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왜 김연경의 우승을 막았나?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였다. 상하이는 스스로 무너졌다. 43일 김연경과 상하이 광밍 유베스트는 중국 상하이 루완체육관에서 벌어진 2017-2018 시즌 중국 여자배구 챔피언 결정전 7차전에서 마지막 세트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전통의 강호 톈진에 세트 스코어 2-3으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게임의 시종 일관을 목도한 한국 팬들로서는 단순히 아쉽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에 빠졌다. 다잡은 게임을 놓쳤다는 것,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졌다는 것으로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이 게임은 정치적이었다.

 

이것은 여제 김연경이 그 잘난 중국 리그 우승을 못해서도 아니고, 어느 리그든 진출 원년에 수상하곤 했던 MVP가 되지 못해서도 아니며, 어느 누구도 못해보았다는 4개국 리그 우승 신화가 현실로 실현되기 일보직전에 무너져 내려서도 아니다.

 


김연경의 실력이 부족해서나 톈진의 전략 전술이 뛰어나서 혹은 리잉잉의 가공할 만한 공격력이 하늘 천장을 뚫을 정도로 출중해서 진 것이라면 기분은 나쁠지라도 승패의 결과에 쉽게 순복하고 며칠 지나면 과거를 잊고 새롭게 김연경의 다음 일정을 응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 게임은 상식 밖이었다. 적어도 챔피언 결정전 6-7차전은 아무리 선의를 품고 보려고 해도 스포츠 페어플레이 정신에 위배되는 비상식적인 경기였다. 이것이 세계랭킹 1위라고 자부하던 중국배구의 수준인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했고, 그동안 끈끈하게 다져왔던 상하이 선수단의 팀웍이 결국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이날의 경기를 목도한 김연경을 사랑하는 한국 일본과 태국의 팬들은 게임 전 1시간 30분 전에 체육관에 도착하여 결승전 몸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린 김연경을 철저히 배제한 채 공격 3옵션으로 활용한 상하이 미양 세터의 이해할 수 없는 볼 배급과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리지 못하고 큰 경기에만 오면 온몸이 얼어붙어 리시브 불안을 일으키는 리베로 왕웨이이와 주장 장이찬의 어이없는 실수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상하이 현장 직관과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경기를 끝까지 시청한 한국팬들은 배구 여제 김연경을 리베로 2선에서 뒤치다꺼리로 활용하다가 마지막 5세트 스코어 5-10으로 최종 위기상황에 몰리자 부랴부랴 공을 집중하여 마지막 승부의 최종 책임을 김연경에게 전가한 미양 세터와 작전 지시를 내린 왕즈텅 상하이 감독에 대한 분노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각종 게시판과 팬 카페에는 상하이와 계약이 만료된 후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는 김연경에게 탈중국과 터키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팬들의 인터넷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왜 며칠 전 5차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하이 잔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김연경 팬들의 입장이 이처럼 180도 선회하게 된 것일까?

 

김연경 팬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 필자 역시 상하이 재계약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차근차근 따져 보자.

 


 

중국배구협회의 노골적인 견제

 

