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를 둘러싼 일본 언론과 관방장관에 대한 유감

군함도가 시끄럽다. 개봉 5일만에 4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높은 흥행 몰이에 대한 언론의 극찬과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왜곡된 픽션이라는 일본 매체들의 공격, 2168개 스크린을 싹쓸이 한 <군함도>의 독점적 배급망에 대한 국내 영화인들의 성토, 민족주의인지 민족고발주의인지 역사적 좌표를 잃어버린 작가정신에 대한 비판,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를 고려하면서도 국내 민족진영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정부로서 영화<군함도> 관람을 두고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는 강경화 외무부 장관의 행보 등 모든 것들이 시끄럽고 복잡하다.

 

군함도 문제는 복잡하다. 그러나 상식선에서 생각해 본다면 <군함도>를 둘러싼 모든 논쟁은 다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군함도>는 많은 면에서 상식의 선을 넘어선 부분이 많다. 이 중에서 오늘은 일본과 관련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군함도는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혐일 영화인가?

 

영화<군함도>는 일본 언론의 주장처럼 왜곡된 역사 조작을 통해 반일정서를 자극하는 혐일 영화인가? 영화<군함도>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들은 다 허구이며 창작일 뿐인가?

 

일본 보수 성향 산케이 신문은 지난 201728일 영화 <군함도>가 일본의 전쟁 중 역사를 과장 묘사하여 대일 감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사를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라며 말하는 대목이, 영화 안에서 조선인 징용공이 갱도 내부에서 사망하는 장면이나 일본인의 조선인 살해 장면 묘사, 조선인 여성이 유곽에 강제로 보내지는 장면을 예로 들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 또한 보수 언론과 다르지 않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류승완 감독도 영화<군함도>가 창작된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하며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는 궤변을 주장했다.

 

일본측 입장에는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자국 역내가 아닌 타 국가의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점이다.

 

둘째, 타 국가의 상업 영화 콘텐츠에 대한 외교 문제 비화를 통해 한 국가의 문화예술 표현물을 양국가의 정치 경제적 문제로 결부시켜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한 국가의 예술과 문화 창작의 자율권을 훼손한 행위이다.

 


셋째, 영화가 상영되기도 전에 나온 입장으로, 타 국가 창작물에 대한 사전 심의를 한 것이라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을 행한 것이고, 만일 작품을 보지도 않고 작품을 평가했다면 언론 종사자와 국가를 대표하는 장관으로서 매우 경솔한 행위를 한 것이다.

 

넷째, 이것이 정말 문제인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일본 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산케이 신문 기자라면 일본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출입처가 많고 진실을 파헤칠 충분한 자원이 있다. 장수국인 일본에는 지금도 2차대전에 참전했던 군인 생존자들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부인할 때는 말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는 것이며, 은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관방장관의 주장은 한층 더 어이가 없다. 류승완 감독이 15일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창작된 이야기라고 밝혔는데, 그 앞 대목인 실제 사실을 기반이란 부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창작된 이야기라는 점만 편집하여 브리핑했다. 이러한 논리적 문제는 중학교 수준의 작문공부와 기초 논리학만 알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 장관의 브리핑은 기본이 안 된 브리핑이다. 일체 반론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대외 이미지

 

일본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정부와 보수 언론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지배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자 한다. 그들은 한국인 피해자들의 고통과 역사적 아픔에는 관심이 없다.

 

둘째,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은 제국주의 시대 자신의 도덕적 만행이 전 세계에 드러나 자신의 기업들이 생산해 낸 제품들이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한류 스타를 앞세운 한류 드라마와 영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사 문제가 국제 사회의 쟁점이 되거나 국내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줄까하여 여론 방어막을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나가사키현의 근대관광자원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군함도는 탄광유산으로서 석탄 자원의 활용이라는 일본에게는 메이지 시대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근대 문화유산이겠지만, 한국인에게는 독일인의 유태인 학살 유적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부정적 문화유산에 더 가깝다.

 


한국인이나 아시아인에게는 치욕적인 장소를 세상에는 아름다운 관광상품으로 포장하는 그들의 기술이 놀라운 한편 가증스럽다. 우리나라는 발전된 영상콘텐츠 생산 능력을 통해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를 더 많이 만들어 한류 콘텐츠 형태로 전세계에 더 많이 유통시켜야 한다. 일본의 과거 포장기술을 넘어 베일에 감춰진 그들의 침략 사실에 대해 전 세계인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한 번도 시인한 적이 없다는 사실 역시 세계인들에게 알려 나가야 한다.

