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피소, 예술이란 이름의 야만을 경계하며

최근 김기덕 감독은 4년 전 발표한 영화 <뫼비우스>의 여배우 A씨에 대한 폭행과 강요 혐의로 피소를 당했다. 김기덕 감독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저예산과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국제 영화 비평가들에게 한국 영화의 높은 예술성을 알려온 명감독이기 때문에 이번 피소는 결과에 상관없이 감독의 명예는 물론 한국 영화계와 대중문화 전반에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여배우 A씨는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폭행과 강요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감정이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실제 뺨을 때리는 폭행을 당했다는 점과 두 번째로 대본에 없는 베드신을 강요받아 영화에서 하차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본상에는 여배우가 남성의 중요 부위 모형을 손으로 잡는 연기가 기록되어 있었으나 촬영장에서는 실제 남성의 부위를 잡는 형태로 바꿔 연기를 지시하는 바람에 큰 수치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어서 네티즌 사이에도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김기덕 감독 측에서는 먼저 A씨의 폭행 주장에 대해선, 뺨을 때린 것은 인정하지만 당시 폭력적 장면 연기 지도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음을 주장하였고, 대본에 없는 베드신 주장에 대해선 시나리오에 없는 베드신 과정은 없었다면서 A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이 A씨에게 대본과는 다르게 실제 남성의 무리한 부분을 잡도록 강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년 전 벌어진 문제가 최근 고소 사건으로 비화된 것은 최근 발효된 영화인 신문고 제도를 통해 영화인노조가 강력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 고소사건은 사건의 중요성을 인정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 배당되었다.



제작자의 창작의 한계점을 바로잡아야

 

우선 예술영화의 저변도가 낮은 한국 대중영화계에서 제작비 부족과 고정 관객층 없이, 보아주는 이가 없는 고독한 경주를 해온 김기덕 감독이 이번 사건을 통해 예술 창작에 대한 불꽃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을 보며 놀라면서도 김 감독의 작품 세계를 보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감독은 기존 작품 속에서 남여 캐릭터를 묘사할 때마다 남성에 있어 마초 성향과 여성 묘사에 있어 주로 성적인 피해자 이미지를 구현해왔다. 그리고 저예산 상황을 감안하여 늘 유명배우들에게 출연료 디스카운트와 짧은 기간 몰입 촬영으로 제작 기간 단축을 통해 제작비를 절감해 왔고, 짧은 시간에 촬영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과 강압된 수단이 사용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상식과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강렬한 주제의식을 표현해온 김 감독의 예술세계는 관객들은 물론 배우들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배우들과 일일이 협의하고 이해를 구하며 영화를 제작하기에는 애초에 어려웠으리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여배우들과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으리란 점은 자명해 보인다. 김 감독이 섭외한 남성 배우들은 연륜과 연기 경력이 많고 김 감독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는 배우들이 많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남성의 노출 연기에 대해 여성에 비해 훨씬 관대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해 비해 김기덕 감독 작품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들은 신인이나 연기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이 많았고 김기덕 감독이 묘사하는 충격적인 장면들은 여성 배우의 이미지에 영구적으로 상당한 부정적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A씨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 경력이 상당히 된 40대에 이른 배우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영화 촬영 현장은 언제나 대본과는 다르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대본은 어디까지나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창작자의 두뇌 속에 형상화된 이미지이다. 현장에서 더 좋은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면 충분히 현장에서 수정될 수 있고 편집과정에서 편집될 수 있다. 예술성을 추구하는 감독일수록 더 좋은 장면과 이미지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감독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김기덕 감독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작품 내용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아무리 세계적인 감독이며 거장이며, 그 시나리오가 세계 영화제에 수상할 정도로 예술성이 우수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연출력에 있어 엄연히 한계점이 존재해야한다.

 

첫째 배우의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 속 폭력 장면 묘사를 위해 폭행 장면 연출이 필요하다고 해도 배우의 동의 없이 뺨을 때리거나 기타 다른 부위에 해를 가해선 안 된다. 베드신이 영화 작품의 깊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하더라도 노출 수준은 여배우와 반드시 사전에 약속된 수준 이내에서 촬영되어야 한다.

 


배우가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는 연기력에 충분히 빠져 있지 못하다고 해도 대화와 설명을 통해 작품 세계의 이해에 도달하게 하든지, 그것이 어렵다면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 무조건 쫓아오게 만들든지 어떻게 구워 삼든 그것은 자유이지만, 적어도 그 모든 과정이 배우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둘째 배우의 자발적 동의가 있다 하더라도 배우의 생명과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김기덕 감독 자신도 시인하고 있는 바이지만 예전 영화 <비몽>에서 자살 장면을 찍는 장면에서 여주인공 이나영은 목을 매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연기 도중 실신하여 생명이 위험했던 경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 때 김기덕 감독도 충격을 받고 영화가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배우를 괴롭혀야 되나 하며 펑펑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SNS상에 논란을 일으켰던 조창호 감독의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는 여주인공 서예지가 극중 인물 정원과의 씽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감독으로부터 연탄가스를 실제 마시는 장면과, 중앙선 침범 운전 연기를 주문받기도 했는데, 극중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감독과 배우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행태는 결코 영화의 발전을 위해 옳지 못하다. 그런 식의 논리가 맞다면 매번 살인 장면 연출을 위해 살인하고 자살 장면 연출을 위해 실제 자살을 해야 하는가? 실제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본 것처럼 실제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본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이 연기력의 진수이다.

