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이 아닌 하나 된 나라를 꿈꾸게 하는 영화 <대립군>

영화 <대립군>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담은 영화이다. 광해를 연기한 여진구와 대립군 수장 토우 역을 맡은 이정재, 그리고 말아톤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진작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데 정말 헬조선의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원조 헬조선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5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명나라로 피란 길에 오른 선조를 대신하여 임시조정을 맡게 된 세자 광해와 그를 수행하게 된 대립군이 전쟁 중 겪게 되는 참혹한 조선의 실상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국가의 수장 선조, 그는 조선 역사 속에 연산군이나 인조와 함께 최악의 왕으로 대중들에게 각인 된 왕이다. 영화 속에서는 아주 짧은 장면 등장했으나 자신이 죽으면 나라도 없다는 망언을 남기며 전쟁 책임을 이제 갓 성인이 된 18세 광해에게 떠넘기고 명나라로 피신을 떠난다.

 

조정대신들은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 속에서도 정치적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당파 싸움과 세력 갈등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전란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을 위로하기는커녕 그들의 식량을 약탈하고 학대한다.

 

대립군, 처음에 그 생소한 이름 때문에 많은 오해를 샀다. 많은 사람들이 왕과 세자 간의 대립과 반목을 다룬 복잡한 정쟁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닐까 추정했다. 그러나 그 본래의 뜻은 북방 개척과 여진 토벌을 위해 강제로 북쪽으로 이송된 양민들이 북방 민족들의 잦은 침략과 농사짓기에 부적합했던 북쪽 지방에서 생계를 세우기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는 데서 대립군(代立軍)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대립군은 실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하여 공훈을 세우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죽더라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원래 전쟁에 참여해야 했던 본래의 복무자가 명예와 보상을 받았다. 그에 비해 참전 후 받는 삯은 매우 열악했기에 대립군들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계속되는 전투에 생명을 걸고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하층 계급이었다.

 

영화의 모티브는 진짜 왕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대리 왕인 세자 광해와 법적으로 군역을 짊어져야 하는 힘 있는 양인들을 대신해서 전쟁터에 끌려온 대립군들이 타인의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국가에 대한 성스런 의무를 감당하기까지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자 광해는 얼떨결에 망해 가는 나라의 대리 통치자가 되어 서책에서 읽어 알던 백성을 진정한 인격체로 만나는 과정을 겪으면서 진정한 권위를 가진 성군으로 성장해 간다. 대립군은 남 대신 끌려온 전장에서 팔자를 고치기 위해 세자 광해의 호위병이 되었다가 힘없는 백성들이 겪는 참상과 어린 광해의 순수함에 감화되어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의병 봉기의 선봉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대립군>은 시종일관 임진왜란의 처참한 광경과 당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료 조직들의 실상과 리더십 부재 속에 방향을 읽고 고통과 신음 속에 죽어 가는 민초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내내 울분과 가슴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과 골짜기, 유머나 잔재미가 없는 대사, 스펙터클 없는 추격신과 소규모 전투뿐인 전쟁 씬 영상에 런닝 타임 130분이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대립군>은 나름 가슴에 남는 대사들도 많았고, 교과서와 역사서에서 책으로만 읽어보았던 관료와 백성, 승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함께 참여한 전투가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여준 살아있는 역사 시청각 교재였다. 영화 종반부 절벽을 뒤로 한 산성에서 일본군과의 혈투는 국사 책에서 읽었던 행주산성의 전투가 어떤 모습일지 알게 해주었다. 여인들이 돌을 던져 일본군을 막는 장면은 전쟁의 치열함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물론 스케일과 그 참혹함에 있어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 같은 영화와 비할 수 없고, 무술신은 주인공들이 날아다니는 중국 대륙영화에 비할 수는 없지만, 조선 시대 백성들과 의병, 승병들이 참여하는 참혹한 현실을 실감 있게 보여 주어 조선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다.

