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었나?

누군가 당신에게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선수를 딱 한 명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를 지목하겠는가? 김연아, 차범근, 이승엽,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손흥민, 류현진, 추진수, 이상화, 김연경 등.... 기라성 같은 수많은 스타들 중에서 대한민국 현존 최고의 월드스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사람들은 김연경과 김연아를 꼽지 않을까? 같은 성과 이름 앞글자를 공유하여 한 자매 같기도 하고, 한명은 영원한 피겨의 여왕, 한 명은 배구의 여제로 통한다. 이들은 이미 대한민국을 초월하여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살아있는 레전드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아쉽게도 은퇴를 했고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월드클래스는 김연경이 아닌가 한다.

 

김연아와 김연경은 그 세계적인 능력과 기량으로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들이 자기 분야에서 이룬 찬란한 업적들이 대한민국이란 척박한 환경에서 만들어낸 눈부신 업적이라는 데에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유소년(초등학교) 배구팀은 남자부 40개 여자부 29개에 불과하다. 배구는 최소한 한 팀에 12명은 있어야 자체 팀을 나눠 배구 연습을 할 수 있는데, 팀당 평균 숫자가 10명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프로 배구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선수로 한 팀에서 3명 이상의 선수가 차출되면 부상 선수를 제외하고 남은 선수들로 팀 연습도 불가능할 정도로 엔트리가 부족하다.

 

전국 남녀 중고배구대회를 관전하다 보면 코트에 나선 6명을 제외하고 벤치에 앉은 선수가 1명인 경우도 있고, 한 팀 6명의 선수 중 5명이 1학년생으로만 구성된 경우도 있다.


한국중고배구연맹(www.kmhv.com) 들어가 중고팀 현황을 살펴보면, 현재 여중부는 전국에 20개팀, 여고부는 19개팀에 불과하다. 이것도 201712월 대한배구협회 자료를 보면 인원이 더 줄게 된다.

 

그렇다면 총 여자배구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스포츠지원포털(www.sportsg1.or.kr)에 의하면 2017년 현재 대한민국 운동부(학교, 직장 포함)와 클럽, 동호회 인구를 모두 통틀어 여자배구 선수 인원은 995명이다. 201712월 대한배구협회 등록자료 현황을 기준으로 여자배구 통계를 보면 초등 29개팀 342, 중학부 19개팀 236, 고등부 18개팀 185, 대학 4개팀 45, 실업부 9개팀 93, 프로 6개팀 94명으로 모두 85개 팀 995명이 등록되어 있다.

 

배구 지도자들에 대한 처우도 불안정하여 국가 대표 전임감독제가 시행된 것도 최근의 일이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직전까지만 해도 1년 계약직에 한 달 급여가 150~180만원 사이였다고 한다.

 

우생순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얘기하던 여자 핸드볼 인원이 1058명으로 여자배구 선수보다 63명이나 더 많다. 물론 여자핸드볼팀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번이나 수상했고,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국민들에게 높은 긍지를 심어준 바 있다.

 

의외로 피겨선수가 많다. 김연아 한 명의 힘이 이렇게 많은 유소년들에게 꿈을 주었구나 하는 신선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스포츠지원포털에 의하면 2017년 등록 여자피겨선수는 모두 604명이다. 여자골프 선수도 1021명에 달하고, 여자축구 선수는 1629명이 있다.

 

위 통계 수치만을 보면 프로리그까지 가지고 있는 여자배구 선수가 매우 적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배구는 구기 종목으로 세계 4대 스포츠이다. 단일 종목으로 올림픽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축구와 야구를 제외하고 농구 바로 다음이 배구의 위치다. 배구는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구기 종목 중 하나로, 특히 여자가 하는 경기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등록된 여자배구선수(프로와 아마추어, 실업, 초중고대학교와 동호회까지 모두 합친) 숫자가 995명밖에 안 된다니 김연경이 Jtbc <비정상 회담>에 출연하여 우리나라에서 배구가 비인기 종목으로 소외감을 느낀다는 말을 할만도 하다. 그날 프로그램에 브라질 대표로 나온 카를로스 고리토의 말에 의하면, 브라질에서는 남자 축구 다음으로 여자 배구가 인기가 많고, 배구 클럽만 500개에 1만명 이상의 배구선수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고교팀만 4000개가 넘고, 미국은 프로리그는 없지만 대학리그가 4부리그로 운영된다는 것을 보면 그 인프라 차이가 우리에게는 넘사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배구 인프라를 가진 중국, 일본, 브라질, 러시아도 못 가진 위대한 올라운드 플레이어 선수를 대한민국은 갖고 있다. 백년 남짓 된 배구역사 속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배구 역사 속에 다시 보기 어려운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녀가 바로 김연경이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어떻게 세계 배구 종주국 미국을 비롯 전통적 강호인 러시아, 중국, 일본, 브라질, 세르비아에서도 나오지 않은 위대한 배구천재가 배구의 불모지와 같은 대한민국이란 좁은 나라에서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 글은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운명의 장난과 믿기지 않는 노력으로 절차탁마 대기만성 배구의 신이 된 김연경의 성공 이유를 분석한 글이다. 필자는 운 좋게도 김연경이 최근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를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갓연경을 사모하는 많은 분들의 글들과 여자배구에 관련하여 부지런히 글을 써온 기자들의 인터넷 기사들을 참조할 수 있었다.

 


 

필자는 천재와 수재의 차이를 복제의 가능성에서 찾는다. 즉 체계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동일한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를 여러 명 배출할 수 있다면 그 선수는 수재이고, 아무리 훌륭한 코치와 우수한 연구진이 노력해도 그 같은 선수를 시스템적으로 또 다시 배출할 수 없다면 그는 천재이다.

 

그런 이유에서 필자는 김연경은 천재이고, 주팅은 수재로 본다. 랑핑의 체계적인 유소년 훈련 시스템을 통해 발굴 육성해낸 동시대 인물인 주팅, 장창닝, 위안신웨는 앞으로도 비슷한 수준의 선수를 배출할 가능성이 있어 복제가 가능한 수재이지만, 대한민국의 척박한 환경과 신체적인 한계와 인간의 가공할만한 노력을 통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김연경이란 존재는 배구 역사 속에 또 다시 등장하기 어려운 배구 천재이다.

 

김연경은 서른 하나에 불과한 젊은 선수이지만 그 인생을 돌아보면 운동 선수의 일대기라기보다는 위인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일한 탄소 알갱이가 높은 압력 속에서 다이아몬드 광석으로 변하거나, 고통을 오래 씹은 진주조개일수록 더 큰 보석을 만든다는 종교적 잠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연경의 천재성은 50%의 운명의 장난과 50%의 인간의 도전이 만든 신들의 장난과 인간의 노력의 합작품이다. 그러면 오늘의 김연경을 만든 운명적이고 인간적인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 한번 다뤄보도록 하겠다.

 

 

 

김연경의 첫사랑과 서약의 원칙

첫사랑의 강렬함이 인생을 지배하게 하라!”

 

김연경을 가르켜 배구 세계에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최고 기량의 선수, 공격과 수비에 완벽한 공수완전체, 모든 포지션에서 최고 능력을 발휘하는 가성비 최강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가는 곳마다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는 미다스 손 우승 청부사, 낱알 같은 팀원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카리스마 파워 리더십과 365일 기복 없는 꾸준한 실력을 유지하는 관리의 달인 등의 위대한 찬사가 뒤따르지만 오늘날 김연경을 만든 단 한 가지 요소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필자는 김연경의 배구 열정이라고 할 것이다.

 

김연경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배구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직경 20.7cm의 둥근 공에 인생을 건 배구선수치고 배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김연경 만큼 배구를 간절히 원하고 배구에서 기쁨을 느끼고 코트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며, 배구로 맺어진 동료와 팬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관계들을 아끼고, 배구라는 기술과 종목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선수였던 큰 언니를 만나기 위해 엄마의 손을 붙잡고 체육관을 찾았다가 허공을 가르며 멋진 스파이크를 날리던 언니의 모습에 매료되어 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김연경은 오직 배구만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큰 언니가 배구를 먼저 시작했기에 김연경이 배구를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 팬들은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언니가 배구를 한 것이 김연경에게는 독이 되었다. 큰 언니가 당시 배구계에 만연된 단체 기합과 체벌 때문에 배구를 그만둔 후, 운동선수들이 진로를 수정할 때 겪는 모든 문제들을 목도했던 김연경의 부모님은 당장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막내딸 김연경의 배구함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단체 체벌로 늘 허벅지에 상처가 끊이질 않던 언니의 모습을 보고도 김연경의 배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맹렬하게 반대하는 부모님을 날마다 설득하여 결국 어떤 일이 있어도 배구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엄마와의 새끼손가락 약속을 맺고 김연경의 배구 인생은 시작된다.

