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 사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아이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지난 5151년 만에 컴백 무대를 선언한 AOA는 조직 결성 이후 최대의 고비를 겪고 있다. 컴백 무대를 앞둔 시점 등장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방송 사고와 대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차량이 일본 전범기업의 자동차라는 것, 그리고 무개념 PPL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논란에 촉매작용을 한 사건은 송혜교의 미쓰비시 광고 거절 사건이다. 최근 중국을 겨냥한 공격적 마케팅에 중국내 인기가 높은 한류 스타 송혜교를 광고 모델로 앞세우려 했던 미쓰비시 자동차의 파격적인 제의에도 불구하고,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모델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던 송혜교의 개념 발언들이 회자되면서 대중문화계에는 때 아닌 민족주의적인 여론이 조성되었다.

 


송혜교의 미쓰비시 광고 제의 거절 사건은, 글로벌 한류 스타가 국제 비즈니스 영역에서 민족주의와 비즈니스적 이해가 충돌할 때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적 화두를 제공하는 한편, 한때는 일본 전범기업 명단이 인터넷 상에 떠돌며 일본과 중국 광고에 등장한 한류 스타의 문제 사례 및 한국에 상륙한 일본 대부업체 광고에 모델로 출연한 국내 굴지의 스타들의 문제들이 사회적 쟁점화 되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번 AOA의 사건은 이처럼 반일정서에 기반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대두된 시점에 불거진 문제였기 때문에 보통 때 같으면 단순 연예계의 가십거리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구는 역사적 화두로 떠올라 순식간에 그 파장이 사회 각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은 다양하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공인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상식의 결여를 비판하며, 아이돌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통상적으로 갖춰야 하는 상식의 범주를 논하는 시각에서부터, 이 사건을 연예인 개개인의 한 인격의 문제로 보지 않고 최근 한국 근현대사에 무지한 이 시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비역사적 성향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즉 한국 역사교육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척도로 이 사건을 바라보며 역사 교육 부재의 작금의 교육 현실을 토로하는 시각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네티즌들의 입장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무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애국지사들에 대한 연예인들의 경박한 태도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시각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AOA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단순한 방송사고일까? 아니면 연예인들의 개인적 소양 문제일까? 아니면 방송을 제작한 온스타일의 책임일까? 혹은 역사교육의 부재가 원인일까? 그도 아니면 그동안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책임일까?



과연 누가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며, 누가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먼저, 당사자인 설현과 지민의 책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현과 지민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는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설현은 제작진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시도했고, 지민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를 '긴또깡'이라 부르며 야인시대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김두환'의 일본식 발음을 장난끼 섞어 부르며 빈정거렸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설현은 이민호와 함께 한국방문을 위한 국가 홍보대사이기도 하기에 안중근 의사에 대한 설현의 무지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즉 아이돌 설현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모르는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하게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할 홍보대사 역에 단순히 연예인의 미모와 이미지만을 고려하지 않았는가 하는 비판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현과 지민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아이돌은 일반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정규 교육과정과는 별도로 살인적인 연예계의 스케쥴을 소화해야 하는 직업군이다. 국사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옮고 그름을 떠나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더구나 컴백 무대를 앞두고 각종 촬영과 공연 연습으로 피로도도 극도로 높아져 있는 시기였고, 컴백 무대에 앞서 방송계에 등장을 신고하기 위한 예비 활동으로 AOA의 홍보 역할을 맡고 있는 설현과 지민은 누구보다 더 피곤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경우, 어떻게든 재미있게 해야만 한다는 강박감도 심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더구나 시간에 쫓기는 스피드 퀴즈에서 안중근 의사의 클로우즈 업 된 사진은 평소 교과서와 인터넷을 통해 보았던 잘려진 왼손 무명지와 함께 자주 공개되었던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에 비해 안중근 의사를 알아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한국사 교육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과 간략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 지금처럼 외모를 묻는 문제를 출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인물사진과 활동모습 영상물을 역사교육 자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그 인물의 역사적 존재 의의 자체도 제대로 모르면서 얼굴과 이름 석자 만을 아는 것으로 그 인물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풍조가 생길까 염려가 되서 하는 소리이다.

