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사망 이유를 철저히 밝혀야 하는 이유?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61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한국 포크계의 전설 김광석의 사망 원인을 놓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2000년대 이전 사건이라 이미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경과한 사건으로서 재수사가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MBC 보도국 출신의 이상호 기자가 20년간 파헤친 김광석 죽음에 대한 사실 규명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방영되면서 새삼스럽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중들은 김광석이 죽은 이유가 상습적인 우울증과 여자 문제로 인한 부인과의 갈등으로 자살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자살로 규정하고, 일체 타살의 가능성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영화 <김광석>를 통해 타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정황적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살인 혐의는 그의 아내 서해순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김광석의 죽음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었는가, 아니면 재산을 노린 아내에 의한 비극적인 타살이었는가?

 


마침, 어디선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김광석의 무남독녀인 김서연양이 이미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경과한 사실이 세상에 밝혀져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데 서해순씨는 급성폐렴으로 죽은 딸의 사망 사실을 지금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 친지들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나 그 동기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현재 생전에 김광석을 사랑해왔던 많은 팬들과 영화 <김광석>을 본 네티즌들은 이 사실에 격분하여 인터넷과 SNS상에 분노의 댓글을 달고 있다. 이에 대해 서해순씨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 등 인기인의 죽음에는 미스테리한 의혹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왔다면서 그러나 자신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마녀사냥식 언론 플레이의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 일각에선 정황적 증거만으로 범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법부의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면서 이상호 기자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영화 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 이 사건은 진실의 실체에 다가서기 어려운 사건이다.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지났고, 사인을 밝혀줄 강력한 단서인 시신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줄 주변 증인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객관적으로 증명해줄 만큼 뚜렷한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상호 기자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질 수 없었고, 따라서 영화 <김광석>에서 다룬 정황 증거들은 주변 인물로부터 얻어 들은 간접 정보에 기반을 둘 수 밖에 없었다. 서해순씨는 김광석 사후 시아버지와 김광석 모친, 형과 수차례 재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진행해 왔다. 따라서 정보의 출처가 일방적으로 서해순씨에게 불리한 김광석 유족 측의 주장에 근거한 자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서해순씨에 의한 김광석 타살에 대한 반론

 

그러한 의미에서 <뉴시스> 김호경 사회부장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김광석 부녀 살해범, 위태로운 추론이란 기사는 꼭 한번 읽어봐야할 중요한 기사이다. 그는 영화 <김광석>이 다루고 있는 정황적 증거의 한계점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해 주고 있는데 김광석 사망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에서 제시한 증거들은 파편적인 가설의 나열일 뿐, 세부적으로 들어갔을 때 범행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

 

둘째, 시신부검상 타살의 특이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자살로 보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타살의 개연성을 보여주기는 부족한 증거들이다. 경찰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검을 실시한 것이다. 단 부검 결과 자살로 판명이 났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목에 줄이 감겨 죽은 망자의 사인이 의살안지 교살인지 파악하는 것은 검사와 의사가 함께 참여하는 검안 및 부검 중에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한다. 더구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저명인사의 죽음을 놓고 타살을 자살로 둔갑시킬 만한 이유가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담당 경찰과 검사, 의사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야만 가능한 사항이다.

 

셋째, 김광석의 일기장을 본 심리부검 전문가는 그 일기장에서 전형적인 자살 심리 패턴이 나타났다는 전문가 소견을 밝히고 있다.

 

넷째, 서해순씨의 이혼경력과 영아살해 팩트를 주장할 때, 이상호 기자는 그녀가 그 상황에서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다섯째, 김광석 사망 후 시댁과의 막말 사건과 재산권 분쟁은 분명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사건이지만, 집안의 분규가 어느 쪽에 귀책 사유가 있는지는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지만 영화에는 서해순씨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여섯째, 김광석 자살 이유로 지금까지 유력하게 제기되어온 김광석의 여자 친구 문제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서해순의 김광석 동창과의 불륜문제 만큼 동등하게 다뤄주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김호경 부장은 서씨를 살인범으로 지목하는 데 동의할 수 없으며,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증거재판주의의 법리로나 정황 증거만으로 서씨를 부녀 살해범으로 대중 앞에 선포한 것은 잘못된 확증편향이라 결론 내리고 있다.