중국리그는 첫 단추부터 이상했다. 보통 어떤 분야든 세계 최고의 월드클래스 선수가 자신의 리그에 오게 되면 두 팔 벌여 환영해 마지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약 현존 축구계의 신화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우리나라 K리그의 12개 클럽팀 중 2017년도 6위를 차지했던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고 하는 보도가 나왔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엄청난 환영을 했을 것이다. 메시의 이적으로 K리그의 수준이 한층 높아지고 국제 스포츠계에서 차지하는 K리그의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인천공항에 기자들과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어 메시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와 소감, 불편한 점은 없는지. 오래오래 한국 K리그와 함께 하길 바란다며 그의 이후 행보를 축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배구협회와 언론은 김연경의 상하이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이것을 전혀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김연경과 계약을 한 상하이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까지 했다. 중국배구는 이미 세계랭킹 1위의 수준 높은 선수들이 즐비하여 용병들이 와도 성과를 낼 수 없고, 더구나 유럽도 아닌 한국인이 와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중화사상에 입각한 배타적인 심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김연경은 사실 중국 리그를 빼놓고 모든 리그에서 영입 희망 대상 1위에 해당되는 선수이다. 축구로 치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야구로 치면 메이져리그급인 터키 아로마 리그의 명문 구단인 바키프방크와 엑자시바시로부터 해마다 오퍼를 받고 있고, 이탈리아와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등의 여러 구단으로부터도 다양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원래 김연경이 중국 리그에 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였다. 메시나 호날도가 우리나라 K리그에 오려 할까? 더구나 그중에 잘하는 팀도 아닌 중하위권 팀으로 이적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이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배구로서 중국 수퍼리그는 축구의 K리그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가 많으므로 김연경의 중국행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여자배구 슈퍼리그는 정식적인 프로리그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중국리그의 팀들은 프로팀들이 아니라 실업팀과 대학팀들이 섞여 있는 세미프로 리그로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커리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아마츄어와 프로 중간 단계에 있는 준 프로리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식 프로리그로 출범되지도 않은 중국 리그에 현존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인 김연경이 와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로 환영해마지 않아야 하는데 오히려 중국 배구협회와 중국 언론은 김연경에 대해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유래 없는 임대룰,

준결승전 중국 미니 국가대표 창설

 

그리고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이 세계 어떤 리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임대제도를 통한 김연경 견제하기다.

 

김연경이 이전 용병들과 다름없이 팀 성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중국 배구협회와 언론들의 섣부른 예상을 깨고 상하이가 파죽의 연승행진을 달리며 정규리그 우승과 김연경의 MVP 수상이 결정되자, 중국 배구협회는 이젠 터무니없는 임대제도를 통해 상하이의 결승 진출에 커다란 장벽을 설치했다.

 


준결승전에 맞붙은 디펜딩 챔피언 장쑤는 안 그래도 현역 국가 대표 선수들이 즐비한데 거기에 최상급 공격수 세계 블로킹 1위 바이선전의 센터 201cm의 위안신웨와 중국 공격득점 2위인 저장의 에이스 리징까지 영입하도록 만들었고, 결승에 만난 톈진은 중국 국가대표 레프트 윙 류샤오퉁과 세터 천신퉁을 영입할수 있도록 허가를 해준 것이다. 톈진은 이번 포스트시즌을 위해 상하이로 임대된 국가대표 라이트 윙 쩡춘레이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음은 이미 언론상에 드러난 일이다.

 

사실 중국의 임대제도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제도이다. 정규시즌에 뛰는 팀원과 포스트 시즌에 뛰는 팀원이 다르다. 이런 경기방식은 세계 어떤 리그에서도 채택하고 있지 않다. 중국리그는 특이하게도 포스트 시즌에 정규시즌에 뛰는 선수의 3분의 1이 교체되어 그것도 예선에서 탈락한 팀의 핵심급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물론 이전의 이 임대제도는 부상선수나 일부 전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김연경이 포스트 시즌에 오르자 김연경의 우승을 막기 위해 예선에서 탈락한 팀의 핵심 선수들을 임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매우 악의적 동기가 의심되는 임대제도였다.

 

 

중국 언론, 연경 여제 흠집 내기와 자극적 기사

 

정규시즌과 포스트 시즌 동안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김연경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같은 레프트 윙 포지션이라도 그 활약상이 공수 완전체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김연경과 공격력은 높지만 수비력이 약한 주팅, 리시브 면제 특권을 가진 공격 올인형 리잉잉의 차별점을 무시하고 시종일관 득점력과 공격력 기준으로만 선수들을 비교하면서 김연경의 위엄에 흠집을 냈다.

