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한국 정서와 토종 캐릭터로 세계를 접수하다!

우주를 향해 첫 번째로 쏘아올린 한국 영화 「승리호」를 향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과연 「승리호」는 그 이름값을 제대로 했을까? 그렇다. 한국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승리호」는 한국 토종 캐릭터와 한국 특유의 정서를 장착한 SF 영화답게 보기 좋은 출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지난 2월 5일 「승리호」는 190개 국가를 대상으로 넷플릭스에 영화를 공개한 후 폭발적인 스트리밍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로 전 세계 오프라인 영화관의 박스오피스 랭킹이 무의미해진 가운데 유일한 객관적인 영화 흥행지표라 할 수 있는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승리호」는 넷플릭스 인기영화순위에서 6일 기준 총점 525점으로 세계 1위에 올랐으며, 7일에도 648점으로 정상을 고수하였다. 「승리호」는 BTS와 「기생충」 이후 세계 대중문화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또 하나의 한류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플릭스 패트롤은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오늘의 톱10’ 자료를 바탕으로 전 세계 81개국에서 영화 및 TV 프로의 각 부문별 순위를 집계하는 체코의 스트리밍 서비스 랭킹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의 집계 방식은 특정 국가의 시청자 수 1~10위까지를 10~1까지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체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시청자수를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특정 영상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한 국가들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지 객관적 판단 지표로 사용하기엔 적당한 측정 기준이 되고 있다.

「승리호」는 현재 한국과 프랑스, 핀란드, 벨기에, 불가리아와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유럽과 아시아의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SF영화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3위에 올라있고, 80개국에서 TOP10 순위 안에 들어가 있다. 고무적인 것은 「승리호」의 인기도가 더욱 확산 일로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 넷플릭스에 방영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승리호」에 대한 대중들의 다양한 찬사와 함께 일각에선 날선 비판 역시 제기 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중의 취향과 개인적 호불호를 가장 잘 반영하는 영화 콘텐츠의 특성상 찬사와 비난의 세례를 동시에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승리호」에 대한 전 세계 대중들의 찬사와 비판은 찬반 논쟁을 일으키며 화제성과 작품의 주목도를 높이는 작용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승리호」의 런칭이 한국 영화사에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것은 흥행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존재 자체로 뜻 깊은 일이다. 따라서 오늘은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승리호」의 의미에 대해 3가지 방향에서 논하고자 한다.

 

 

1. 한국 최초의 본격 우주 SF영화

영화 「승리호」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우주를 배경으로 태극기와 ‘승리’라는 한글 이름이 새겨진 우주선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승무원이 등장하는 최초의 본격 우주 SF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헐리웃과 기술 격차 0%, 숙련도 70%에 도달된 작품

영화 승리호의 제작에는 총 2,500컷 중에서 2,000컷이 VFX(Visual Effects·시각적 특수효과) 작업으로 탄생되었다. 영화의 80% 장면이 특수효과 컴퓨터 그래픽 처리로 이뤄진 기술집약적 테크놀로지에 의한 영화이다. VFX 전문가 1,000명이 작업 공정에 참여하여 8개 회사가 촬영 후 10개월에 걸쳐 완성한 공동 협업의 산물이었다.

 

 

조성희 감독은 「승리호」 제작에 사용된 VFX 기술에는 기존 국내 영화에 선보여온 모든 기술력이 총집합되었다고 말한다.

 

이 240억짜리 블록버스터는 헐리웃에 비해 제작비 10분의 1정도의 물량이 투입되었지만 VFX 수준은 어떤 헐리웃 SF영화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기술적 정교함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특수효과를 사용한 헐리웃의 영화 제작비를 살펴보면(금일 환율 적용),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는 2억달러(약 2천235억원), 「인터스텔라」는 1억6천500만달러(약 1천844억원), 「토르: 라그나로크」 1억8천만달러(약 2천12억원), 「그래비티」는 1억달러(약 1천118억원), 「테넷」은 2억500만달러(약 2천291억원),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10억5천600만달러(약 1조1천180억원) 정도이다. 