 

김호경 사회 부장의 글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들도 많았다. 그분들도 김광석의 팬들이다. 김광석의 죽음이 억울해선 안 되듯이 그 유가족 역시 억울한 일을 당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분들이 김호경 부장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는 국가 공인 기관에서 실시한 부검 결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부검 오류로 사인이 뒤바뀐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부검을 통해 자살을 타살로 조작하기 위해선 서해순씨의 요청으로 경찰, 검찰, 부검의가 공모를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전두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삭흔의 경우, 스스로 목을 맨 경우는 체중 때문에 줄의 흔적이 목 앞 부분에만 남을 수 있고, 누군가 뒤에서 목을 조르게 되면 목 앞과 뒤에 동시에 줄의 흔적과 몸 어딘가에 반항한 흔적이 남는다고 한다. 따라서 육안으로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타살을 자살로 오인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김광석 사건에 대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영화 <김광석>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의혹들을 풀어주어야 할 경찰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사건의 경우 초동수사가 너무 부실했다. 그때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광석 사망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고 있는 서해순씨의 과거 행적에는 너무 많은 의심스런 행동 패턴들이 나타나고 있고, 무엇보다 현재와 앞으로도 100억원대 김광석의 저작권과 초상권으로 지속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인데, 생각해 보자. 만의 하나 서해순씨가 김광석의 진짜 살인범이라도 된다면 김광석의 팬들이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듣는 음원과 보는 뮤지컬과 영화의 모든 저작권 수익이 김광석의 살해범에게 귀속되게 된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또한 이것은 서해순씨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만일 서해순씨가 경찰 조사에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대중들은 서해순씨를 진짜 김광석의 살인자로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김광석 관련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즉각 중단하게 될 것이다. 물론 서씨는 이미 가진 것만 제대로 관리해도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생전에 엄청난 재산을 형성하고, 사후에도 저작권 수익으로 많은 재산을 남길 수 있는 대중스타들은 김광석처럼 언제든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충분히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이 사건이 제대도 재수사 되지 않고 유야무야 끝나버리고 만다면, 이 사건의 모방 범죄와 유사 범죄도 충분히 발생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김광석 사건과 같은 대중스타의 사건이 발생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반드시 재조사를 해야만 한다고 본다.

 

이상호 기자는 예전부터 줄기차게 변사자에 대한 공소시효 없는 전폭적인 수사권을 부여하는 김광석법제정을 주장해 오고 있다.

 

필자는 이상호 기자 주장처럼 모든 변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수사는 어렵더라도 문화예술인, 특히 대중스타들의 죽음과 관련 된 사안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특별수사팀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터넷에 올라 있는 김광석 사망의 의문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사건 당일 보였던 서해순 씨의 진술 번복과 이상 행동

 

당시 사건 조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씨의 진술이었다.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생전 마지막 목격자였고, 시신의 최초 발견자였으며 신고자였다. 그리고 김광석의 죽음 원인이 자살이라고 발표한 경찰 조사 결과도 아내 서해순씨의 강력한 주장에 입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있어 서해순씨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사건 전후로 보여주었던 서해순씨의 행동은 매우 불안정했고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식을 벗어난 태도를 보였다.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 그녀는 그건 실수에요 그냥 장난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됐어요라고 말을 했다. 김광석이 장난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도, 실수로 죽게 되었다는 것도, 아내를 사랑해서 그렇게 됐다는 말도 보통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이런 말들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진술의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따라 진술 순서는 달랐다. 그러나 그 내용은 유사했다.) 이상호 기자에 의하면, 사건 당시 1차 조사에서 서해순씨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자신은 방에서 비디오를 20분 정도 보고 있다가 거실로 나왔다고 진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고 있던 비디오 제목과 그녀가 설명한 그 비디오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차 진술 과정에서는 비디오를 본 내용이 누락되고 방에서 자고 있다가 추워서 이불을 쓰고 거실로 나갔다가 김씨를 발견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호 기자는 서해순씨의 어머니와도 인터뷰를 했었는데, 사건날 새벽에 딸이 전화를 걸어와 하고 뭐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갔다가 김광석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서해순씨가 경찰 조사에서 발표한 내용에는 하고 떨어진 소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비일관적이며, 무질서한 진술을 토대로 경찰의 초동수사가 이뤄졌다. 의도적으로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해 사실을 번복한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은폐하기 위한 것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당시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불완전한 기억을 토대로 진술을 해서 그랬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한 입 가지고 세 가지의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 진술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2. 발견 되지 않은 유서

 

대부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유서나 주변 인물들에게 자살 징후를 남기기 마련이다. 특히 평소 메모광으로 신변 내용을 철저히 기록화 하는 김광석의 성향(김광석은 언제 어디서나 작곡과 작사를 하기 위해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생활화 했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딸에 대한 유산 상속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김광석 입장에서는 반드시 유서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김광석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유서로 볼 만한 것들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사건이 있기 전날 오후 그는 다음 음반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고, 저녁에는 절친인 가수 박학기를 만나 다음 년도에 펼칠 조인트 공연에 대해 상의를 하고, 저녁 10시 즈음에는 팬클럽 회원인 변수진씨와 전화통화를 했고, 그 후에는 가수 겸 작곡가인 백창우와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술과 커피를 마신 후 새벽 1시경 집으로 들어갔고 새벽 4시경 사망했다고 한다.