 


배구에 대한 뜨거운 첫사랑과 엄마와의 약속은 이후 김연경의 모든 배구 인생을 지배했다. 작은 키로 겪는 모든 수모와 오랜 후보 생활의 좌절감, 프로데뷔 후 3년 연속 무릎 수술과 지난한 재활훈련 과정, 해외 진출 과정에서 겪은 소속사와의 마찰과 새로운 둥지에서 겪었던 소외감, 객지에서의 외로움, 각종 MVP 수상과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후 찾아온 긴 슬럼프 등 배구를 하면서 겪게 된 수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김연경이 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꼬마 김연경이 배구를 본 첫 순간의 경이로움과 그 사랑을 월드 클래스가 된 지금까지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경이 최근 바쁜 운동 시간을 쪼개어 각종 방송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적극적인 데에도 배구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혹 김연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김연경이 방송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지만, 실상 김연경은 배구선수로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많이 당한 터라 조금이라도 배구가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져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에 출연한다고 한다.

 

물론 필자가 보기에 김연경은 방송 연예인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끼를 갖고 있다. 방송으로 진출해도 강호동이나 서장훈, 안정환 이상의 활약을 충분히 할 것이라 생각하며, 최근에는 직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크로스 오버로 활약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만큼 방송 예능인으로서 배구 여제의 변신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나중에 방송계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을 듯.

 

그런데 정작 김연경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유소년 배구 프로그램 분야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배구가 가진 가능성과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고 앞으로 자신과 같은 뛰어난 선수가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중국과 일본 태국 등 주변 국가들의 배구 수준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동안 답보상태를 넘어 고사 상태에 있는 한국 배구의 앞날을 걱정하며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은퇴 후 어떤 일을 해보고 싶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도자를 해보고 싶네요라고 말하던 김연경은 2017년 가을, 자기 이름을 내건 유소년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KBSN 이숙자 해설위원과 김사니 SBS 해설위원, 그리고 관록의 남지연과 김해란 선수 등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장을 찾아 유소년 선수들의 감독 역할을 자처하며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를 마친 후 남지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선수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유소년컵대회를 연다는 게 얼마나 멋진가 김연경.. 당신은 대체...”라며 감동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김연경은 JT마블러스 진출 때부터 우리나라 배구선수 최초로 선수 장학금을 지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수원 화성에서 벌어진 한태 올스타전은 김연경에게 뜻 깊은 행사였다. 김연경이 자신의 장학금으로 도움을 준 장학생인 박정아, 강소휘와 함께 같은 코트에서 함께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박정아, 강소휘는 단순히 장학금만 받았던 것이 아니라 선수 생활의 롤모델로서 김연경을 존경하고 따랐다. 둘 다 김연경의 포지션인 레프트 윙이었고 강소휘는 등번호까지 10번으로 김연경 노선의 절대적 추종자이다. 프로 리그에는 이들 말고도 신연경, 문정원, 공윤희, 장보라 선수가 김연경 장학금을 받고 성장한 김연경 키즈 출신이다.

 


김연경의 배구 사랑 정신이 이렇게 V리그와 대표팀까지 세대를 달리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따듯하게 전달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김연경의 배구 사랑과 열정이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배구 저변이 부족한 우리나라 꿈나무들에게까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는 바이다.

 


 

김연경의 전진의 원칙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앞만 보며 나아가라

 

김연경의 자전적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공통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그녀의 능력을 꼽자면 필자는 전진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때까지 가는 능력, 끝까지 견디는 능력, 그것이 오늘의 김연경을 만든 그녀의 제1 성품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던 김연경의 중고교 합숙훈련 시절, 김연경의 아침은 새벽 기상과 함께 운동장을 40바퀴씩 도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이 되었다. 겨울에는 사방이 어둡고 추워서 뛰다보면 흐르던 땀이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김연경은 키가 작았을 뿐 아니라 몸도 갸날프고 균형도 맞지 않아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뛰다보면 어느새 맨 뒤로 뒤쳐져 앞에서 뛰는 동료들이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혼자 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죽어라 달려도 키 큰 동료들과 후배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숨이 차 멈추어도 어느 누구도 끌어주거나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었다. 텅 빈 운동장에서 철저히 외로움을 느꼈고 때론 어둠 속에서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혼자 뛰는 운동장이 어린 김연경에겐 매우 무섭고 힘들었다고 한다.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후보 선수로서 이대로 끝날 것 같은 상황이 김연경을 더욱 지치게 했다. 죽어라 노력해도 아무 것도 달라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과 이 달리기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달리다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망이 어린 김연경을 괴롭혔다. 그렇게 춥고 두렵고 무섭고 외로운 아침 구보가 한두 번도 아닌 매일 새벽마다 반복되었다. 김연경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치게 달리기가 싫다고 한다.

 

그러나 김연경은 포기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 없어도, 끌어주는 이가 없어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함께 달리는 동료가 없어도, 춥고 무서웠고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녀는 계속 달렸다.

 


처음에는 언젠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멋지게 스파이크를 날리는 상상을 하며 그 고통을 견디었고 나중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배구를 포기하지 않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을 되새기며 그 힘든 시절을 버티다가 결국 나중에는 그때까지 견딘 것이 아깝고 이대로 끝나버리면 그동안 흘렸던 땀과 고통이 너무 억울해서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엔 꿈, 그리고 엄마와의 약속, 마지막엔 억울함..... 이유는 각각 달랐지만 이렇게 어떤 환경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김연경의 전진의 원칙은 삶의 위기 순간마다 빛을 발했다

 

김연경은 자신의 에세이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거대한 벽을 만나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부딪히며 결국에는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단단한 계단으로 만들었다.”

 


 

김연경의 행동주의 원칙

신세한탄 보단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시작하라!”

 

걸 크러쉬의 대명사로, 쿨하고 씩씩하기만 한 만인의 우상인 김연경, 배구협회에 쓴소리도 잘 하는 김연경이라 사람들은 김연경이 매우 평탄한 삶을 경주하듯 달려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생을 모르고 선수생활을 했을거라는 팬들의 반응을 접할 때 김연경은 가장 억울하다고 한다.

 

자신은 고행의 길을 걷느라 몸에서 사리가 몇 트럭 분량은 나올 것 같은데, 팬들은 속도 모르고 늘 승승장구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이다.

 

김연경은 그의 자전적 에세이인 <아직 끝이 아니다> 서문에서 유년 시절 배구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쉬운 길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남들보다 어렵게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고, 해외로 진출한 이후에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가시밭길이었다고 술회한다.

 

김연경의 코트 생활은 더욱 비참했다. 언론상에는 그녀가 청소년 시절 수비수와 세터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녀의 자리는 벤치였다. 팀에 어려움이 있어야 대타로 들어가는 선수로 특별한 포지션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신장이 작아서 공격수로 나설 수 없었고, 어느 한 부분에 특출난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로 뛰기에 매우 애매한 조건이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을 포함 모든 리그에서 러브콜을 보내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쉴 틈 없이 차출을 하여 오히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김연경이지만, 주니어 시절 김연경은 아무도 써 주지 않아 늘 벤치를 지키는 키 작은 단신 후보 선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후보 선수의 설움은 그야말로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중요한 경기 때마다 가족들에게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만 보이는 것도 억울한 데 경기 때 주전 선수들을 위해 주전자 물 떠주는 일과 대기 선수로 벤치를 지키는 일은 그렇다 치고, 연습 때조차 동등한 연습기회를 갖지 못했다. 연습 때는 주전 선수들의 몸을 푸는 데 몸을 잡아주거나 주전 선수들이 때린 공들을 바구니에 주어 담는 등 후보 선수는 연습 때도 철저히 후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생활은 후배들이 들어오면서 끝나게 되는데, 김연경의 경우에는 고교1년 때까지 벤치 생활이 계속됐다. 함께 자리에 앉아 있던 동기가 주전 자리를 꿰 차고 코트로 들어가고, 이후에는 후배들이 들어갔다. 세월이 흘러 김연경도 선배가 되고 고참이 되었지만 김연경에겐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후배들이 주전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볼 수 있었을 뿐 자신은 코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김연경의 두 눈에는 코트 안과 밖을 구분하는 흰 라인이 공격 성공과 아웃을 구분하는 구분선이 아니라 선수의 계급을 구분하는 선이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선과 같았다고 고백한다.