 

그리고 설현을 한국 홈보대사로 위촉한 한국방문위원회가 임명 전에 설현의 한국사에 대한 사전지식 수준을 홍보대사 선정의 최우선 조건으로 고려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설현을 총선 홍보대사로 임명한 선관위가 설현에게 선거법에 대한 사전 지식 유무를 고려하지 않은 것과 입장이 같을 것이다.



오히려 이번 문제에는 온스타일 제작진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먼저 온스타일의 제작팀의 기획의도에는 공감하지만 그 편집 방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청소년과 젊은층에 인기가 많은 아이돌을 통해 일상적 삶과 유리된 역사문제에 접근하는 방향은 참신한 시도였다. 예능프로에 나름 미디어의 교육적 역할을 접목시키려 했던 기획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일이었다.

 

다만 진중한 역사적 인물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근대사의 문제를 오락적 소재로 전락시킨 것은 문제가 있었다. 아직 우리 국민들은 눈물을 거두고 근대사를 조명할 만큼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한 인물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가슴 언저리에 여전히 남아 있고, 아직도 일제청산은 더디기만 하며, 희생자 개인 차원에서 일본으로부터 어떤 사과나 배상도 받지 못한 상황이기에 근현대사를 바라볼 때 민족적 울분이 해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프로그램에선 순국선열에 대한 퀴즈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궁극적으로 연예인의 자질 문제가 불거질 것을 뻔히 알고도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충분히 편집할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문제 장면들을 제대로 편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사람의 인격에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긴도깡'과 같은 용어를 웃음을 유발하는 소재로 삼은 것은 프로그램의 공영성을 지키고, 출연자를 보호해야 하는 제작자의 사명을 저버린 태도였다.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몰라본 설현과 '긴도깡' 발언을 통해 물의를 일으킨 지민의 행동이 먼저 문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순국지사들이 남긴 몇 점 안되는 생전 사진을 예능프로그램의 우스개의 소재로 삼은 제작진의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근원적인 문제의 발단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도요타 자동차 뮤비 촬영과 PPL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삼성 갤럭시폰의 핵심부품인 카메라 센서에 일본기업 소니 제품이 탑재되어 있다는 것을 가지고 삼성전자를 반민족적 기업으로 명명하진 않는다. 더구나 2차 대전 당시 반인륜적 전범기업인 IBM이나 BMW나 폭스바겐에 대해 불매운동을 한다거나 그 제품을 쓴다고 해서 매국노나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지칭하지도 않는다.

 
혹 도요타는 일제시대 때부터 존재하였으니 전범기업이고, 소니와 혼다는 전후 설립된 기업이니 PPL을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2차 대전 이후 전범기업을 규정하는 데 있어 매우 단편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말 국가 패망 직전에 마지막 사력을 다해 본토와 식민지의 모든 자원과 인력에 대해서 총동원령을 내린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당시 전범기업이 아닌 기업이 어디있겠는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업이라 하더라도 소니와 혼다 역시 그 당시 전신이자 모체가 되는 기업이 있었을 텐데 기업이 이름만 바꿨다고 전범기업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할 진데 유독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처사가 아닌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대결을 벌이는 20세기 초반도 아니고, 생산품과 자본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국제분업과 국가간 상호의존도가 높은 세상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경제와 문화에 있어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더구나 아이돌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류의 초점이 되고 있는 KPOP의 특징은 국제성과 글로벌스탠다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작곡과 편곡, 안무 등에 있어 국제적 협업과 조직 구성원의 세계화를 통해 민족성과 토속성을 뛰어넘는 범세계적 보편성과 초국가적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한류 KPOP 스타는 단순히 민족주의의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아니다. 이것은 한류 스타 아이돌들이 역사의식도 민족적 주체성도 없는 국제적 미아로서 아이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와 민족적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보다 넓은 가슴과 높은 이상을 가지라는 말이다.