 

자살자들은 자살 전에 보통 과거의 우울한 내용을 주변인들과 나누기 마련인데 김광석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광석 주변 인물들은 사건이 벌어진 날까지도 김광석이 자살할 만한 어떠한 조짐이나 정황도 찾을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살은 그 사람의 자살에 대한 인식 방법에 따라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자살을 부도덕의 극치로 일종의 자기 살인 과정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자살을 개인 선택으로 보고 자유의 극치로 미화 하는 사회보다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며 이런 사회에서는 자살률이 더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김광석은 평소 자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김광석이 자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젊은이들의 요절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김광석의 형은 군에서 대위 복무 중 사망을 했다. 이 사건으로 부모들이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을 본 김광석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이고 자신은 오래 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이런 김광석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3. 타살의 흔적으로 보이는 삭흔

 

김광석의 자살 위치와 자살 방법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서해순씨의 주장에 의하면 사망 당시 김광석은 목에 전깃줄을 세 번 감은 채 계단에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고 하고 자살방법으로 전깃줄에 목을 매단 채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김광석이 발견된 자택 계단 구조는 목을 매달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부인 진술대로 당시 현장을 재구성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164센티의 단신인 김광석이 그 위치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의자나 받침대가 필요했는데 그러한 보조기구를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건물의 용도 변경으로 과거의 현장을 그대로 복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시 김광석 부검에 참여한 인사의 진술에 의하면, 김광석의 목에는 부인의 진술처럼 세 바퀴 감은 삭흔(목에 끈을 두르고 난 뒤 남는 끈 자국)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신에는 한 줄의 삭흔만 남아 있었는데 목의 앞부분에만 삭흔이 있었고, 뒤쪽으로는 삭흔이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누군가 뒤에서 줄로 목을 감아 졸랐을 때 나올 수 있는 흔적으로, 일반적으로 목을 매 자살했을 때 발견되는 일반적인 자살자들의 삭흔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4. 자살 원인으로 제시된 우울증의 증거 부족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자살 원인으로 우울증과 여자 문제를 끈질기게 주장해 왔다. “김광석은 우울증이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검 당시 시신에서 우울증 관련 약물 흔적이 나오지 않았고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은 병원기록을 포함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평소 김광석의 지인들은 그에 대해 선배와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대인배와 같았다고 한다. 김광석은 라이브 공연 1,000회 기록을 달성한 후 2,000회라는 새로운 기록을 향해 달려가는 매우 활발하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1,000회까지 공연을 함께 하며 매일 같이 다니던 지인 역시 그는 평소 건강하여 병원에 다니거나 약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오히려 부인 서해순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지인들이 김광석의 우울증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 전날 저녁 만난 박학기씨 증언에 의하면 김광석은 이제야 음악에 대해서 눈이 뜨인 것 같다며 앞으로 다음 해에도 같이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다고 한다.

 

전날 10시경 김광석과 통화한 팬클럽 회원 변수진씨는 이제 우리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일 일찍 사무실로 나오라는 김광석과의 그날의 통화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귀가 전 카페에서 술과 커피를 마셨던 백창우씨는 당시 1996년 펼칠 계획을 함께 나누며 다음날 있을 스케줄 때문에 절제하며 맥주 한 병만 마시고 귀가하던 김광석을 기억하고 있다.

 

자살 직전 몇 시간 전까지도 팬미팅을 진행했던 김광석의 모습은 우울증으로 평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서해순씨의 진술과는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러나 김광석 사건은 당시 인기가수 듀스의 김성재와 서지원이 우울증으로 자살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발생된 사건이었다. 따라서 언론은 김광석의 죽음 이유를 더 깊이 파고들려고 하기보다는 우울증에 의한 연예인들의 연쇄 자살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5.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전과 13범의 처남

 

당시 경찰이 김광석 사건을 쉽게 자살로 종결시킨 이유는 사건 현장에 있던 시신을 여자 혼자 이동시킬 수 없었다고 보아 서해순을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는 강력한 용의자가 있었으니 전과 13범의 서해순의 오빠이자 김광석의 처남이 당시 같은 건물에 있었다. 서교동 대원빌딩 1층 컨테이너 박스에 있었던 것이다. 인천에 살고 있던 서해순의 오빠가 그날따라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은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자살 현장에는 김광석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들이 발견됐다.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가 있었다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타인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하는 증거는 될 수 있다. 그 때 담배꽁초에 남아 있는 타액을 조사했었어야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6. 김광석의 3년 전 이혼 시도와, 사건 전날 이혼 통보 사실

 

한편 서해순씨는 자살의 원인으로 김광석의 불륜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김광석은 불교방송 DJ를 할 때 서로 좋아하던 여기자가 유학을 떠나게 되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여기자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고자 했으나 부인의 반대로 그것이 어려워지자 이에 비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단 이 점에 대해 필자도 의구심을 갖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초지종을 알고자 했으나 필자의 검색 능력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지 김광석의 여자 친구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어쨌든 이 사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이 점이 자살의 직접적 이유로 보기에는 매우 빈약하다고 본다. 여기자가 유학을 떠났다고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부인의 반대로 비관했다는 점도 그렇다. 당시 부인 서해순씨는 김광석의 유학을 반대할 위치도 명분도 갖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이 점은 김광석 타살설의 유력한 이유가 된다.