 

또한 정윤철 감독이 고백하고 있듯이 전쟁은 외부에서 침략자인 일본군과 치르는 전쟁보다 내부적인 적들인 선조와 선조가 보낸 자객, 그리고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과 내면의 갈등을 더 비중있게 그렸다고 한다. 정윤철 감독의 주장대로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영화<대립군>에는 하나의 액자식 전쟁틀이 작동하고 있다. 전쟁 속에 전쟁이 연속해서 작용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서는 조선과 일본의 전쟁이 수행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선조와 세자 광해를 추종하는 무리들 간의 전쟁이 수행되고 있고, 광해를 추종하는 그룹 안에도 양반과 대립군과의 전쟁이 있고, 대립군 내에서도 광해를 쫓는 토우와 양반을 불신하는 곡수의 전쟁이 있다. 따라서 영화<대립군>에서는 각각의 그룹과 인물들이 상황에 따라 어떠한 갈등을 표출하고 어떠한 심리적 출동을 일으키는지 생각하면서 보면 심리극으로서 흥미롭게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팩션이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주인공 광해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어서 영화의 긴장감과 몰입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역사 사료에 남아 있는 몇 줄 안 되는 내용으로 이 정도의 내용을 구성했다는 것에 나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키는 이 특별한 인물이 쥐고 있다. 조선인으로 태어나서 계급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여진족으로 투항했다가 대립군의 포로가 되어 조선 대립군의 일원이 되지만, 언제나 대립군들에게 여진족으로 투항할 것을 권하던 인물 골루타는 결국 마지막에는 조선의 의병이 되어 자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골루타를 통해 감독은 자신의 나라는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의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 보면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이 나온다. 이 교룡기는 용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서로 꼬리를 향하여 보며 둥글게 모여 있다. 작품에서는 초반에 왜 왕을 상징하는 깃발에 용이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있는가 문제를 제시하고, 후반부에 토우의 나레이션으로 용 한 마리는 왕이고, 다른 한 마리는 백성이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국가는 왕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닌 백성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용이 서로의 꼬리를 따라 가듯이 백성은 왕을 쫓고 왕은 백성을 쫓아 정치를 할 때 나라가 평안하고 사직의 기틀이 올바로 설 수 있다.

 

작품을 만든 정윤철 감독은 사니라오 단계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짧은 현대사에서 백성과 함께 호흡하려 했던 인물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했고 각각의 공과는 있으나 그렇게 국민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지도자의 정신이 앞으로도 현실 정치에 계승되길 바라는 차원에서 세자 광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서삼경만 열심히 읽고 현실정치에 어두워 이상적인 이론가였던 세자 광해는 법전만 열심히 읽고 현실 정치에서는 정치력이 매끄럽지 못해 출신지에서조차 박대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백성의 안위를 가슴에 두고 정치를 했던 세자 광해는 백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듯이 노무현 대통령도 아직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따뜻한 지도자로 남아 있다.

 


언제나 역사는 현대사이다. 임진왜란과 대립군을 하필이면 지금 이 시대 다시 조명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이 시기가 평탄치 못한 역사적 변곡점이고 민초의 삶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위기 시대이며, 임진왜란 초반처럼 위기 극복을 할 수 있는 지도력이 부재한 리더십의 공백기이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나라가 뛰어난 지도력에 의지하여 국가의 기틀이 선 적이 있던가? 나라의 위기 때마다 지방의 선비와 서민, 아낙네와 도 닦던 승려들이 모두 일체 단결하여 나라를 지켜왔던 것이 아니던가?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이 시대의 생존방식인 각자도생은 영화 <대립군>에서도 확인 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민초들의 고유의 위기극복 방식은 아니다. 힘들수록 하나로 뭉쳐야 한다. 기득권 권력들은 평화시기에도 당쟁과 세력 다툼으로 분열했지만 대한민국 서민들은 위기 때마다 하나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해 냈다.

 

영화 <대립군>에는 평화시에 조선의 차별적 신분제와 출신성분과 지역 학파로 국민을 나누어 나라 자체를 남의 나라처럼 만들어 놓은 양반 정통 세력들과 한쪽은 왕의 혈통이지만 한쪽은 궁녀의 몸에서 태어난 불완전한 존재 세자 광해가 양인들의 대체 복무자인 대립군과 함께 힘을 합하여 국가의 위기를 구한다는 데서 불완전한 존재들의 삶을 향한 건강한 투쟁정신을 또한 배우게 한다.

 

대리 왕이나 대립군에게서나 조국은 하나. 지키는 나라는 나의 조국일뿐이다. 남의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닌 나의 나라를 내가 지키는 것이다. 누구의 대신이 아닌 내 자신의 나라라는 데서 작품의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현재 헬조선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대한민국은 나의 나라가 아닌 그들만의 나라처럼 보일 때가 있다. 대립군들이 조선을 남의 나라처럼 생각했듯이 나도 대한민국을 소수 기득권층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나라의 문제를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지 않은지 나부터 반성해야 할 일이다

 

 

  <사진출처: 영화 <대립군> 공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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