 

20176월 주팅이 바키프방크와 135만 유로 재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줄곧 세계 연봉퀸은 주팅이라는 것을 자랑하며, 유로스포츠 터키판의 김연경 상하이 5개월 80만 달러 이적설을 여론에 흘리면서 김연경의 연봉은 180만 달러에 불과하여 이제 세계 최고의 몸값을 받는 선수는 주팅이란 점을 강조했다.

 


사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면 유로스포츠에는 5개월에 80만 달러로서 김연경의 연봉은 1년 환산 192만 달러(156만 유로)에 달하고, 2014년 러시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김연경이 153만 유로의 러브콜을 받았던 상황, 2016년 터키 파나티크지 측정 잠재 선수가치 250만 유로로 현존 배구 선수 중 잠재가치 1위에 해당되었던 김연경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20176월의 월드 오브 발리에서 보도한 엑자시바시 김연경 300만 달러 영입설등에 대해서는 전혀 다뤄 주지도 않았으며, 가장 신뢰도가 높은 김연경의 에이전시 인스포코리아가 발표한 ’130만 유로 + α주장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샐러리캡 논쟁이 불거진 20183월에는 김연경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주팅의 몸값에 5분의 1밖에 받지 못한다. 세계 3대 공격수인 김연경에 모욕이다라는 시나스포츠 기사가 중국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기사는 표면적으로는 김연경의 몸값을 걱정해주는 듯 하고 있지만, 행간의 의미를 살펴보면 주팅에 비해 김연경과 한국 V리그 선수들의 전반적으로 낮은 연봉 수준을 비아냥거리면서 세미프로인 중국리그보다 한 단계 높은 프로리그인 한국 V리그의 배구 수준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는 매우 악의적 기사 내용이었다.

 

챔피언 결정전 기간에는 각종 매체들이 리잉잉과 김연경의 공격력을 비교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상하이TV를 제외하곤 득점력의 차이를 부각시켜 18세 리잉잉의 공격 공헌도를 집중 조명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김연경, 이미 가장 큰 유럽 리그에서 득점왕와 MVP를 섭렵하고 소속 팀을 수차례 정상에 올려놓았던 배구여제를 18세 리시브 면제 공격수와 비교함으로써 월드클라스 김연경을 깎아내리고 반대로 중국의 체계적인 유소년 배구단의 육성 체계를 통해 탄생한 괴력 소녀 리잉잉 띄워주기를 반복했다.

 

자극적 기사의 끝판왕은 시나스포츠의 327일자 칼럼 내용으로 이 기사의 기본 논조는 분명 올바른 말이지만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극단적으로 자극하여 이후 본격적인 김연경 견제가 시작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문제의 대목은 다음과 같다.

 

상하이가 챔프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분명 김연경의 존재감이다. 비록 중국 여자배구리그가 한국인 한 명에 게 정복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금 주팅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선수들은 김연경과 같은 월드클래스 슈퍼스타를 배워야 한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슈퍼스타이므로 4개국을 정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무슨 배구에 정복이란 용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상하이팀 선전, 돌풍의 핵심 김연경이 정도로만 기사화 되어도 충분할 내용에 자극적 제목과 기사를 뽑아냈다. 이 기사와 같은 중국 언론의 논조는 3가지 차원에서 김연경에게 해악을 가져왔다.

 

첫째 스포츠 선진화 정책을 시행하며 체제 선전의 도구로 배구를 집중 육성 활용해온 공산당 간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상하이의 돌풍 원인이 해외 용병 한 명 때문이라는 자극적 기사 때문에 상하이 팀원 내부에서 김연경을 견제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셋째로 마치 김연경을 외부에서 침략해온 정복자로 묘사함을 통해 동이 서융 남만 북적 오랑캐에 의해 과거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최근에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정복당한 수치스런 과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기사는 중국인들의 반발심과 잘못된 국수주의를 고취시켜 톈진(중국팀) : 상하이(김연경 정복자팀)’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냈고, 중국 배구팬들이 일방적으로 톈진을 응원하고 상하이 지역 외에는 김연경과 상하이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거의 없는 팬들의 진공상태를 만들어 관중의 일방적인 쏠림 현상을 가져오게 했다.