 

 

과거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시대를 퇴행하는 영화인가?

 

<군함도> 쟁점에 대한 인터넷 댓글들을 확인해 보면 최근에는 반일정서에 대해 안티-반일정서가 강한 것 같다. 어떤 네티즌은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피해자 의식에 갇혀 증오감을 기본으로 하는 반일감정에 빠져 있는 한국인이 한심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 어떤 네티즌은 국가 간의 전쟁은 항상 있어 왔고 패전국은 승전국의 지배를 받고 침탈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70년이 지난 문제로 피해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나라는 없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어떤 네티즌은 “4차 산업과 고령화의 대두로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이 때에 아직도 과거사 문제에 빠져 중요한 시기를 놓쳐선 안된다. 우리에게는 반일이 아닌 극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위의 주장들은 다 일리가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역사를 퇴행하는 행위라는 주장에는 찬성할 수 없다.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 문제에서 일본처럼 책임 회피를 하는 나라 역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천재성 있는 민족이라는 유태인은 아직도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 문제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 유태인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국이 낳은 최고 수준의 감독이다. 최첨단 CG기술을 동원해 <쥬라기공원>이나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만들었고, 트랜스포머의 제작 및 기획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옛날 영화이긴 해도 <ET><그렘린>,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를 보면 인간 상상력의 위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는 첨단 SF영화만 만들었던 것이 아니다. 유대인으로서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여 나치에 의한 동족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 외신들은 2차대전의 산물인 <쉰들러 리스트><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식상한 소재로 역사를 퇴행하는 구닥다리 같은 영화로 평가했을까? 아니다. <쉰들러 리스트>1994년 미국에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리고 지성계를 대표하는 전미 비평가협회상 역시 수상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참 놀랍지만 1995년 일본 아카데미상 외국작품상도 수상했다.

 

과거의 역사 소재를 현재 영화화 하는 것은 결코 역사를 후행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민족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자세와 과거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하는 K-POP의 방향과는 별개로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문화콘텐츠의 방향이기도 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외신들도 결코 과거에 사로잡힌 민족성이라는 식의 비평을 하진 않는다.

 

더구나 영화 <군함도>에서 다룬 위안부와 강제동원 부역자를 소재로 한 국내 영상 자료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소재의 발굴 측면에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일본의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는 과연 올바른 것인가?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태도 비교

 

한국인이 종전 70주년이 넘었음에도 일제강점기의 40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일본을 쉽게 용서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나라 민족이 속이 좁거나 한 많은 민족성 때문이 아니다.

 

역대 전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 국가가 있었지만, 일본의 통치 방식은 매우 악랄했다. 또한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책임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자신보다 강한 미국과 유럽에 대한 과오는 쉽게 인정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자신의 과오와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중성 때문이다.

 

2차 대전 전범국가로서 일본과 독일의 태도는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독일과 일본이 다른지 알아보도록 하자.

 

일단 과거의 과오에 대한 인식 차이다. 독일은 자국이 저지른 과오를 잊지 않고 그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완수하려한다. 이러한 방식은 네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국가 지도자의 솔선수범이다. 1970년 독일 총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희생자기념비를 찾아가 스스로 무릎을 꿇어 국가를 대표하여 유대인에게 사죄하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5년 메르켈 총리는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을 맞아 다시 한번 독일의 책임은 영원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에 비해 일본 수상은 어떠한가? 한국과 중국 정부를 비롯 국제사회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수차례 요구했다. 뉴욕타임즈와 독일 메르켈 총리도 전적으로 한국 입장에서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현 일본 수상 아베 신조는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말을 하며 과거사에 대해 사죄는 커녕,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합리화 했을 뿐이다.



둘째, 실제 피해자를 찾아 배상 및 보상을 하거나 기념을 하는 자세이다. 독일은 2000년에 기억책임미래 재단(EVZ)’을 통해 2차 대전 때 나치 수용소 등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던 피해자 4,000만명 중 생존자 170만 명에게 배상금을 전달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독일은 국내 보상입법과 국제 조약과 기업과 민간에 의해 다양한 차원에서 보상을 실시했고, 지금도 피해자를 찾아 배상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전쟁 배상 책임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1. 독일의 보상제도는 국적을 초월하여 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전쟁 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을 수행하다가 피해를 당한 자가 중심이 된다. 보상 대상자가 대부분 전쟁 참전 군인 중심이며 당시의 계급에 따라 피해 보상이 된다.