 


셋째, 배우에 대한 인격 모독이 있어서는 안된다. 옛날 제작 방식에 익숙한 감독 연출자일수록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기력 수준을 높일 것을 주문함과 동시에 욕설과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리한 밤샘촬영과 무리한 노출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열악한 제작환경의 한계를 배우들의 열정페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과거식 관성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배우가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고 현장의 관행이란 미명하에 그런 행위가 상당 부분 용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배우가 발연기를 한다는 것은 배우의 문제 이전에 캐스팅의 문제이며, 연기지도의 문제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욕밥을 먹어야 성장한다고 믿는 제작자들에게는 약이 따로 없다. 언론의 뭇매와 네티즌들의 집요한 악플에 한 번 고생을 해봐야 한다. 그래야 그런 생각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비난은 결코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시대를 분별하자.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세상에서 촬영 과정 역시 작품화의 한 단계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옛 속담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오늘날처럼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세상도 없다. 옛날이라면 그냥 듣고 넘어가는 문제일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날 갑자기 SNS상에 과거에 했던 욕설과 자신의 문제가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오를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처럼 4년 전의 문제이든, 10년 전의 문제이든, 어떤 인물이 그 문제를 거론하면 그 화제가 인터넷 상을 뜨겁게 달구는 데는 몇 시간이면 끝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는 아무리 위대한 거장 감독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조연배우와 엑스트라처럼 보잘 것 없는 배역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인격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감독과 연출자의 창작의 한계점은 배우의 자유의지와 생명과 명예를 고려한 행위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본적 조건을 침해하는 창작행위는 예술이란 미명으로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착취하는 비인간적인 야만행위일뿐이다. 예술은 비인간화 된 세상에서 인간성을 보존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상식과 통념에 갇힌 세상에서 인간성을 고양해 나가는 인간의 도구이다. 이러한 예술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촬영 현장에서도 배우들의 권익과 신분이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촬영 현장의 갑과 을의 균형점을 찾아 주어야

 

그리고 이번 사건을 단순히 김기덕 감독 한 명과 배우 A씨의 개인적 악연에 대한 문제로 회귀시킨다면 우리 영화계에 실익이 없다. 이 문제를 그동안 촬영 현장에 있어 왔던 갑과 을의 맹목적 주종관계를 해체하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우리 문화계에 만연된 갑의 횡포로부터 을의 수난을 종결시킬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대중영화계는 평화로워 보이고 상호평등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속내를 들여다보면 갑과 을의 갈등과 위계서열이 존재한다.

 

우리 대중문화계는 아직도 갑을관계가 상당부분 존재한다. 이 사건이 최근 설립된 '영화 신문고 제도'와 영화노조에 의해 사건이 발생한지 4년 이후에나 겨우 정식적으로 문제 제기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이 아닌 문재인 정부 때에 와서야 공론화 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터와 같은 영화 현장에서 사령관과 같은 총 지휘권을 감독에게 주어야 영화 통제가 가능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사공이 많은 촬영 현장에서 강력한 감독의 카리스마 없이 영화가 갈 길을 잃게 되면 결국 피해는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은 당연 이치다.

 

그러나 한 명 한명의 배우는 예술가이고 스탭들도 예술가이다. 저마다의 창작의 세계와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진 인격체이다. 그러한 소중한 인격체와 작품세계가 단순히 지위가 낮고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차별을 받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갑과 을 관계는 사실 예술 제작 관계에는 맞지 않는 구도이다. 예술은 다양한 가치를 포용한다. 단일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하나의 진리가 아닌 수많은 진실의 가능성을 믿는 세계이다. 이러한 예술 활동에서 일방적인 주종관계와 위계서열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가치관을 중시하듯 배우들의 저마다의 개성과 연기철학과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여배우들에게 노출은 인격 살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감독에게는 수십 편 찍은 영화에 출연한 수십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에 해당될 수 있고 애정이 담긴 한 명의 캐릭터일 수 있지만, 배우 자신에게는 평생을 가는 주홍글씨로 작용 될 수도 있다. 결혼도 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야 하는 여성으로서 신중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디지털 시대에 모든 영화자료는 영구히 남는다. 그런 영화 속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 여성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특히 협상력이 없어 출연 기회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신인에 대해서도 배우로서의 신분 보장과 사전 계약서로 노출 수위를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 예술이 아닌 과정의 예술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결과만을 중시 해왔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결과만 좋으면 모든 과오를 덮어주는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경제개발만 해주면 민주화 탄압을 합리화 할 수 있었고, 시청률 높은 드라마를 찍기 위해서라면 막장 소재도 불가피 하고, 블록버스터 영화 흥행을 위해 스크린 독과점과 가난한 영화인들의 삶을 무시해 왔다.

 

감독은 영화로 말한다고 한다. 그것은 분명히 올바른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과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처럼 예술 활동도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것이다. 겉보기에는 초등학생 그림이나 별 차이가 나지 않는 피카소의 그림들이 위대한 것은 결과적인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릴 때까지 변천해온 피카소의 예술적 편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100미터 세계신기록도 금지약물을 복용해서 달성한 것은 취소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영화에도 그런 과정의 정당성이 작품의 성공에 결정적인 문제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아무리 우수하고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 위대한 예술작품이 예술가로서 다른 예술가들인 배우들의 인격을 침해하고 열악한 영화인들의 삶을 깨뜨린 댓가의 산물이라면 그 예술은 예술로서의 가치가 없다.

 

예술은 결과로서도 아름다운 예술품이어야 하지만 그 과정도 예술적이야 한다.

 

이 사건이 대중예술계에 만연된 갑과 을 관계의 올바른 균형점을 찾아주며, 협상력을 갖지 못한 신인배우들과 여배우들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창작자와 제작자의 제작 한계점을 명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

 

사진 출처:  YTN, 허핑턴포스트,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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