 

서열을 중시하는 운동선수 사회에서 후배들에게 밀려 벤치만 한량없이 지키고 있는 처량한 신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결코 알 수 없다.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이다.

 

그러나 김연경은 그 시간들을 신세한탄이나 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김연경은 현실을 비판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일로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다.

 

후보 선수 시절, 김연경은 경기에 꼭 필요한 선수란 어떤 선수인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조건으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배구를 생존배구라 불렀다. 늘 벼랑 끝에 몰려 있기에 어떻게 하면 더 이상 밀리지 않고 배구 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매달리기 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추스렸다. 가령 키가 작아 공격수로 활동할 수 없으니 철저한 수비 능력을 기르도록 했다. 그리고 남보다 몸이 작고 빠른 편이 아니었기에 경기의 흐름을 읽어 공이 오는 길목을 예측하는 눈썰미를 기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연습하였다. 그리고 서브 훈련을 통해 남과의 차별점을 만들고자 했고, 리시브와 디그 능력을 키워 눈에 띄는 수비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기본기를 제대로 갖춘 선수는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본다는 믿음으로 후보 선수 기간을 배구의 기본기를 다지는 데 투자했다.

 

김연경의 배구 기본기는 교과서적 배구와 기본자세 숙달을 중시하는 일본 프로리그 진출 후에 더욱 빛났다. 일본의 전설적인 세타 다케시타 요시에는 김연경을 가리켜 세계적인 장신 공격수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약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수이자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로 김연경을 인정했다.

 

김연경이 후보 선수 시절 단련한 수비 실력과 서브 능력,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썰미, 철저한 기본기 습득 능력들이 나중에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는 데 기초가 된 점은 모든 이들도 다 아는 내용이다.

 

만약 김연경이 후보 선수 시절,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한탄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김연경은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연경의 후보 선수 시절, 벤치에 머물렀던 오랜 기간들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생은 어느 시절이나 허송세월이란 없으며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에게 기적이 찾아오는 법이다.

 

불투명한 미래의 위협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을 찾아 이에 몰두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 떠오른다.

 


 

다산은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유능한 정치인이자 행정관이었으나 정조 사후 신유박해 때 정적의 모함을 받아 한순간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형제 정약전과 자신은 귀양을 떠나게 되었고, 셋째 형은 참수되었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당시 폐족이 되어 벼슬길에 나갈 길이 멀어진 정약용의 두 아들은 매우 상심이 컸다고 한다. 그때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현대 국어에 맞게 약간 각색을 하였으나 그 문맥의 뜻은 변함이 없다.

 

아들아, 집에 책이 없니? 몸에 재주가 없어졌니? 아직도 눈과 귀는 밝지 않니? 어째서 자포자기하려 하니? 폐족이라 생각해서 그러니? 폐족은 단지 과거 시험을 보거나 벼슬을 얻는데 문제가 될 뿐이야. 폐족이라도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문장가가 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폐족이라도 사물을 보는 눈이 트인 선비가 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단다. 오히려 크게 좋은 점이 있어서 과거시험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가난과 곤궁한 삶과 삶의 고난으로부터 마음을 단련할 수 있어 좋단다.

 

이것은 재주 많은 사람에게 주는 하늘의 축복일수 있다. 평상시 영달하겠다는 마음으로 눈이 가려 비루한 인생이 되고 말 인물이 이런 시련을 겪으며 독서하고 깨우치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바른 안목과 삶의 정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상 참수를 면하고 유배를 떠난 선비들의 삶의 미래는 뻔했다. 대부분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거나 병들어 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재기를 꿈꾸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온갖 두려움, 불안, 미움, 슬픔과 불안정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 정약용은 부정적인 에너지에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기로 한다.

 

정약용의 유배지는 강진이었는데, 이곳은 그의 외가인 해남 윤씨 녹우당과 지척이었다. 녹우당에는 자체적으로 수집된 만권당이란 장서각이 있었는데, 정약용은 그 곳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서적을 지원받으며 유배생활 동안 수많은 연구서적을 집필하게 된다.

 

다산의 이런 활동은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고통 속에 집필한 서책이 과연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과연 자신의 남은 삶이 몇 년일지 혹 며칠이 될지도 알 수 없었다. 조종의 권력 역학 관계가 변하면 내일 당장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조선의 학문과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 참다운 행정관이 갖춰야 할 길을 다룬 방대한 서적을 집필한다. 그의 책은 성리학과 실학, 정치 철학서와 법과 제도 개혁에 관한 서적뿐만 아니라 법의학, 지리학, 의학, 언어학, 교육학, 건축학 등 폭 넓은 전문 분야에 관한 연구 자료도 있었다. 이 저서들은 현재 500여권의 여유당 전서로 남아있다.

 

하늘의 도움으로 18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정약용이 조정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 조정 관료들은 정약용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 용모가 18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몸은 풍에 걸리고 이도 빠지고 머리가 벗겨져 행색이 심히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달구지에 싣고 온 방대한 연구 책자들 그가 손수 집필한 어마어마한 양의 연구서적들이었다.

 

인생의 역풍이 불 때든 순풍이 불 때든 항상 제 할 일을 찾아 씨앗을 뿌렸던 김연경과 정약용의 삶을 보면 우리가 흔히 들었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경의 뒤집기 한판승의 원칙

자신의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켜라

 

이상과 같은 김연경과 다산 정약용이 갖춘 능력을 학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폴 스톨츠의 역경지수와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이 떠오른다.

 

성공학자 폴 스톨츠는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라는 고난극복의 능력지수를 발표한 바 있다. 역경지수란 무엇인가? 삶 속에 닥친 고난과 위기, 역경 속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뜨거운 열정과 남다른 끈기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능력이다. 스톨츠에 의하면,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신념과 어떤 위험인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관적인 성품을 확립하고 있다고 한다.

 

스톨츠는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을 기술했는데, 첫째가 역경이나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성품, 둘째 역경이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성품, 셋째 자신이 직면한 어려운 고난도 얼마든지 해결하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낙관적 성품이다.

 

스톨츠가 말하는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들의 특징은 김연경의 성품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연경은 고난과 역경 앞에서 오히려 더 강해지는 강력한 다이아몬드 멘탈을 가진 선수로 유명하다.

 


특히 김연경의 성격에서 중요한 점은 역경이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점은 물론 자신에게도 그 책임을 함부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양적 감성주의와 종교적 원리주의는 모든 것을 내 탓이요하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책의 문화를 마치 도덕적으로 숭고한 인격의 상징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잘못된 사고이기도 하다.

 

만일 김연경이 키가 작은 자신의 신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키 작은 것은 내 탓이다. 키 작은 내가 무엇을 하겠어? 이 팀에 내가 있는 것은 민폐야하며 자책하고 모든 것을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김연경은 고난과 역경, 실패에 대한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고, 또 자신의 운명 때문이라고 자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세한탄을 할 그 시간에 자신의 작은 키로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역할과 과제를 찾아 최선을 다해 그 역할 과제를 수행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면한 어떤 어려움에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믿고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연경은 김주환 교수가 강조한 회복탄력성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회복탄력성이란 자신에게 닥친 온갖 시련과 역경과 고통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능력을 말한다. 땅에 떨어진 공이 더 강하게 떨어질수록 그 반발력으로 더 높이 튀어 오르듯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에게 닥쳐온 인생의 시련이 더 강하게 몰아쳐올수록 더 뛰어난 인물로 성장해 나간다. 역경과 고난, 실패 등 환경적 변수에 스스로가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성공과 성장의 원동력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똑같은 가난 속에서도 어떤 아이들은 동네 불량배로 전락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더 뛰어난 학업 성취능력을 보여주었다. 똑같은 사생아로 태어나도 어떤 사람은 범죄자가 되지만 어떤 사람은 빌 클린턴과 같은 대통령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IMF 시련이 닥쳤을 때에도 어떤 가정은 그 때문에 이혼으로 무너졌으나 어떤 가정은 더 강한 가족애로 더 단단한 가정을 일궈냈다.