 

믿었던 상하이 팀 동료들의 뒷통수

 

김연경에게 가장 뼈아픈 사실은 상하이 팀 동료들의 배신이다. 물론 지금도 이들은 겉으로는 김연경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표면적으로 보아선 잘 대해주는 것 같다. 아마 정규시즌 우승과 장쑤와의 피 말리는 준결승전, 그리고 최종 결승 5차전까지는 마치 정으로 맺은 돈독한 자매들 같았다.

 

그러나 결승 6, 7차전에서 보여주었던 이들의 자세는 결코 돈독한 자매들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까지 동료들의 민낯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톈진과 상하이의 6, 7차전 실황을 직접 보지 않고 게임의 결과를 기록으로 받아 적은 기자들은 상하이의 패배 이유에 대해 중국 언론들의 기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도하고 있다. 상하이의 리시브 난조와 세터진의 원활한 볼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 상대 팀 주포 리잉잉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것이 상하이의 패인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전 경기 실황을 본방사수한 결과 실제적인 패인은 따로 있었다. 상하이의 쩡춘레이 MVP만들기와 김연경 죽이기가 상하이 패배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였다.

 

미양세터는 6, 7차전에 들어와 노골적으로 쩡춘레이 쪽으로 많은 토스를 올리고, 김연경을 완전 배제했다. 게임 스코어 3-2로 앞서 있던 6차전에서는 김연경 배제가 더욱 심했다. 아마 이 경기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김연경에게 MVP가 돌아가는 것은 상하이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인 경기였다.

 

세터 미양은 이날 공격 시도 점유율 면에서 쩡춘레이 27.1%, 장이찬 25.7%에게 공을 몰아주었고 김연경은 이들보다 훨씬 낮은 점유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날 김연경의 몸 상태가 나빴던 날이 아니었다. 몸 컨디션을 게임날 최고의 수준으로 맞추는 김연경의 자기관리력으로 몸 상태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라가 있었으나 미양은 김연경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연경은 미양으로부터 제대로 공을 받지 못했지만 혼자 블로킹 8득점, 서브 5득점을 포함 팀 내 가장 많은 28득점을 올리면서 팀 내 가장 공헌도 높은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김연경 없이도 상하이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상하이는 미양세터를 통해 철저히 김연경 만을 제외한 다양한 공격 루트를 시험하다가 결국 텐진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7차전에서도 미양의 볼 배급 패턴은 동일했다. 처음 세트 스코아 2-1로 앞서 가는 동안만 김연경을 가끔 활용하곤 그 다음부턴 다른 상하이 팀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7차전에 들어와서는 쩡춘레이를 MVP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는데, 춘레이에게 더 많은 공이 올라갔다.

 

그러다 톈진에게 재역전을 당하고 5세트 5-10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그래도 우승은 하고 싶었는지 그제서야 김연경에게 공을 몰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흐름은 톈진에게 가 있었다.

 

승부는 기울어졌다. 경기를 뒤집기엔 상하이 선수들의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게 우승을 하고 싶었다면 최소한 5세트 시작부터 김연경에게 공을 주었어야 했다. 큰 경기에서 무대공포증을 앓고 있던 상하이 선수들은 마지막 세트에서도 서브 리시브 불안과 정신적 동요를 일으켰다. 큰 경기나 중요한 경기, 관중이 많은 경기에서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프로 김연경과는 너무 달랐다. 서브 리시브는 여전히 불안했고, 미양의 토스는 낮았고 상대 블로커들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김연경의 막판 활약으로 14-15까지 쫓아갔으나 서브 리시브가 불안한 2단 토스 공을 상대방 코트에 내리 찍은 마지막 김연경의 공은 아쉽게도 라인 밖을 벗어나고 말았다.