영화 제작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승리호」의 제작에는 엄청난 실무진들의 헌신과 열정페이가 투입되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최초의 우주 SF 영화 제작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헌신해준 기술진의 노고에 대해 영화팬들은 감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주 SF영화 제작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금기에 해당되는 영역이었다. 영화를 구현할 수 있는 VFX 기술은 컴퓨터 그래픽과 게임 산업의 발달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여 있었지만, 기존 SF 소재 영화들이 흥행몰이와 화제성 형성에 보기 좋게 연전연패하며 충무로와 헐리웃의 제작 역량 격차만 확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SF영화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효과를 구현하는 VFX 기술이지만 SF영화의 뼈대가 되는 과학적 상상력과 문제의식을 담은 시나리오와 모션 캡쳐 연기에 준비된 연기자,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예술적 구현 능력을 두루 갖춘 연출 시스템 역시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어가는 SF영화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확보되어야만 하는 필수적 영역이었다.

그러나 조성희 감독이 10년 동안의 품어왔던 「승리호」 제작의 성공적 연착륙으로 이제 한국 영화는 우주를 향한 SF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획득하게 되었다. 아폴로 11호의 우주 조종사이자 달에 첫 발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 한 걸음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 전체에겐 일대 커다란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승리호」의 성취는 비록 한 영화社에겐 세계시장에 내건 한 작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한국 영화史에 있어서는 우주를 향한 커다란 도약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사건이다. 

「승리호」는 한국 영화인들의 도전정신과 불굴의 능력을 보여준 사례이고, 한국 영화의 소재와 장르의 잠재적 다양성과 확장성을 보여준 영화였고, 종래의 한국 SF영화들이 뛰어넘지 못한 대중성과 흥행성을 획득한 영화였다.

「승리호」의 성공에서 보여준 조성희 감독의 연출 역량과 1000여명의 VFX 전문 실무진들의 기술력, 그리고 송중기와 김태리를 비롯한 한류 스타들의 인기들은 앞으로 우주를 향한 SF영화 제작에 한국 충무로가 또 하나의 산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일대 큰 사건이었다.

 

2. 헐리웃과 차별되는 토종 캐릭터와 배경 설정, 다문화주의

「승리호」에 등장하는 주연급 인물 캐릭터는 4명이다. 이들 인물들은 헐리웃의 인물 창조 방식과는 차별화된 캐릭터 설정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정성진 슈퍼바이저는 헐리웃 SF영화들이 유니크한, 세상에 없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중심을 두었다면 「승리호」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사건들은 한국적 현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2021년 지금 한국에 살고 있을 법한 인물을 2092년 미래의 우주에 옮겨 놓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인물이 아닌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친숙한 인물들을 영화 속에 등장시킨 것이다. 그것은 「승리호」가 무엇보다 한국의 SF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주선 승리호의 동체는 이전 헐리웃에 등장하는 잘 빠진 유선형의 체형을 갖고 있지 않다. 승리호의 디자인 설계는 우리나라 새벽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차의 뒷모습을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승리호의 토종 캐릭터, 
액션 히어로들과의 차별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장인물의 복장 역시 외형부터가 헐리웃 액션 히어로들이 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코스튬이 아닌 일반 캐주얼 의상이다. 

이러한 한국적인 캐릭터 특정 방식은 인물을 설계할 때도 기본이 되었다. 송중기가 연기한 조종사 태호는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뛰어들고, 구멍 난 양말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절약의 미덕을 실천하는 우리 생활 주변의 누군가와 닮아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가족들을 위해 일터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한민국 가장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한편 대한민국 국민들의 트라우마인 세월호 희생 가족이나 대구 개구리 소년의 아빠가 연상되는 캐릭터였다.

 


김태리가 연기한 장선장은 평소에는 조직원을 갈구는 재미로 살아가는 짓궂은 꼰대 이미지에  자기가 불리하면 화투판을 과감하게 뒤엎어 버리는 욱하는 성질이 누군가와 닮아 보이지만, 조직원을 위협하는 우주 경찰을 교묘한 권모술로 협박하여 무력화시키고 누구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레이저소총을 들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는 진면목에선 김태리가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 역을 맡아 보여준 걸크러쉬의 본좌를 연상시킨다.

 


진선규가 연기한 타이거 박의 외면은 전혀 한국 땅에서 익숙해 보이지 않는다. 온몸의 타이거 문양에, 드레드 헤어와 티타늄 도끼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지극히 이질적이다. 하지만 극중에서 그가 보여주는 성격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우리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잔소리 대장 엄마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한국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누군가와 닮아있다.

 


유해진의 분신인 업동 로봇은 한국 드라마에 이따금 등장하는 성적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캐릭터이다. 겉은 살상용 로봇의 정점에 위치한 강력한 파괴적 공격력을 지니고 있지만 속은 새침때기 동네 언니 캐릭터로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고 오늘도 피부이식을 위해 열심히 돈을 끌어 모으고 있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4명의 캐릭터 외에 꽃님이(도로시) 캐릭터 역시 우리 한국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깜찍이 조카 이미지이다. 방구 대장, 하품 대장, 재채기 대장에 숨바꼭질을 잘 하고, 눈치 100단에 엄마, 아빠, 삼촌, 고모 그림을 잘 그리는 붙임성 좋은 귀여운 조카 캐릭터이다. 