 

역경지수 이론에서는 고난과 장애는 인생의 장애물이지만, 회복탄력성 이론에서는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인생의 자원이며, 신의 축복이 된다.

 

역경지수는 말한다. 김연경은 작은 키라는 운명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배구 선수로 성장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은 말한다. 김연경은 작은 키라는 운명적 한계 덕분에 최고의 공수완전체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김연경의 배구선수 시절을 되짚어 보면, 김연경은 진정 회복탄력성이란 부분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온 인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배구를 시작한 초등4학년 때부터 고교 1년 때까지 작은 키가 약점이 되자 김연경은 그 작은 키를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비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후보 선수로서 벤치에 머물렀던 시간들은 기본기를 다지며 유망주들의 활약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상대팀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며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을 읽을 수 있는 배구의 눈을 기르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해외 진출 후 타국에서 맞은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들은 상대팀 주요 공격수들에 대한 비디오 분석의 시간으로 활용하였고, 일본과 터키에서 받은 텃새와 따돌림은 자신의 실력을 강화하고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더 강한 주체적 성품을 기르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또한 전 세계 어떤 선수들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기회로 만들었다.

 

프로에 발탁된 후 3년 연속 무릎 수술을 받고 긴 재활훈련을 실시했던 20대 초반의 경험은 운동선수로서 불혹의 나이인 서른이 넘어서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는 관리 능력을 배양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야말로 김연경은 그녀가 겪었던 인생의 장애와 시련을 자신의 성공의 자양분으로 활용하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켜온 위대한 인생의 연금술사였다.

 

 

 

김연경의 기회선용의 원칙

작은 기회 속에 큰 미래의 기회가 숨어 있다.”

 

김연경은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수이다. 주니어 선수 시절 김연경 만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선수도 없었다. 그녀의 주니어 시절에 걸친 모든 노력의 흔적들은 사실 단 한번의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한 절박함의 발현이고, 기회를 얻었을 때 확실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김연경은 그녀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기회의 신비로움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그녀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기회란 양파껍질과 같다고 한다. 기회는 아주 작은 기회 속에 다른 기회가 있고, 그 기회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진다.

 

, 김연경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처음 후보 선수였을 때 자신은 더도 말고 딱 한 번 경기에 투입되는 작은 기회를 간절히 원했고, 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기 몫을 하는 선수라는 걸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두 번 경기에 투입되면서 그 순간을 지켜본 감독과 관계자의 눈에 들어 청소년 대표가 될 수 있었고, 청소년 대표팀의 활약은 프로팀 발탁이라는 기회로 이어졌고, 그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하자 일본 진출의 기회가 생겼고, JT마블러스의 활약은 터키 페네르바체의 이적과 유럽 챔피언스컵 획득이라는 기회로 이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기회든 최초의 기회는 단 한번의 작은 출전 기회에서 시작되었단 점이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한 자신의 실력과 기량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김연경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단 한번도 그 기회를 대충 적당하게 시간 때우기로 보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기회가 찾아오면 그녀는 철저하게 다시는 후회할 필요 없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위해 노력했다.

 

카이로스의 여왕, 김연경

 

김연경은 기회주의자인가? 맞다. 좋은 의미로 그녀는 기회 중심주의자이다. 최대한 기회를 살려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인 것이 맞다.

 

5세트의 여왕이라는 그녀의 별명을 생각해 보자. 5세트, 특히 후반 마지막 10점 이후 점수대가 되면 평범한 선수들은 감히 공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영웅 아니면 역적이 되는 막판 공격을 가슴 떨려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5세트 막판은 영웅 아니면 역적이 되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간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김연경이다. 김연경은 그러한 중요한 시점을 감독과 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각인 시키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하는 기회 선용주의자이다. 그리고 그때의 성공을 극적인 판타지로 만드는 그녀의 멋진 세레모니는 기자들에게 좋은 그림이 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외모는 매우 우스꽝스럽다. 앞머리는 머리숱이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어깨와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양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카이로스의 모습은 추상적인 기회의 속성을 인격화 시키고 조형물의 형태로 형상화 시킨 것이다. 카이로스의 앞머리가 무성한 것은 기회를 발견한 사람이 앞에서 그 머리채를 쉽게 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뒷머리가 대머리이고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있는 것은 기회란 뒤에서는 잡을 수 없는 속성과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기회의 휘발성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카이로스가 손에 들고 있는 저울과 칼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인간이 갖춰야 하는 능력을 나타내는데, 저울은 정확한 판단력’, 칼은 날카로운 결단력을 뜻한다.

 

여기서 보면 김연경이 매우 기회를 잘 활용하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기회는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사람만 잡을 수 있고 기회가 왔을 때 정확한 판단력으로 단칼에 결정을 보는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인데, 김연경은 이러한 철저한 준비력’, ‘정확한 판단력’, ‘단호한 결정능력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갖추고 있는 선수가 아닌가?

 

김연경은 어쩌다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 것인가? 그것은 그녀의 벤치 생활과 인연이 깊다. 벤치에서 기다리다가 주전 선수의 공백시 투입되는 후보 선수는 사실상 정해진 포지션이 없다. 주전 선수의 부상이나 심각한 경기력 약화, 체력 저하로 그 선수 대신 투입되는 후보 선수는 자신의 포지션보다 자신이 대행하는 그 선수의 포지션을 어떻게 대체하는가가 더 중요한 능력이다.

 

김연경은 어떤 선수의 대체선수로서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모든 포지션의 기본을 숙지했다. 물론 키가 작았던 그녀에게 센터나 윙을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수비수 중심의 대비를 했지만 공격수의 대체 선수 역할에도 만전을 기하며, 나중에 언제든지 대형 선수가 되면 쓸 수 있도록 배구의 기본기를 닦는데 최선을 다했다.

 

원곡중학교 후보 선수 시절, 김연경은 출장 기회를 얻기 위해 김동열 감독에게 수시로 출전 기회를 달라고 적극적으로 졸라댔다고 한다. 물론 당시 원곡중학교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김연경은 출전기회를 얻기 힘들었지만, 김동열 감독과 홍성령 코치는 단 한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항상 적극적으로 자기를 어필하는 김연경의 그 모습이 매우 기특하고 예뻐보였다고 기억한다.

 

김연경은 기회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도전 없이 기회도 없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우연이란 없으며 하나의 선택은 항상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며, 지금껏 해온 노력들이 새로운 성과를 이끌어내며 또 하나의 선택이란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기회가 또 다른 기회를 부르고 그 기회가 또 다른 기회로 엮여 나가는 그러한 과정의 연속이 인생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경의 기회주의는 다른 말로 하면 도전이기도 하다.

 


 

김연경의 도전의 원칙

내가 가는 곳에 길이 생긴다!”

 

김연경은 남이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선수이다. 김연경 이후 아직 해외 진출 선수가 없는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독보적인 개척자인지 알 수 있다.

 

김연경은 기회 앞에서 안전한 길을 갈 수 있는 지도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란 없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김연경은 자기 자신 역시 당장 내일 경기의 승패도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김연경의 도전은 무모한 도박과 같은 확률게임일까? 아니다. 김연경의 도전관은 매우 합리적이다. 김연경은 그녀의 책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도전이란 자신의 과거의 길을 돌아보아 자기의 위치를 알고, 지금의 능력을 가늠해 보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신중한 결정 과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도전은 힘든 과정이라고 고백한다. 인생의 길이 나누어지는 순간, 어디론가 한쪽 편을 선택해야 할 때 그 때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주변의 조언이나 외부의 어떤 자료나 데이터가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노력과 앞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자신의 의지만이 힌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어찌보면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 자신을 믿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도전이라 할 것이다.