 

6,7차전 내내 전위에 있을 때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공격 3옵션으로 어택 라인으로 오는 똥볼과 블로커에 바짝 붙는 낮은 공 처리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던 에이스 김연경이 마지막 범실로 상하이 패배의 최종 책임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중국내 김연경 흠집내기는

당과 구단, 코칭 스텝과 세터의 공모 가능성 90%

 

일단 6, 7차전 김연경 따돌리기와 공격 3옵션 활용은 절대 미양 세터 단독 작품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17년만의 우승을 다투는 비중 있는 게임의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 사안을 세터 혼자 결정할 수 없으며 이는 적어도 감독 왕즈텅과 코칭 스테프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스포츠계에 정통한 소식통과 국내 이숙자 세터의 경우에는 이번 문제가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 하달된 명령체계에 의해 이뤄진 지침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 공산당은 김연경의 활약과 MVP 수상을 이처럼 원하지 않았던 것일까?

 

일단 스포츠와 공산당의 관계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2050년까지 현재 G2인 중국을 글로벌 1위 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스포츠산업 역시 2025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GDP 2% 규모의 산업으로 키우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중점 육성 종목으로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단계별 프로 리그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 체제 선전의 최전선에서 이용된 효자 종목이 바로 중국여자배구이다. 우리나라에 2002 월드컵 4강 신화가 있다면 중국엔 2016 랑핑 신화가 있다. 둘 다 애국주의 열풍의 진원지였다.

 


중국은 가장 최근 폐막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 40개를 획득하여 미국과 종합 1, 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이 됐다. 그러나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체조 사격 등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여 26개 금메달과 은메달 18, 동매달 26개로 미국, 영국에 이어 3위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지난 5차례 올림픽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큰 기대감을 갖고 있던 중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13억 중국인들의 분노와 실망감이 폭발하기 직전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사건이 일어나 중국인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했으니 바로 뉘파이(여자 배구의 중국어 약칭) 신화이다.

 

중국 여자배구팀은 올림픽 예선에서 조별리그 4(23)로 겨우 8강에 턱걸이로 안착하였으나 이후 파죽지세로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브라질을 꺾고 준결승에서 강호 네덜란드를 이기고, 결승에서는 신예 세르비아를 짜릿한 역전승으로 이김으로써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장면으로 금메달을 만들어 냈다.

 

중국 여자배구 선수들의 기적과 같은 승리는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때 중국인들이 얼마나 여자배구를 좋아했었는가 하면 대륙 채널이 많아 시청률 2%만 찍어도 대박이라고 하던 시절에 올림픽 여자배구 생중계는 무려 70% 시청률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다. 적어도 10억의 인구가 이 경기를 보며 전율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중앙TV에서는 불굴의 여배정신을 본받자는 프로를 종일 틀어댔고, 중국 스포츠를 총괄하는 국가체육총국은 여자배구팀과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데리고 홍콩, 마카오를 순회하며 대형 체육관에서 조국 중국을 강조하며 그 자리에 참석한 어린이들에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선물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리우 올림픽 이후 랑핑의 중국여자배구팀은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며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그런데 뉘파이 신화의 중심에는 랑핑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16 리우 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랑핑 감독인데, 그녀는 1984년 중국이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했던 장본인이다.




원래 뉘파이 정신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811118일자 인민일보 1면이라 한다. 당시 중국 여자배구팀은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세계 배구대회에서 7전 전승으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는데, 이 때 중국에서는 시민들이 흥분하여 사흘 연속 거리에 몰려나와 축하 시위를 벌였고, 1부총리가 공항에 나가 선수단의 귀국을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민일보 1면에 선수단 전원의 사진이 실리고 뉘파이를 배워 중화 진흥을 이루자란 제목의 논설이 실리고, 저우언라이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가 뉘파이 정신을 설파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뉘파이 정신은 꼭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과도 많이 닮아있다. 개혁, 개방 직후 죽의 장막을 거두고 중국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선진국은 까마득하게 앞서가고 중국 인민들은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서구 열강과의 격차는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았고 국가 경제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대였다. 이 때 중국 인민들에게 중국인은 능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 바로 뉘파이 정신이다. '뉘파이 정신'은 중국인의 힘과 저력, 협동정신과 끈기, 불굴의 의지를 세계에 과시한 상징으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의미했다.

