많이 드는 고비용 작업이다.


아역 캐스팅은 매우 어렵다.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역 섭외의 경우 에이전시와 아카데미, 연기학원에서 주는 배우 프로필 사진은 별 도움이 못된다. 아역 섭외의 경우 첫번째 원칙은 ‘프로필 사진은 100% 신뢰하지 않는다.’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릴수록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프로필 사진과 외모가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 있고, 최근에는 이미지 보정 사진이 많아 실제 아이들의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더 심하다. 아이들은 출연작이 적기 때문에 작품으로 아이들을 섭외할 수 없고 성격도 예민하고 환경변화에 유동적이라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아역 배우 캐스팅 담당자들은 일단 경력이 있는 아역 배우를 너도 나도 섭외하게 된다. 일부 연기신동이라 불리는 아역 배우가 이곳저곳 겹치기 출연을 하는 이유는 검증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역 배우 중에서 베테랑급이라 하더라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항상 예기치 않은 문제로 도중하차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부부의 세계>에 등장인물 대상인 2세 미만의 아역 배우들은 말도 못하고 말귀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영아들이라 제작진들이 컨트롤 하기 더 까다로워서 그냥 가만히 엄마 역을 맡은 배우에게 안겨 있는 연기도 하기 힘든 경우가 다반사이다. 낯가림과 분리불안이 심한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아역 배우 캐스팅 담당자는 카메라와 제작진들과 현란한 조명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환경에서도 울지 않고 자기 집에서처럼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식당에서 이유식을 먹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아기 배우를 찾아 헤매지만 믿을 만한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제대로 아역 배우를 캐스팅 하고자 했다면 더 많은 오디션과 탐색 과정을 통해 2세 미만 아기들 중에서 방송 촬영이 가능한 아기 배우를 섭외했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제작 현실이 이런 아역 배우들을 찾아 심층 오디션을 여러 차례 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NG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찍어내야 하는 양적 부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완벽한 장면을 찍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아기들의 돌변 상황이 발생되면 그 장면은 편집될 수 밖에 없다. 촬영장에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촬영의 진행이 짧게는 몇 십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씩 지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촬영 현장의 돌발변수를 방지하고 안정적이고 빠른 제작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배역보다 실제로 나이가 많은 아역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19금 내용과 코로나 사태가 아역 캐스팅을 어렵게 했다.


이 부분은 제작진의 고충을 고려해주어야 할 이유이다. <부부의 세계> 드라마 불륜 설정과 코로나 정국이 아역 캐스팅의 어려움을 배가 시켰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아역 캐스팅은 어려운 일인데 <부부의 세계>에서 제니 캐릭터가 불륜에 의해 낳은 자식이라는 설정도 해당 아역 캐스팅에 난항을 겪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19금 성인을 위한 드라마에 어린 자녀가 출연하는 것을 달갑게 여길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 역을 맡아야 한다면 아이의 성장과 이미지에 좋지 못한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출연 제의에도 쉽게 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1월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간과의 접촉이 많은 촬영장 출입에 부모들은 매우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 두기 실시로 유치원과 학교가 모두 개학을 미루고 있는 이 때 인간 대 인간의 노출이 많은 촬영장에서 어린 아기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일단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부부의 세계> 아역 캐스팅 담당자의 노고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본의 캐릭터보다 많은 나이로 비난 받을 것을 감수하고도 연기에 임해준 이로운 어린이와 어머니의 결단에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코로나 안전 예방 활동은 아역 배우는 물론 성인연기자나 제작 관계자 모두에게 필요한 조치이다. 코로나 사태로 아역 배우 섭외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부부의 세계>에서 요구하는 두 살 짜리 배역이 높은 수준의 연기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기에 코로나 때문에 이번 상황과 같은 미스캐스팅이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아역 배우 생산 시스템과 캐스팅 제도가 좀 더 잘 갖춰져 있었다면 코로나 사태와 같은 이러한 예기치 못한 비상상황에서도 아역 배우들을 캐스팅하기가 한결 더 수월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경우처럼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미스캐스팅이 발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선진화된 

어린이 전문 캐스팅 업체와 연기 담당자 필요


애초에 이로운 미스캐스팅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역 배우 캐스팅과 연기 지도에 보다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한다. 아동심리전문가와 아동교육가, 아역배우 전문연기지도사들이 협력하여 아역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연기를 지도하며 촬영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완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한 두 살짜리 캐릭터를 4살짜리 아이가 연기해야 하는 현 제작 현장의 풍토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디즈니 영화에만 아역 전문 배우와 감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부의 세계>처럼 오로지 성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19금 드라마에도 아기 배우들은 필요하다. 1천만 반려동물 시대에는 동물 연기자들과 이들을 지도할 동물 전문 연기지도자 또한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헐리웃과 넷플릭스에서도 인정받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세계 명품 드라마의 산실이라는 대한민국에서 2020년 상반기 가장 화제성 높은 드라마인 <부부의 세계>에서 조차 우리는 2살 짜리 아역 배우를 캐스팅 하지 못하는 열악한 제작 환경을 목도하고 있다.


작품 <부부의 세계>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집안의 포장된 가면을 제거하고 불륜과 외도에 신음하는 한국 중년 여성의 민낯을 드러내며 진정성 있는 평생 동반자 관계로서 창조적 부부 세계에 대한 모색을 그리고 있다면, 이로운 미스캐스팅 논란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드라마 한류의 거품 속에 숨겨진 열악한 제작 환경과 아역 배우 캐스팅 시스템의 부재와 비전문성 문제를 드러내며 앞으로 대한민국 드라마 제작이 나가야 할 전문적인 아역 배우 생산 시스템과 디테일한 연출의 필요성을 다시금 제시해주고 있다.  



이미지 출처: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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