 

김연경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 기회를 최대한 잘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장점을 잘 알고 장점에 기반한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연경은 그녀의 책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평소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장점과 단점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모든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김연경이지만, 주니어 시절 김연경은 동료 선수들의 타고난 신체조건과 감각적인 운동신경을 보며 의기소침해 질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연경은 그들과 비교해 자신의 단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장점과 기회에 집중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센터와 윙이 갖춰야 하는 전봇대 같은 신장과 균형 잡힌 신체는 당시 김연경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자신의 단점이었다. 그러나 리시브는 자신의 키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었고, 수비는 작은 키가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영역이었다. 배구 기본기라는 부분은 마치 고교생의 국영수 과목과 같아서 모든 선수들의 공통 과목이었다.

 

따라서 김연경은 수비와 리시브, 기본기를 자신의 장점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중학생 시절 모든 훈련 시간을 이 능력들을 향상 시키는 데 투자했다.

 


 

김연경은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으며, 어떤 사람도 단점만으로 이뤄진 사람도 없다. 단지 그 비중의 차이가 크거나 선천적으로 받은 게 많은 사람이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장점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하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작은 장점이라도 그것을 찾아 개발해 나가면 그 장점이 다른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유능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지만, 만약 자신이 고칠 수 없는 약점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결국 가지고 있는 많은 장점도 활용하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포기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슴 뛰는 꿈이 있다면 자신의 장점에 무게 중심을 맞춰야 한다. 김연경이 키가 작았을 무렵, 수비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모든 노력의 초점을 맞췄던 경우처럼 말이다. 타고난 장점도 있지만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의 영역도 무궁하다.

 

한편 김연경은 막연히 꿈만 꾸는 몽상가를 거부한다. 꿈은 현실 속에서 목표가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김연경은 언제나 꿈의 시작을 현재 자신이 실현 가능한 목표에서 시작했고, 단계별 목표 설정과 실현을 통해 꿈을 향해 한발자국씩 다가갔다.

 

김연경의 꿈과 목표의 상관관계를 보면, 얼마 전 읽었던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에서 본 전설의 복서 에반더 홀리필드와 그의 유명한 코치 카터 모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 앨라배마 주의 사생아로 태어난 흑인 복서 홀리필드를 LA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통합 헤비급 챔피언으로 만든 카터 모건은 인종갈등이 심했던 1970년대에 흑인인 홀리필드를 제자로 거두어 꿈과 용기를 심어준 코치였다. 그는 링 위에선 흑백 구분이 없고 오직 강자와 약자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치 카터는 홀리필드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봐, 에반더, 넌 제2의 무하마드 알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게 되고 싶니?” 당연히 홀리필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 때 카터 모건은 홀리필드에게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래, 그럼 그것은 너의 꿈이냐, 아니면 목표냐?”

 

에반더, 꿈은 말이다. 그냥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그냥 상상하는 것 그 뿐이다. 그러나 목표는 그걸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꿈을 이루는 것이다. 네가 본받아야 하는 사람은 말이다. 모두 조직적인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다

 

그렇다. 오늘날 김연경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구선수의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단계별 목표를 정하고 날마다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꾸준히 걸어온 김연경의 계획과 실천, 성실함의 대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연경이 주변의 회의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배구 선수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던 것처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는 주변의 차가운 평가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포기하기 위해 스스로 변명을 만들어 내지 말라. 타고난 장점이 없다면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자는 마음으로 꿈을 향해 도전하라. 그것이 영원한 도전자 김연경의 자세이다.

 


 

김연경의 도약의 원칙

현실에 안주하면 하늘을 날 수 없다

 

국내 데뷔 첫해인 2005-2006년 시즌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와 모든 선수가 단 한번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을 한꺼번에 쓸어담은 김연경은 그다음 시즌에도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연달아 수상한다.

 

김연경은 좀 더 높은 이상이 필요했다. 주니어 시절 단지 주전 선수를 목표로 시작했던 단계별 목표 설정은 청소년대표와 프로 선수 드래프트, 국가 대표 자격 획득으로 다 이루었다. 프로리그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2년 연속 V리그를 평정했다.

 

다른 선수 같으면 이젠 숨을 좀 돌리며 국내에서 한껏 높아진 위상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의 배구에 대한 열망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늘 배가 고팠다. 그녀에겐 자신의 기량을 더욱 성장시켜 주고 자신의 잠재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더 큰 무대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숙달시켜온 기본기와 급작스럽게 자란 신체 조건으로 월등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김연경에게 국내 리그는 좁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김연경은 국가대표로 해외로 나갔다가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경기를 치룬 후 김연경은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저녁 식사 장소에서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외국 선수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V리그 선수와 달리 외국 프로 선수들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여러 국가로 소속팀을 옮겨 다니며 개인의 기량과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배구의 실력이라는 것도 결국은 수준 높은 선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신장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선수들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세계 배구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배구선수들은 왜 해외로 나가지 않는 거지?”

 

김연경은 1979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조혜정 선수 이후 해외진출 선수가 없는 우리나라 배구의 현주소에 강한 의문감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에 외국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배구를 배우나 늘 궁금해 하던 김연경은 V리그에 용병으로 온 외국선수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는데, 그 선수들은 하나같이 , 너라면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성공할 수 있어라며 김연경의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

 

유소년 시절과 주니어 시절 배구 기초공사를 위한 기본기 습득을 위해 땅만 팠었다면, 청소년 시절과 흥국생명 시절엔 숙달된 기량으로 열심히 달리는 시기였다. 그러나 이젠 하늘을 날기 위한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김연경은 자신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다. 낯선 해외 진출을 향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 이것은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김연경의 진출 방법의 차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 테리 콜린스의 헌신적인 노력과 당시 현장 책임자들의 눈을 최대한 신뢰하는 LA 다저스 구단주 피터 오말리와 단장 프레드 클레어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김연경의 해외 진출은 해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김연경 스스로 움직였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아주 우연하게 이뤄진 사건이다. 당시 LA 다저스의 스카우터였던 테리 콜린스는 1993년 뉴욕주 버팔로에서 펼쳐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쿠바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러 갔다가 우연히 97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뿌려대는 동양인 선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스피드건에 나온 숫자가 잘못된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째 공이 98마일을 찍자.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공중전화로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1라운드 지명급 대어 발견!’ 1라운드 지명급 선수란 바로 계약금 100만 달러 이상의 선수를 뜻한다. 박찬호의 해외진출은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반면에 일찌감치 국내 리그의 한계를 느낀 김연경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조혜정 감독의 이탈리아 진출 후 30년 동안 여자배구 선수가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막혀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배구 최초의 해외 진출 1호는 전 GS칼텍스 감독이었던 조혜정 감독이다. 그녀는 1979년 이탈리아 프로리그 산마리노에 진출한 전례가 있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을 땄을 때 신장 163.5cm에 불과한 작은 키로 180cm가 넘는 장신 블로킹 숲 사이로 강스파이크를 꽂아대며 자유롭게 날아다닌다고 해서 외신 기자들은 조혜정을 나는 작은 새라 불렀다. 조혜정 감독은 해외진출 선수로서도 1번째였지만, 4대 스포츠 분야에 있어 여성 감독 1호로도 유명하다.

 

조혜정 감독은 이태리 선수 시절 1980년 컴퓨터 세터 김호철 감독이 이탈리아 프로리그 파르마로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조감독 이후 여자배구 선수들의 해외진출 길은 막혀 있었다. V리그가 출범한 이후에는 해외 용병 선수들은 있었지만 국내 선수로서 해외로 나간 단 한명의 해외진출 선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김연경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매니저와 스카우터가 되어 소속팀 흥국생명 사장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배구선수로서 해외에 나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적극 피력한다.

 

당시 국내에는 세계적 수준을 가진 김연경을 국내 리그에 묶어 두어선 안된다는 주장과 김연경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이 곧 한국 배구를 위한 길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해외 진출에 대한 김연경의 단호한 의지가 합쳐져 흥국생명의 도움으로 김연경은 해외진출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첫 보금자리는 오사카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JT마블러스로 김연경은 먼저 가까운 일본에서 경험을 쌓고 궁극적으로 유럽이란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품었다. 이로서 김연경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 선수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사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자신을 위한 아무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곳에서 신인으로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왠만한 자신감과 인내 없이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김연경이 해외로 진출할 때는 그야말로 해외생활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국내에 남아 있으면 V리그 최고 대우와 안락한 삶의 보장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김연경은 과감하게 현재의 특권과 안정을 포기하고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기량을 높여나갈 수 있는 해외 진출을 감행한다.