 


혹자는 이러한 「승리호」만의 캐릭터 설정이 실패한 캐릭터 설정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헐리웃의 「스타워즈」 시리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등장인물처럼 뚜렷하고 개성적인 캐릭터 창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마블 코믹스에서 만든 수퍼맨이나 베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 어벤저스에서 보았던 수퍼 히어로들의 매력적인 인물형과 너무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액션 히어로들은 자기만의 무기와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갖고 있는데 반해 「승리호」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무기를 갖고 있지도 않고 독특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헐리웃 SF영화 문법에 익숙한 시선에서 바라본 오류이다. 만화와 영화, 완구와 게임 등 특정 상품과 연계한 상업성 짙은 디즈니적인 마블 코믹스 SF영화만이 모든 SF영화의 전형이 될 수 없을뿐더러, 우리 한국인들의 눈엔 익숙하여 개성이 두들어지게 보이지 않는 승리호의 조종사 태호, 장선장, 타이거 박, 업동 캐릭터가 오히려 헐리웃과 세계인들의 시각에서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개성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 

승리호를 본 해외 네티즌 반응들이 이것을 증명한다. 헐리웃의 대다수 SF영화들이 이미 반복되는 클리쉐로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승리호」의 주제와 소재, 인물에는 한국 영화만의 독특한 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데 입을 모으고 있다. 

 

 

SF 독점 시장 메이드인 미국의 아성을 깨뜨린
승리호의 다문화주의

또한 승리호의 영웅들은 종래의 미국 중심의 영웅들이 아니다. 기존 SF영화들에선 미국이 세계를 구원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백악관과 미국 대통령이 스토리의 구심점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단골로 나오지만 승리호에는 백악관도 청와대도 크렘린궁도 중난하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국어 번역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미래의 지구인들은 자기 민족의 공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국가 간의 서열이나 위계질서 따위를 상관하지 않는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황인종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살고 있을 뿐 「승리호」에는 대한민국이 지구를 구한다는 특별한 애국주의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 시민의 일원으로 일상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다양한 민족 국가 사람들과 티격태격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지구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승리호」가 영미권은 물론 다양한 국가들에서 큰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 세계 민족과 국가들을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다문화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승리호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개척과 기대 효과

「승리호」가 기존의 헐리웃 SF영화들의 캐릭터 창조 방식과 스토리 전개 방식과 차별되는 한국적인 스토리 라인과 토종 캐릭터들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일단 먼저 전제되어야 할 점이 있다. 영화 「승리호」는 애초에 넷플릭스 방영을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적으로 국내 극장 관객을 대상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애초에 해외 관객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코로나의 유행으로 극장 상영이 불가능해져 부득이 하게 넷플릭스에 판권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왔다. 한국의 관객들이 SF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들기 위한 방편에서 토종 캐릭터와 한국 드라마의 주된 정서인 정과 가족주의가 강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관객들은 아직까지도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SF장르는 전 세계 블록버스터 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마이너한 장르에 머물고 있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렉」과 같은 전 세계적인 팬덤을 소유한 영화와 최근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역시 한국 영화시장에서는 영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초의 우주 SF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제작진은 적어도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회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관객 유치를 위해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과 인물 캐릭터 설정이 필요했고, 이것은 모든 한국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한국적 신파와 코믹 유머 코드를 장착한 작품이 필요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제작자의 의도대로 최대한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와 감성에 맞춤 제작된 「승리호」는 한국 극장가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도모하였으나 공교롭게도 코로나란 변수를 맞아 극장 상영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승리호」는 넷플릭스라는 OTT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넷플릭스라는 우회로를 통한 접근이 오히려 한국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또 한 번 목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개 양상을 보면 「승리호」의 한국 시장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기존의 SF 장르에 부정적이었던 관객들도 앞다투어 작품을 감상하고 있고,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 카테고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 것이다.    

「승리호」의 성공은 연이어 관객들과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SF영화 제작진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될 전망이다. 이용주 감독의 「서복」,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 김용화 감독의 「더 문」, 배우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여한 「고요의 바다」 등 충무로의 새로운 바람이 「승리호」의 뒤를 이을 예정이다. 