 


이상호 기자에 의하면 이미 김광석은 서해순씨에게 사건이 일어나기 3년 전에 이혼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물론 당시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김광석은 그 후에도 서해순과 이혼하고자 하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서해순씨는 결혼하기 전 자신의 재혼 사실을 이미 김광석에게 알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광석의 두 누나는 평소 재혼을 매우 싫어했던 김광석이 재혼을 수용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심각한 사실이 더해지는데, 김광석의 매니저는 김광석의 아내가 재혼을 숨기고 결혼한 것과 김광석의 친구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김광석이 매우 큰 충격에 빠졌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래서 사망 전날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을 할 것이며 위자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김광석의 불륜설이 김광석의 자살 이유가 되기보다는 서해순씨의 불륜 사실이 드러남으로 인한 파경 위험이 김광석의 타살 이유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김광석 매니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재산에 대한 욕구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서해순씨의 성향으로 볼 때 이 사실이 범행 동기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그외 서해순씨의 지나친 재산에 대한 집착

 

김광석씨는 생전에 서해순씨가 재혼 사실을 숨기고 자신과 결혼한 것과, 김광석씨의 동창생과 불륜관계에 있는 것 때문에 서씨와 이혼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혼 위자료로서 홍대앞 빌딩을 포함 앨범 저작권 외의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해순씨는 저작권까지 위자료로 요구하며, 모든 재산을 넘겼을 때 이혼을 수락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현재 김광석씨의 재산은 40억원대의 건물과 100억원대의 저작권 가치로 추정된다고 한다.

 

물론 이혼 위기에 처한 당사자가 홧김에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뱉을 수 있지만,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로서 이혼 귀책사유를 가진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홧김에 내뱉은 말이 아님이 서해순씨의 이후 행동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김광석은 서해순씨의 의도를 간파하고 생전에 자신의 앨범 저작권 소유자를 아버지 명의로 돌린다. 그러자 서해순씨는 김광석 사후 김광석의 저작권 재산에 대한 법적 분쟁을 시작한다. 그것도 김광석이 죽은지 49제도 지나지 않은 46일이 되는 날부터 저작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재산권 청구 과정이다. 김광석이 죽었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막말과 협박, 덩치들을 동원한 수법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김광석 형의 주장에 의하면, 김광석 부친 생전에 서씨는 덩치들을 동원 김광석 부친을 납치하여 김광석 저작권을 딸 이름과 자신의 이름 앞으로 넘기도록 종용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재판부에서는 김광석 형의 주장에 대해 강압에 의한 체결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서 김광석 부친은 풀려나자마자 새롭게 유언을 작성하여 자신의 재산권을 김광석의 모친에게 넘겨주도록 공증을 했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김광석 부친 사후에 서씨와 김광석 모친과는 격렬한 법적 공방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리고 김광석 부친 사망후 저작권 귀속을 놓고 법률 소송 과정 중에 딸이 죽었는데 서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딸이 죽은 사실을 법정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명백히 소송사기죄에 해당 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위의 사실들은 검찰과 재판부를 통해 확인 되지 않은 이상호 기자측과 김광석 형님측에 의해 제기된 의혹들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황적 증거들은 많이 나열되었지만, 명백한 물증은 부족해 보인다.

 

만일 위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면, 서해순씨는 남편 김광석과 유일한 딸인 김서연양을 잃고도 대중들의 의심을 받는 가장 비극적인 여인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조사를 통해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진 서해순씨를 범인으로 단정해선 안되며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간간히 인터넷 기사를 통해 남편인 김광석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장애에 걸린 딸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겼던 서해순씨를 만나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필자는 검찰의 철저한 조사 없이 함부로 서해순씨를 김광석의 살인자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서씨가 진정 김광석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응당한 법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고 김광석의 이미지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김광석은 한 여자의 남편이나 한 아이의 아빠이기도했지만 한 시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형님이자 오빠이자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젊음은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도 김광석은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였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윤동주의 시를 잊지 못하듯이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그의 이등병의 편지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의 사랑했지만을 잊지 못한다. 필자 역시 김광석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매우 우울한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다. 그의 하나 남은 딸 역시 너무 안타깝게 떠난 사실이 매우 슬프다


이미지 출처: 디스패치, MBC, YTN, 뉴스토마토, IZM,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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