 

김연경은 일본 진출 당시, 단 두 가지만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실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통할 수 있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언어소통의 문제, 문화적 차이, 한일 과거사 문제, 일본배구의 특징, 새로운 동료들과의 인간관계, 이적 관련 복잡한 법률 문제, 새로운 숙소와 생활권에 대한 적응 문제 등 복잡하고 산재한 해외진출 문제를 단 2가지 대안으로 압축시키는 그녀의 자신감 말이다.

 

 

 

김연경의 고통량 불변의 원칙

매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훈련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다.”

 

김연경은 배구를 처음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감내하는 것이 있다. 엄격한 자기 기준에 입각한 고통스런 훈련량을 일정량 채우는 것이다. 배구의 배짜도 모르던 열 살때부터 세계 최고의 선수로서 4개국 리그에서 활동하며 최고의 몸값을 받는 선수가 된 현재까지 김연경은 배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파김치가 될 정도의 지친 몸이 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 표어는 늘 처음처럼이다. 매일밤 김연경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혹 어린 시절 배구를 하고 싶어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던 꼬마 김연경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지, 혹 주니어 시절 키가 작아 주전으로 나가지 못할 때 경기에 출전시켜 달라고 감독을 조르던 소녀 김연경의 간절한 마음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늘 자신의 마음을 점검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배구선수가 되기 위해 오늘 흘려야 할 합당한 양의 땀을 흘렸는지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녀가 채택한 훈련의 기준은 판단력이 반사신경이 될 때까지 연습을 무한반복한다는 것이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여 줄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은 지속된다.

 

그녀의 훈련 과정은 다음과 같다. 어느날 시합 도중 유난히 잘 하는 선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선수의 몸놀림과 손목의 위치, 스파이크를 할 때와 리시브를 할 때 손의 각도와 속도를 눈여겨본다. 그리고 그 자세와 타이밍과 기술을 자신의 폼에 접목시켜 본다.

 

기본자세는 필수이다. 대부분 선수들이 이 기본기도 제대로 안되어 있지만 김연경은 기본기는 어디까지 기본일뿐이라고 한다. 다른 선수들이 기본 자세를 숙달시키고 있을 때, 김연경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많은 상황에 따른 응용 자세를 연습한다.

 

배구는 매우 세밀한 스포츠이다. 리시브를 받을 때나 스파이크를 할 때 약간의 손목 각도가 달라도 공이 날아가는 위치가 달라진다. 따라서 팔과 손목의 높이와 각도, 속도를 달리하며 수없이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반복하며 또 반복한다.

 

판단력이 반사신경이 될 때까지...

 

최고의 공격수가 되려면 순간 판단력이 누구보다 빨라야 한다. 신장 192cm의 김연경이 점프를 하면 타점은 3m 정도에서 설정된다. 김연경은 점프를 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올라온 공의 위치와 상대 블로킹과 네트 넘어 리베로와 수비수 위치와 빈 자리와 라인을 동시에 확인하며 시속 100km의 속도로 공을 때려내야 한다.


권업의 경영학 저서 <스캣>에서 나오는 창의적 순간 판단력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스캣이란 원래 재즈 음악에서 때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창의적 창법을 뜻한다. 원래 악보에 없는 음악이다. 이것을 책에서는 예상치 못한 긴박한 상황에서 대응방법의 판단과 실행이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창의적 문제 해결과정이라 명명했다.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 보니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예를 들어보면 좀 쉽게 다가올 것이다. 스캣은 아주 긴급한 상황, 시간적으로 촉박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방법을 빠르게 찾아 실행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축구선수가 당장 슛을 날릴 것인지 수비를 재치고 드리블을 할 것인지 순간 정하는 능력이나 참사 현장에서 대량 환자가 발생되었을 때 누구부터 구해야하며 어떻게 구해야 할지 방법을 정하는 구급요원의 신속 정확한 활동 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연경처럼 최고의 공격수들은 이러한 스캣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데, 단순히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빠른 실행력 또한 필수적이다. 그야말로 코트 안에서는 숙고할 시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 0.1, 아니 0.01초 안에 공을 어디로 보낼 지와 공을 때리는 연속 동작이 동시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이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반응하는 단계로 빨라지지 않으면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없다.

 

김연경은 그러한 최고의 스피디한 순간 판단력과 반사신경이 고양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훈련의 최고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고, 그러한 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냉정한 자기 조련 대화

 

그리고 그렇게 훈련하기 위해 김연경은 특유의 대화법을 고안해 냈다. 자기 채찍질 과정인 폭력적 자기 조련 과정이다. 김연경은 이것을 팩트 폭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몸을 마치 조련사가 맹수를 다루듯이 언어 채찍과 몽둥이로 사정없이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김연경은 자신을 매우 호되고 잔인하게 다룬다고 한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이제는 쉬고 싶고 적당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때에 따라 마음 속에서 현실과 타협하라는 달콤한 유혹이 들려올 때가 있다고 한다.

연경아, 너도 할만큼 했잖아. 너 나이도 있고, 좀 쉬엄쉬엄 해

 

그러면 김연경은 자기를 향해 마음 속으로부터 고함을 친다고 한다.

연경아, 니가 언제부터 게으름이야. 빨리 일어나 연습하지 않을 거야?”

 

또 일반 사람들은 보통 실수를 하면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괜찮아, 너도 사람이잖아. 누구든 실수할 수 있어 걱정마 다 잘 될 거야

 

그러나 김연경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연경아, 이거보다 잘할 수 있잖아? 가야지, 더 가야지, 파이팅!”

, 식빵, 연경아, 이 부분 준비를 더 해야지, 여기가 모자랐잖아. 이럴 땐 이렇게 했어야지

 

한동안 김연경은 식빵녀 사건으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는데, 그 식빵이란 것도 다른 사람을 상대로 쓰는 경우는 없고 오직 김연경 자신이 잘못한 실수에 대해 스스로 나무라는 과정이다.

 

김연경은 절대로 자신의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모호한 표현이나 위안으로 적당히 어물쩍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한 부분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성장의 장애요인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객관적인 사실과 팩트를 가지고 자신을 강하게 다그친다.

사실 김연경은 어느 팀에 있건 그 팀의 승부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치는 에이스이다. 따라서 승리와 패배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고 구단과 팀 동료, 코칭 스태프와 팬들은 김연경에게 늘 높은 기대치를 갖고 그녀의 경기를 관람한다.

 

그래서 김연경은 게임에 들어갈 때마다 엄청난 압박감을 받고 있다고 한다. 팬들은 김연경이 행복배구를 하길 희망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김연경도 안다. 만일 자신이 게임을 망쳐버리면 그 얘기를 하던 팬들이 자신에게 제일 먼저 등을 돌리리란 것을.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통 선수라면, 마인트 컨트롤을 하면서

잘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김연경 파이팅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겠지만

 

김연경의 팩트 폭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스트레스도 안 받고 돈 받는 줄 알았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높은거야. 당연히 받은 만큼 해줘야지

 

김연경의 자기비판과 팩트 폭력은 강철 멘탈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워낙 자신을 호되게 꾸지람 해 왔기 때문에 외부 언론이나 누리꾼들의 왈가왈부에 좌우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명확하게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는 경우가 없으며 스스로 자기 보기에 당당하다면 다른 사람 앞에 주눅이 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김연경의 기본적인 마음자세이다.



 

김연경의 자기 주도 연구의 원칙

거장은 혼자만의 시간에 완성된다!”

 

필자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서 학원 수강이나 과외와는 인연이 없었다. 워낙 가난한 동네에 위치한 학교라 학생 대부분이 필자와 처지가 비슷했다. 오래된 사립학교라 나이 많으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그렇게 열의가 있지도 않으셨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대부분 수업은 자습 시간으로 운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급 학교 진학률이 많이 떨어지는 학교도 아니었으니 아마도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 학습 비슷하게 공부하던 학교라 그런 것 같다.

 

대부분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의무적인 보충수업과 전혀 자유롭지 않은 자율학습을 마쳐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였다. 그런데 전교에서 석차를 다투던 친구들은 그 시간에도 집에 가는 버스나 전철을 타지 않고, 독서실 셔틀버스에 몸을 싣곤 했다.