 

 

 

3. 미래의 우주 공간에 아날로그적 한국 정서를 덫입힌 차별화된 주제의식

SF장르의 매력은 오락성과 작품성을 동반한 작품이 많다는 데 있다. 관객들은 SF 영화를 볼 때 마다 극도의 재미와 철학적 깨달음을 동시에 얻을 수 있어 더 이들 작품을 찾게 된다. 

기존에 유명한 헐리웃 SF영화들을 한 번 손꼽아 보자. 대부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심각한 소외 문제를 다루며 신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과학 이론이 나올 때 마다 그에 대한 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존재론적 질문을 화두로 삼고 있다.

 


제임스 카메룬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인간과 기계 문명의 공존 가능성’을 질문하고, 「에일리언」 시리즈가 ‘괴생명체로 인한 지구인의 위기 가능성’을 담고 있고,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유전자 복제 시대의 인간과 복제인간의 인권’ 문제를 다루었다면,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와 「ET」같이 UFO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인간과 외계인의 인격적 만남’을 소재로 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진 로덴베리의 「스타트렉」 시리즈는 지구에 한정되었던 1,2차 세계 대전을 행성 간의 전투와 은하계의 전쟁으로 규모를 확대한다. SF의 거장 크리스토퍼 롤란 감독은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의 영화를 통해서 기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해체하는 평행우주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들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SF영화들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승리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을까? 

 

 

우주 쓰레기 매립장 랑그랑주
인간의 한가닥 희망, 꽃님이

「승리호」의 배경이 되는 2092년도에도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끝이 없다. 지구는 욕망의 쓰레기로 가득찼고, 환경 오염의 부산물로 인간이 살 수 없는 더러운 땅이 되었다. 사막화 된 지구는 풀 한 포기 자라날 수 없는 죽음의 불모지로 변했다. 쓰레기는 지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은 지구 밖과 태양계에도 각종 우주 쓰레기를 배출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의 쓰레기 매립지 랑그랑주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어디까지 오염시킬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러한 문명의 위기, 폐기 수준에 도달한 지구에서 선택된 소수들은 지구 밖에 인공위성 도시 UTS들을 건설했고 역시 그곳에서도 수많은 폐기물을 우주 밖으로 배출했다.

「승리호」의 주인공들이 비운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우주 쓰레기 청소부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주 청소부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싸질러놓은 우주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성스런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깨끗한 우주를 만드는 가장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우주 청소부들은 가장 낮은 신분 계층에 속하며 늘 가난에 허덕인다. 마치 오늘날 환경미화원들이 겪는 삶의 문제와 비슷하다.


이러한 세계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는 꽃님이의 존재였다. 꽃님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지극히 딸을 사랑하는 과학자인 아빠 강현우가 개발한 나노봇을 주입해 파괴된 뇌 신경을 대체하여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부작용으로 뇌 신경과 결합된 나노봇들이 알파 역할을 하여 다른 나노봇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는데, 덕분에 꽃님이에게는 모든 죽어가는 모든 생명체를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모든 감성을 지배하는 주제 의식은 부성애이다. 꽃님이의 병을 치료하고 그를 죽이려는 설리번에게서 딸을 안전하게 구해주려는 꽃님이 아빠 강현우의 부성애와 사고로 죽은 순이를 잊지 못하고 딸의 시신이 우주 궤도 밖으로 사라지기 전에 순이의 시신을 수습하길 원하는 태호의 부성애가 이 작품의 전개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태호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순이 대신에 아빠가 죽은 후 고아가 된 꽃님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맞아들이며 과거의 고통과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비록 꽃님이의 아빠는 기동대의 습격으로 죽게 되고, 순이의 시신은 우주 궤도 밖으로 사라져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꽃님이는 그녀를 걱정해 주는 태호와 장선장과 타이거 박과 업동과 함께 승리호에 승선하며 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을 때 과거의 상처와 이별하고 해피엔딩의 결말을 맺을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정서 
순이의 받아쓰기 공책, 꽃님이의 스케치북

작품 「승리호」에서 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견인하는 장치들이다. 순이의 받아쓰기 공책에 삐뚤빼뚤 연필로 씌여진 한글로 된 글자와 꽃님이의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려진 승리호 선원들의 모습들은 아날로그적 향수를 자극한다.

종이 위의 손글씨와 크레파스 그림이라는 아날로그적 장치에 반응하는 승리호 선원들의 반응은 매우 인간적이다. 이것은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상처로 말을 할 수 없었던 순이가 아빠 태호에게 마지막으로 받아쓰기 공책에 남긴 아빠에 대한 사랑 고백이 관객들에게도 큰 감동으로 전달된다.