 

뉘파이 정신을 스포츠 현장에서 보여준 인물이 랑핑인데, 그녀는 현역시절 얼마나 스파이크가 강했는지 별명이 쇠망치로 불렸다.

 

지금의 중국인들은 랑핑이 보여준 뉘파이 정신을 통해 중국인들의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한 사람들이다.

 


국민들만 힘을 얻었던 것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당원들의 산실 베이징 대학에서는 여자배구 경기 때마다 중국의 단합과 부흥을 외치는 구호가 울려퍼졌는데, 이 구호는 이들이 현역 정치인이 된 후 하나 된 중국사회를 단결시키는 정치슬로건으로 계승되었다. 지금 공산당의 고위층들은 중국여자배구 뉘파이 정신을 중국사회의 지도적 가치로 계승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1984LA 올림픽 당시 쇠망치라는 별명으로 우승 주역이었던 랑핑이 감독으로 부임하여 주팅과 장창닝 등을 이끌고 금메달을 딴 리우올림픽은 단순히 2016년의 감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30년전 중국인들이 아무 것도 없었을 때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던 1984LA올림픽 랑핑 신화의 부활 사건을 의미한 것이었다.

 

중국 정치 평론가 장리판은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의 승리를 가리켜 이번 여자배구팀의 금메달 획득은 중국인들에게 체제불만을 희석시키고 애국주의를 고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 당국에게 매우 꼭 필요한 시점에서 뉘파이 정신이 재등장했다고 평했다.

 

이 사건은 중국 전체에 큰 희열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이 때를 계기로 중국에서 주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당시 배구팀이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 것은 리우올림픽 여자배구를 체제 선전도구로 활용한 중국 당국의 효율적 홍보전 덕분이었다.


 

 

김연경, 랑핑 신화를 깨뜨린 세계 배구 여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현재 중국 사회의 문제들인 극심한 빈부격차와 소수민족 갈등의 문제들을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랑핑 여자배구팀의 뉘파이 정신부활을 통해 봉합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 방법으로 랑핑과 그녀가 발굴한 세 명의 애제자 주팅, 위안신웨, 장창닝의 영웅 만들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랑핑의 여자배구팀은 리우 올림픽 금메달 당시 평균 21세의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앞으로 10년 동안은 전 세계에서 적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랑핑의 여자배구팀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배구와 스포츠 분야에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젊은 중국인들의 꿈과 야망, 포부를 상징했다. 이들이 배구 코트에서 물리쳤던 미국과 러시아, 일본, 독일 등의 세계 강국들은 단순히 배구팀을 대표하는 의미가 아니라 2050년 글로벌 1위 국가가 되기 위해 물리쳐야 할 강대국들의 명단이었다.

 

중국의 관심은 이미 아시아를 벗어나 있었다. 세계 최강을 꿈꾸고 있는 그들에게 싸드 보복과 한한령 한 가지만으로 중국 앞에 고개를 숙이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김연경이란 인물은 별달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주팅과 장창닝, 위안신웨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들은 작년 리그 순위 6위에 불과한 중국 국민들로부터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했던 런던올림픽 대표팀 퇴역 선수들로 구성된 상하이팀을 데리고도 중국의 전통적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올라온 김연경의 저력에 깜짝 놀라고 만다. 이대로 그냥 두면 김연경의 상하이가 중국배구 리그 우승팀이 되고 김연경이 MVP가 될 것이 뻔했다.

 

중국 정부와 배구협회는 임대제도를 활용하여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 제2의 랑핑신화 그림을 만들고자 했다. 랑핑의 애제자 위안신웨와 장창닝을 통해 월드클래스 김연경을 꺾어 버림으로써 세계 최고의 월드클래스도 넘볼 수 없는 랑핑의 뉘파이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바이선전의 위안신웨를 장쑤에 급파한다. 그리고 주팅의 빈자리를 저장의 에이스 리징을 통해 매꿔주었다.