 

사실 늦어도 아침 7시까지 등교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가서 밤참이라도 먹고 자면 아침에 지각하지 않고 등교하는 것도 벅찬 수험생활이었다.

 

그런데 수재라 불리던 친구들은 자율학습 후에도 독서실에 가서 새벽 1시 반이나 2시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부치고 다음날 학교에 나왔는데 늦어도 620분 이전에는 착석을 완료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들은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들었는데, 필자는 그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수업 내내 꾸벅꾸벅 졸곤 했으니 그 친구들보다 더 많이 자고도 늘 잠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느날 필자는 존경하던 수재 친구에게 잠도 적당히 자야지 그 시간에 독서실까지 가서 공부할 필요가 있어?”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는 필자에게 거장은 혼자만의 시간에 완성되는 거야. 나만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 때는 그 친구의 말이 그렇게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책들을 찾아 공부해 보면서 한 분야에서 일획을 그은 진짜 모든 대가들은 하나같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그 능력치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독은 모든 분야의 1인자에겐 그림자와 같은 절친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실력으로 바꾸는 연금술 없이 천재성은 길러질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배구 코트의 연습벌레였던 김연경은 혼자만의 시간을 누구보다 뛰어난 기량과 멘탈로 만든 시간의 연금술사라 할 수 있다.

 

체육관 면벽 훈련

 

후보 시절 김연경은 남다른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보통 사춘기 여자 아이들이 아이돌을 좋아하고 멋을 한껏 내고 싶어 하던 시절, 김연경처럼 운동하는 주니어 선수들의 하루 스케줄은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훈련이 시작되어 오전 수업을 제외하고 저녁까지 쉴 틈 없는 훈련 시간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일하게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뿐이었다. 김연경은 다른 선수들과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이 시간뿐이라고 생각하여 점심과 저녁을 서둘러 먹고 난 후 나머지 시간을 자신만의 훈련 시간으로 만들었다.

 

다른 선수들은 이 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친구들과 잡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김연경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 마치 도를 닦는 도사들이 면벽수련을 하듯 체육관 벽을 동지 삼아 고독한 훈련 과정을 진행했다.

 

김연경이 작은 키라는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주전 선수가 되기 위해선 탁월한 수비 능력을 길러야 했다. 수비능력이란 공을 받아내는 기본자세를 갖추고,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전개되는 다양한 공들을 받아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일일이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공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김연경은 하루 수백 수천 번씩 벽에 튕겨오는 공을 받아내며 몸이 알아서 기억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연스런 반사신경에 의해 공을 받아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수비 감각을 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통통.... 저벅저벅..... 통통 저벅저벅......”

 

김연경이 중학 시절을 회상하면 기억하는 소리이다. 모두가 잠들고 아무도 없는 빈 체육관에서 홀로 벽을 향해 리시브 연습을 할 때 벽을 튕겨 나오는 공 소리와, 모든 친구들이 떠나고 홀로 남아 운동장을 돌 때 유일하게 들려왔던 자신의 발자국 소리. 김연경은 지금도 중학교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 속 한 곳이 아련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세계 최고 공격수들이 갖추지 못한 절대적인 김연경만의 수비력은 다름 아닌 이곳에서 만들어 졌다. 2017-2018 중국 수퍼리그 세계랭킹 1위 중국에서 랴오닝의 리베로 공메이지와 함께 서브 리시브 성공률 공동 1(82%)를 달성한 김연경의 거미손은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보면 김연경이 얼마나 배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배구는 벽에서 튕겨오는 공을 가지고 혼자 연습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운동이다. 스쿼시나 탁구, 농구 자유투 훈련, 축구 페널킥 훈련 같은 것은 체육관 벽을 동지 삼아 혼자 연습하기 쉽지만 반발력이 작은 배구공을 가지고 벽에 튕기며 혼자 연습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지난한 연습 과정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고독하고 불편한 훈련 과정을 주니어 시절부터 수행한 김연경은 대단한 근성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벤치 게임 분석관 훈련

 

후보 시절, 김연경의 고정 자리였던 벤치는 그녀의 배구 학습의 전당이었다. 벤치는 겉으로 보기엔 실전에 나가지 못하는 후보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불명예스런 장소였지만,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코트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경기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장소였다. 벤치는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앉는 자리와 가장 가깝게 위치해 있다. 일반 관중들이 보지 못하는 선수들의 얼굴과 눈빛, 대화와 작전 전개 상황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김연경은 벤치에 앉아 동료들이 뛰는 경기들을 보며 자신의 경험치를 넓혀갔다. 그녀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를 보면 그 당시 김연경이 벤치에서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 알 수 있다.

 

, 공이 저렇게 들어올 때는 팔을 더욱 앞쪽으로 더 뻗어서 받아 올려야하는구나

저런 빈틈을 치고 들어오니 속수무책이구나

속도를 줄였는데도 오히려 블로킹에 걸리지 않잖아, 어떻게 된 거지?’

서브가 안정적이다. 무릎 각도가 어느 정도일까?’

 

상당히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중학생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김연경의 관찰 능력은 지금의 비디오분석관 이상으로 철저하고 정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김연경이 끊임없이 배구에 대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다. 모두가 알겠지만 의문이란 아무 사람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또 다른 방법은 없는지 더 좋은 대안을 꿈꾸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학창시절 김연경은 항상 배구에 대한 의문을 품고, 경기를 주도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 늘 궁금해 했다.

 

 

그리고 김연경은 당시 주니어 유망주들을 관찰하며, 자신과 그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격차를 줄여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다. 특히 김연경은 자세에 대해 집요하다시피 파고들었다. 스포츠는 특히 자세가 중요하다. 기본기는 동일해도 선수들은 각각의 신체 조건에 따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세가 만들어지는데 그런 자세의 차이에 따라 경기력의 차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개별적인 선수들의 움직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게임을 계속 관찰하다 보니 게임의 전개 과정과 흐름, 전술과 관련된 전체적인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 숙소로 돌아오면 김연경은 벤치에서 관찰한 결과들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자신에게 맞는 것도 있었고, 자신의 신체 조건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은 김연경만의 자세와 타이밍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김연경의 중학교 시절 기본기를 지도했던 홍성령 코치에 의하면, 당시 김연경은 학교 대표들 간의 경기와 TV에서 보여주는 국가대표 선수들 간의 경기 하는 모습들을 보고 와서 꼭 새 기술을 자신의 몸으로 실험해 보곤 했다고 한다, 그 벤치마킹의 대상에는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수원한일전산 시절에는 당시 남자배구계를 주름잡던 신진식 김세진의 폼을 자신에게 접목시키다가 박기주 감독에게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최근 국제배구계에서 상한가를 치고 있는 바키프방크의 주팅을 비롯 수많은 배구선수들의 롤 모델이었던 김연경은 정작 자신은 특별하게 추종하는 롤 모델이 없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롤 모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선수들에게서 다양한 강점을 배웠기 때문에 롤 모델이 없는 것이다.

 

김연경은 지금도 코트 위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를 만나면 그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그 선수의 강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한다. 이렇게 하나의 체질화된 벤치마킹 습관이 형성된 것은 바로 후보 시절 벤치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던 때부터였다.

 

 

출발 비디오 여행, 배구 영상 돌려보며 득도의 경지

 

김연경은 JT마블러스 생활을 하면서부터 한국 드라마와 배구 비디오의 매니아가 되었다. 일본 리그는 일정 기간 이상 활동한 선수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배구를 시작한 후 줄곧 합숙생활을 해온 김연경은 처음으로 독립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항상 동료들과 먹고 자고, 생활을 함께 해온 김연경은 연습 후 아무도 없는 썰렁한 방에 덩그라니 혼자 있게 되자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외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이곳은 일본이라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유년시절 새벽부터 북적거리는 숙소생활을 하다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한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같이 쉽지 않았다.

 

김연경은 이 때부터 한국 프로그램과 배구 비디오를 열심히 보게 되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한국말이 들리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틀어두었다.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뛴 경기 영상 또한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사실 김연경이 자신의 경기를 복습하기 시작한 것은 흥국생명 프로선수가 되고서부터이다. 이때는 자신의 플레이가 득점으로 연결된 경우와, 실점으로 연결된 경우를 나누어 치밀하게 플레이를 고찰했고, 그 경기 과정이 자신의 최선의 결과였는지를 늘 점검했다.