 


가지런하고 예쁘게 쓴 글자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텐데 줄도 맞추지 않고 삐뚤빼뚤 써 내려간 글자에서 느껴지는 순이의 아빠사랑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동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말을 할 수 없어 답답해 하다가 글자를 배워 아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한국인에겐 이런 아픔에 대한 공통체험과 집단무의식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적 신파라 불리는 감정의 공유 상태가 서로의 간격을 매우고 동질감을 주는 것 같다. 

이러한 확장된 가족애라는 한국적 아날로그적 정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고, 지구적 공간과 우주적 공간을 관통한다. 이것은 신파라고도 불리지만 한국 드라마의 면면을 흐르는 일급 정서이다. 

기존의 헐리웃 SF영화들이 미래의 도시들을 설계할 때 인간미는 찾아볼 수 없는 인공적인 계획도시나 괴생명체가 살고 있는 판타지적 공간으로 설계함에 비해, 「승리호」에서는 미래의 세계와 우주선 안에서의 삶 또한 변함없는 가족들 간의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승리호」는 유통기한이 없는 사랑의 영구성과 아날로그 감성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로봇, 업동이
기계를 벗고 인간을 입다

한편 업동 캐릭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승리호」에 담긴 작가의 미래 세계에 대한 전망과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사고방식을 또한 알 수 있다.

업동은 원래 작살로 상대 비행선을 박살내는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갖춘 살상용 전투 로봇이다. 터미네이터 T1000에 버금가는 무서운 살생기계였다. 


하지만 장선장이 「승리호」에 데려와 마치 가족의 일원처럼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 후 업동은 인간들이 할 수 없는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휴먼안드로이드로 변한다. 업동이의 목소리는 한국 영화배우 중 가장 인간미가 넘치는 배우 유해진이 맡았다. 

업동이는 꽃님이가 로봇이 아닌 인간임을 가장 먼저 눈치 챌 정도로 센스가 빠르고, 늘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의 옷을 바꿔 입기 좋아하고 자신의 얼굴에 어떤 피부를 씌울 것인지 외모에도 관심이 많다. 피부 이식 수술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는 로봇이라는 매우 특별한 캐릭터로 설정되었는데, 업동은 기존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을 살상하는 터미네이터 로봇이나 인간의 노예로 활약하는 로봇형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하게 친구이자 가족으로 대접 받는 로봇이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서 피부이식 이후 김향기의 예쁜 얼굴을 하게 된 업동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수필집을 읽는다. 인공지능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간의 유머와 시를 이해하는 로봇이 된 것이다. 릴케는 어떤 인물인가? 윤동주 시인의 시집에도 등장하는 릴케는 고독과 신을 사랑하며 인생을 찬미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자,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존재이며, 일찍이 철학자 니체와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사랑했지만 거절당한 독일의 황진이라 할 수 있는 루 살로메와 연인관계에 있었던 사랑의 시인이었다. 

 


릴케는 특이한 성격을 지닌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 딸의 모습으로 키워졌다. 항상 치마를 입고 인형을 안고 자라났다. 하지만 나중에 남자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정체적 혼란과 갈등을 겪은 인물이다.

따라서 작품 「승리호」에서 업동이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을 읽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릴케처럼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해결한 인물을 의미하고,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 정체성의 어려움을 해결한 인물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업동은 외모만 인간이 아니라 진정한 영혼을 소유한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휴먼 안드로이드다.


「승리호」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릴케의 수필집을 읽는 업동의 모습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반영한다. 살상무기로 만들어진 차가운 기계의 뼈대 위에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씌웠듯이 냉철한 인공지능의 계산기 위에 인간의 상상력과 영혼을 깃들게 하여 로봇을 진정한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을 때 미래의 모습은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봇이 모든 인간의 생산수단을 대체할 4차산업의 대두 앞에 인간의 기계화보다는 기계의 인간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들어 가자


「승리호」의 성공은 우주 시대의 개막을 맞아 우리 충무로가 가진 가능성과 원대한 비전을 보여주었고 우리 생활 주변의 토종 캐릭터가 세계적인 캐릭터로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한국인들의 정과 가족애가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도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소통과 공감의 위대성을 알려 주었다. 

코로나 시대에 「기생충」과 「미나리」의 성공과 함께 「승리호」가 또 하나의 승리의 기록을 남겨 주길 기대한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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