 

참 분노를 하게 만드는 것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식민지 국가 국민들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의 발효와 더불어 국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1945년에 학도병으로 끌려가 사지가 절단되는 상해를 입었던 조선인은 당시엔 일본인이라 피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전쟁 후에는 국적이 상실되어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독일은 전쟁 배상에 있어 개인에 대한 구제를 1차 목적으로 했다. 정부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해당 국가보다 피해 개인에 대한 배상에 더 중점을 두고 배상을 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얼마 되지 않는 대외지불금을 정부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원하며 모든 전쟁 책임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일본에 의한 전쟁 배상은 한국인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 없다.

 

3. 독일의 국내 보상법은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나치 피해 외국인에게 동등 되게 적용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전쟁 희생자 구호는 철저히 현재 일본인 국적자에게만 적용되었으며, 그 액수도 대외 지불금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큰 액수였다.

 

4. 독일의 경우 부분적이지만 강제부역자 중 당시 독일인보다 낮은 봉급을 받고 노동에 종사했던 피해자들에 대해 기업들이 보상하도록 민간 기업의 보상금 지불을 허용하였으나(독일 연방하원은 19901031일 민간기업의 보상금 지불 촉구를 결의하였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모든 계산이 끝났다고 과거 강제 동원되었던 자들의 미불 임금 지급 요구 등을 철저히 거부해왔고, 정부가 앞장서서 그 방향으로 행정지도를 하고 있다.

 

5. 독일의 정부와 기업, 민간이 대외적으로 배상, 보상으로 제공한 액수는 일본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쿠데타로 집권한 대표성 없는 한국 정부와 맺은 한일조약으로 모든 것이 종료되었다고 하지만, 독일의 경우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배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셋째, 독일은 자신의 반인간적 혐오행위를 기억하기 위해 역사적 공간을 복원하고 박물관이나 기념관 형태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본토에 유대인 박물관과 추모공원을 짓고 추모작품을 거리에 설치하는 일을 장려하고 있다. 수도 베를린만 해도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 여러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사당 앞 쪽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념비인 2711개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브란덴부르크 문과 프리드리히 거리, 포츠다머 광장 등 주요 관광명소로부터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도시의 가장 알짜배기 땅을 홀로코스트 기념 공간으로 배려하고 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어떠한가? 샌프란스시코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일본 대사를 소환하는 등 자국 영토가 아닌 외국에 세워진 기념비와 추모비에도 간섭을 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 국가인 한국에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서도 2015년 박근혜 정부와의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근거로 조속한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 <군함도>로 화제가 된 나가사키현의 하시마섬 역시 한국인 강제부역자들의 노동 관련 자료를 함께 공개한다는 전제하에 20157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나 한국인 부역자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고, 현재 그 문제를 공론화 하는 영화 <군함도>가 국내 상영되자 일본 언론을 통해 역사 왜곡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보이고 있다.

  

넷째, 독일 민간 차원에서도 나치 희생자들에 대한 기념 사업이 활발하다. 독일 시민들에 의해 추진되는 발부리 아래의 돌프로젝트는 유명한 실례가 된다. 나치에 끌려가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생전 그가 살던 집 길가 보도블록에 금속판을 박아 희생자를 기념하는 사업이다. 정사각형의 금속판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나이, 어디로 끌려가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간략한 일생의 기록이 새겨진다.

 


일본 민간 차원에서도 2차대전 한국인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기념 사업을 하는 재야 일본인이 있긴 하다. 일본 탓에 원자폭탄에 희생된 한국인에 대해 사죄한 재한 피폭자 도일치료 위원회는 1984년 설립 이후 572명의 피폭자에 대한 치료비와 항공료를 지원한 예가 있고,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인 희생자를 추모하며 일본에 묻혀 있던 조선인 유해 발굴을 돕는 후쿠도메 야스오와 같은 양심적인 인물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민간 차원의 한국인 희생자 기념 사업은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기타, 한일협정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사실

 

한일 협정 당시 받은 배상금은 정말 많은 돈이었는가?