 

그런데 중국 당국과 배구협회의 이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생각보다 김연경은 훨씬 더 강했던 것이다. 랑핑의 국가대표팀과 거의 붕어빵과 같았던 장쑤를 상하이가 게임 스코어 3-1로 보기 좋게 이겨버린 것이다.

 

중국 당국과 배구협회는 크게 당황했다. 이대로 가다간 랑핑 신화와 뉘파이 정신이 한국의 배구 천재 한 명에 의해 무너질 수 있었다. 이미 랑핑의 애제자 주팅은 김연경이 터키 리그에 있을 때 페네르바체와 바키프방크 경기를 통해 허무하게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준결승전을 통해 위안신웨와 장창닝이 김연경의 고공 강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렸다. 장창닝은 작년 재작년 중국리그 MVP였다.

 

여기까지가 거의 팩트라고 보여지고, 이 다음 부분은 거의 팩트로 추정되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김연경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구선수를 공개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단을 통해 상하이팀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상하이가 김연경을 영입하여 중국 공산당의 국민 통합 이념인 뉘파이 정신에 심각한 해를 가했다는 것을 명심하고 다음 명령을 준수하라. 상하이가 기존 상하이 멤버나 중국인 임대 선수를 활용하여 우승하는 것은 허용한다. 상하이의 중국 선수에 의해 톈진이 패배하더라도 중국 인민들은 뉘파이 정신의 훼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을 활용하여 우승할 수 없다. 중국 배구가 김연경에 의해 정복된다면 심각한 중국 정신의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상하이는 처음엔 아예 김연경을 제외시키고 경기를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시브와 수비에서 차지하는 김연경의 비중을 볼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상하이는 무엇보다 17년만의 우승이 절실했다.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우승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표가 나지 않게 김연경을 활용하고, MVP는 장춘레이가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세터 미양에게 김연경은 후위 백어택으로만 활용하고 전위에서는 배제하고, 코트 안에서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경기하라는 지침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모두가 목도한 바와 같다.


 

 

김연경 차후 거취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 정부가 '랑핑 신화'와 뉘파이 정신을 중국 인민들의 애국심 고취와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활용하는 지금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적어도 중국여자배구에서 용병들이 크게 성공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김연경이 중국에서 잘할수록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에게 견제와 미움만 받게 된다.

 

이미 김연경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랑핑의 3대 제자 주팅, 위안신웨, 장창닝을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사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이러한 월드클래스의 실력에 경외감을 갖고 더 높은 실력을 쌓기 위해 김연경의 기술과 멘탈을 배우려 노력해야 함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과 배구협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김연경의 활약을 견제하고 방해했고, 중국 언론들은 주팅과 리잉잉과의 비교 기사를 통해 끊임없이 김연경의 이미지를 손상시켜왔다.

 

아마 올해 랑핑 신화와 뉘파이 정신이 철저히 김연경에게 무너졌기 때문에 내년에 김연경이 중국 리그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더 다양한 방식의 견제와 방해를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이미 중국 챔피언 결정전에서 상하이에 대한 톈진의 드라마틱한 승리와 리잉잉 MVP 수상으로 월드클래스를 이긴 18세 소녀 리잉잉 영웅만들기라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이 패배감과 위기를 반전시킨 중국 당국이 또 어떤 일을 만들어낼 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른 하나, 앞으로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없는 김연경의 전성기 기량을 꼭 이런 중국 리그에서 사용해야 할지 팬의 한 사람의 입장에서 좀 염려가 된다.


간절히 김연경을 원하는 곳은 세상에 널려 있는데, 왜 이런 수준 낮은 곳에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미양 세터와 같은 보잘 것 없은 선수가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하는 배구의 여제를 들러리 취급하는 이런 역겨운 상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SBS, 오마이뉴스, 웨이보, 더 스파이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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