좀 더 아이돌들에 대한 너그럽고 포용적인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국내팬들은 아이돌을 비롯한 한류 스타들이 이미 한국을 넘어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은 물론 아시아를 초월한 남미와 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제적인 공연 예술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국내팬들은 자신의 아이돌과 한류 스타들이 범국가적 대중 연예인이기에 앞서 먼저 한국인으로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충실한 젊들이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범 국가적인 인류의 예술과 문화의 교류에 앞장서며 국제적인 글로벌 예술을 창조하여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인류애를 실천하는 예술가이기보다는 전 세계에 한국 민족의 우수성과 국가 이미지 제고를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문화컨텐츠 산업 수출의 최전선을 담당해 주길 바라는 바가 더 크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 대한 입장이 이율배반적이다. 일본에서 오리콘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길 바라고 일본 문화산업 전반에서 인기를 누리길 원하면서도 일본인에 대한 증오와 과거사 문제를 잊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

 

적당한 시기에 꼭 독도문제와 정신대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민족감정을 건드려 정치적 기반을 장악하는 자민당의 정치적 노림수에 항상 당하기만 해서일까

 

그러나 일본인들의 입장을 놓고 생각해 보자. 자신들을 미워하고 자신들을 싫어하면서도 음반과 공연표를 사주길 바라고, 자신들 앞에선 '사랑해요 일본' 이렇게 외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반일' '일본 타도'를 외치는 한국 스타들을 정말 믿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라는 국가 정부와 민족으로서 일본인, 대중예술 팬으로서의 일본인을 구분한 대중문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연예인들의 사적 담화도 빛의 속도로 전세계에 공유되고 일단 디지털화 된 모든 정보는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SNS와 빅데이터 시대에 그런 기만적인 상업전략이 통할 것이라 사려되는가? 우리는 일찍이 2PM의 재범 사태를 통해 사적 공간에 올린 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비하 발언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진정성을 담은 예술을 위해 아이돌을 반일 애국지사로 키우려 하기보다는 범세계적인 인류애를 가슴에 품은 글로벌스타로 키워가는 것은 어떠한가?

 

만일 정말 일본이 싫다면 보아와 동방신기, 욘사마와 카라 모두 반민족 범죄인으로 낙인찍어 우리 대중예술문화 영역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송혜교의 미쓰비시 광고 제의 거절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모범이 되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AOA 사태가 많은 이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 이번 AOA 사태는 좀 더 관용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성질의 사건이라 본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책임을 짊어지기에 설현과 지민은 너무 어린 학생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오를 다 덮어버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기획사의 글로벌 에티켓 교육이 아쉽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그 나라에서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기와 성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매우 깊다. 특히 근현대사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정신적 부채감이 유독 크다. 이번 사태에 있어 네티즌들의 반응이 냉담한 것도 단순히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못 알아본 것 때문이 아니라 애국지사들을 대하는 설현과 지민의 태도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부채감과 존경심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글로벌 스타라 하더라도 한 나라가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반드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한류 스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통해 설현과 지민은 좀 더 대중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아이돌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심한 댓글들에 주눅 들지 말고 이번 일로 경험한 여론의 뭇매를 보약으로 삼고, 그만큼 관심 받는 존재임을 재확인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문제가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대중들의 설현과 지민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AOA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몇 안되는 한류 그룹 중 하나이다. 카라 이후 일본에서 특별한 인기를 보이고 있는 가수들이 없다. AOA가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인기를 얻어 한일 간의 대중문화 교류에 이바지 하는 좋은 아이돌 그룹으로 재도약 하길 기원한다.

 


......안중근 의사라면 지금의 설현과 지민에게 무슨 말씀을 남기고 싶으셨을까
?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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