 

혹자는 당시 무상공여 3억 달러, 장기 저리 차관 2억 달러, 민간 상업 차관 1억 달러는 상당한 액수라는 주장이다. 필리핀만 55천만 달러로 우리나라보다 많을 뿐, 베트남은 3900만 달러, 라오스는 300만 달러, 캄보디아는 450만 달러, 버마 2억 달러, 말레지아 1700만 달러, 인도네시아 22308만 달러에 비해 한국은 이들보다 훨씬 많은 배상금을 받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필리핀은 자신의 국토가 태평양전쟁의 전장이 되어 피해가 컸고 110만명이 마닐라대학살 때 희생됐으며 미국과 함께 독립전쟁을 수행하여 승전국의 위치에서 협상을 했기 때문에 배상금이 많았다는 점을 얘기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그들의 주장은 매우 근시안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필리핀은 1941년 일본군이 상륙하여 1945년 미국에 의해 물러갈 때까지 4년 기간 동안, 실제 점령당한 시기는 3년이 채 안 된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지배를 받으면서 주로 병참기지로 자원과 노동력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1908년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직적으로 조선의 자원을 착취했다. 그리고 필리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광복군도 2차대전에 참전하여 미국과 함께 싸웠다. 우리나라도 승전국이다.

 

다른 것은 따져볼 필요도 없이 1938년에서 19425년 동안 일본이 조선에서 강탈해 간 금만 121.6톤이다. (1997년 간행된 엘지금속 60년사 자료 참조) 은이나 철광석과 석탄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이 104톤이다. 1940년대는 한국 경제규모가 매우 작았고 세계 경제가 금 본위제로 운영되었고, 전쟁이 한창 때라 인플레이션이 높았으며 안전자산으로 금값 수요가 매우 높았던 점을 생각한다면 그때 강탈해 간 금만 하더라도 한일협정 당시 일본에게 받았던 3억달러만 못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금은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강탈해 간 자원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된다. 결론은 한일협정 때 받은 돈은 매우 적은 돈이었다.

 

 

일본은 개인 피해자 보상에 최선을 다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일본은 한일협정 당시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구두 내용 자료를 제시하며 한국의 개인 피해자가 배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일본 정부 때문이 아니라 당시 한국 정부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가 일본강점기에 대한 서류와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피해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한국 정부측에선 일본 관원이 한국에 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일본이 자료와 지급액 초안을 넘기면 한국이 책임지고 지급한다는 구두 이면합의를 통해 지급 전권을 한국 정부가 갖게 된 사실을 지적한다. 물론 당시 한국 정부는 개인들에게 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도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때를 돌아보면 1965년 한일협정을 시행한 박정희 정부나 국민을 속이고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한 박근혜 정부나 참 아쉬운 부분이 많다. 당시 군사정부는 일제 36년간 입은 모든 피해를 실제 피해자인 당사자들의 개개인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유무상 원조를 일말의 사죄 없이 배상금이 형태가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란 명목으로 받아 당사자들인 피해자들에게는 한푼도 건네 주지 않고 다른 쪽으로 돈을 전용했다. 경제개발 종잣돈이란 명목으로 개인의 사유재산을 착복한 것이다. 사실 경악할 일이다. 지금 한일관계에 있어 은원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일본 지도자들이 한국을 우습게 보고 사죄를 하지 않는 데에는 이들 군사정권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 합의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쿠데타로 집권한 정통성 없는 정부와의 협약이었고, 또한 한일협정 당시 피해 당사자인 한국 국민들은 대부분 협정을 반대했다. 그런데 그런 국내 정서를 뻔히 알고도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둘러 시행한 졸속 협정이었다. 둘째로 일본이 명시한 피해자 배상에는 강제로 동원된 강제부역자와 위안부와 같은 민간 부분 피해자에 대해 명시된 내용이 없었다. 물론 그 협정문에는 그 이후에는 어떠한 추가적인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명목의 항목이 들어가 있어 이 항목을 근거로 일본은 어떠한 추가적인 보상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일단 민주적 정통성 없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여 대표성이 없는 정부임에도 피해 보상 규모나 피해 목록에 대한 조사 없이 일본의 외환보유고만 대충 어림잡아 배상금을 청구한 당시 한국 정부의 졸속 행정이 문제이지만 일본 정부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독일이었다면 현재 일본과 같은 무책임한 자세를 취하였을까? 현재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 강제 부역자들 등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보이는 무책임한 대응자세를 보면 한일협정 당시 개인 피해자에 대해 직접 보상하겠다는 그들의 말이 정작 진실이 아닌 정치적 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후 보상을 하지 않기 위한 정치 경제적으로 철저히 계산된 의도된 말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일본인들이 한국인 피해자에게 일말의 미안한 마음과 공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배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배상문제를 떠나 일단 잘못했다는 시인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시인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위안부 소녀상이나 영화 <군함도>에 대한 왜곡된 보도를 일삼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국가이다.


사진 출처: MBC, 허핑턴포스트, 유튜브, 직썰, KBS,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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