 

그런데 JT마블러스 시절에는 단순한 복습 차원의 비디오 분석이 아니었다. 일본의 현미경 배구는 상대의 패턴과 플레이, 상대선수의 습관, 주된 공격 루트를 철저히 꾀고 있었다. 당시 김연경은 상대팀 비디오 분석관에 의해 철저히 경기 패턴이 분석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이전과 다른 공격 방식과 루트를 찾아내야 했다.

 

김연경은 일본식 현미경 배구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가미한 김연경식 전자현미경 배구를 구사했다. 김연경은 날마다 비디오를 보면서 상대편의 대응에 대비해 다음날 어떤 방식으로 상대방의 허를 찌를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전략을 구상했다. 전날과 다른 패턴,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 상대편의 허점을 파고드는 김연경의 플레이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특히 페인트를 활용한 강약에 변화를 주는 김연경식 노련한 플레이는 이 때 시작된 것이다. 22살 밖에 안 된 김연경에게 여우같은 노련미가 장착되는 순간이었다.

 

 

페네르바체에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게 된 것도 이런 비디오 분석 능력이 큰 기여를 했다. JT마블러스 시절 김연경은 자신의 큰 신장을 이용한 공격을 통해 일본의 블로킹 벽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터키에 왔을 때 김연경은 높은 신장과 팔 다리 길이에 파워까지 가미한 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모인 터키 리그의 블로킹 벽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김연경이 누구던가? 언제나처럼 비디오 분석을 하며 터키 리그 블로커들에 대해 열공하던 김연경은 상대 블로커들의 공통점을 발견해 낸다. 터키 리그의 모든 선수들은 반드시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과 타점 방향이 일치하다는 점이었다. 김연경은 몸을 비틀어 바라보는 방향과 때리는 방향을 달리 하면 충분히 블로커들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김연경식 비틀어 때리기 방법을 창안한다. 바라보는 방향과 손의 방향이 다른 공격 방식을 창안한 것이다. 이러한 김연경의 독특한 방식은 터키 리그 초기 공격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처럼 터키 페네르바체 시절의 활약은 더욱 날카로운 비디오 분석 실력 덕분이었다. 페네르바체 시절에는 아예 게임이 끝나면 팀에서 편집된 영상이 넘어온다. 그러면 김연경은 그날의 자신의 경기 영상을 보며 게임의 흐름 속에서 과연 자신의 공격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었는지 다른 빈 곳은 없었는지 자신의 스파이크 높이와 자세와 타이밍과 상대방 블로킹 중 가장 약한 부분은 어디였는지 빠짐없이 점검한다.

 

게임이 마음대로 안 풀린 날엔 특별히 편집된 비디오를 요청하기도 한다. 그날 C속공이 불안정했다고 하면 C속공을 하는 장면만을 모조리 편집해 그날의 C속공 자세 전체를 비교해 본다. 특히 블로킹이 누구였을 때 자신의 자세가 가장 불안정했는지, 그 때 빈 공간은 어디였으며, 손목의 움직임 방향과 속도, 자세, 타이밍을 뜯어보아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어렴풋하게 느꼈던 그 이유를 반드시 구체적으로 찾아내고야 만다.

 

김연경은 자신의 비디오 분석을 바둑기사들의 복기에 비유한다. 바둑 고수들이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자신의 전 과정을 다 기억하고 있듯이 김연경도 그날 경기 중 자신의 활동을 거의 기억해 낸다고 한다. 마치 프로기사가 그때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한두 가지뿐이였듯이 배구 역시 매순간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흐름을 타며 최대한 자신의 기술을 전략적으로 펼쳐나가다 보면 그 모든 순간이 기억에 그대로 저장이 되기 때문이란다.

 

이긴 경기도 그처럼 철저하게 분석할까? 그렇다. 김연경은 그 경기의 승패에 상관없이 그 흐름 속에서 최선의 결과 도출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철저히 분석한다.

 

보통 스포츠 경기는 이기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진 것은 빨리 잊어버리려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제대로 반성과 교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팀이 무엇 때문에 졌는지, 무엇 때문에 이겼는지 그런 원인 규명보다는 눈에 보이는 승패의 결과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은 게임의 승패의 원인 규명은 물론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모든 활동이 가장 유효한 것이었는지를 철저히 파고든다. 김연경의 이러한 냉철한 자기 분석은 최고의 공격 성공률을 가진 월드 클래스가 탄생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연경의 공아일체 원칙

내가 공이요, 공이 나다

 

김연경이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했을 때 한동안 함께 룸메이트 관계였던 카메라 장착 곰돌이 인형 윌슨이다. 110cm 짜리 곰돌이 인형의 이름을 생각하다보면 왜 이 인형의 이름이 윌슨인지 이해가 된다.

 

 


윌슨은 톰 행크스 주연의 헐리웃 영화 <캐스트어웨이>에 나오는 배구공 이름이다. 로빈슨 크로소우 이야기를 현대화한 <캐스트어웨이>는 분초를 아끼며 스피드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관계에 대한 회상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고독과 실존이란 주제를 농도 깊게 다루고 있는 B급 영화중 수작으로 손꼽히는 명화이다.

 

영화에서 척 놀란드(톰 행크스)는 비행기 사고로 남태평양에 있는 어느 무인도에 착륙한다. 홀로 살아남은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데 생활의 불편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의 감정을 함께 할 이가 없는 절대적인 외로움이었다.

 

철저한 외로움 속에서 마침 밀물에 떠밀려온 페덱스 택배 물건 중 하나인 배구공을 발견하고, 그 배구공에 사람 얼굴과 눈코입을 그려 넣고 배구공의 상표 이름을 따서 윌슨이라고 부른다.

 

 

윌슨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독거남 척 놀란드의 유일한 친구였다. 척 놀랜드는 무인도에 있는 4년 동안 배구공인 윌슨과 모든 삶을 공유하며 하루 24시간을 동행한다. 척 놀랜드는 마치 윌슨을 사람처럼 대하며 때론 친구처럼 또 가족처럼 돌봐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 뗏목을 만들어 무인도를 탈출하다 파도에 휩쓸려 윌슨이 떠내려가게 되자 척 놀란드는 망연자실하고 울부짖는데 애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 때보다 더 크게 슬퍼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삼스럽게 영화 <케스트어웨이>의 윌슨 이야기를 꺼낸 것은 김연경의 고등학교 때 생활이 영화 속의 척 놀랜드의 행동과 많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지만 배구공과 하나가 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동행했던 척의 모습이 김연경의 모습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척 놀랜드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 넣고 친구로 삼았을까 하는 마음처럼 김연경이 얼마나 배구를 하고 싶었고 그 상황이 힘들었으면 배구공과 저렇게 24시간을 동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경 배구인생에서 최고 위기 순간은 언제였을까? 많은 이들이 흥국생명과의 이적 갈등 시기라고 할것이다. 그런데 김연경의 에세이를 여러 번 읽고 숙독한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연경의 배구 인생 중 최대의 고비는 중학교 3학년 때와 고교1학년 때였다. 중학교 졸업이 가까이 오자 김연경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극심해 졌다. 중학교 3학년은 김연경이 다른 분야로 진로를 수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때 김연경은 축구선수를 대안으로 갖고 있었다.

 

최종 결론을 내기 위해 찾아갔던 김동열 감독에게선 앞으로 키가 클 수 있고, 지금 훈련을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으니 배구를 계속하라는 조언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심장 김연경이라지만 그 당시 미래를 생각해보면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배구도 못하고도 다른 운동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나 오직 배구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 김연경은 배구를 섣불리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배구를 계속 하기로 결정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이 다 지나도록 김동열 감독의 말처럼 키는 쑥쑥 자라주지 않았다. 아니 전혀 자라지 않았다. 키가 자랄 것으로 믿고 배구를 선택했던 김연경에겐 애가 타는 나날들이었다.

 

그때는 함께 벤치를 지키던 친구들도 제 살 길을 찾아 나갔다. 배구를 그만두고 대학 갈 준비를 하거나, 다른 운동으로 전향하여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김연경이 보기에 자신의 위치만 정체되어 있어 보였다.

 

이 때 김연경은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배구 인생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제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때 김연경은 공이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연습을 해보자는 다짐을 한다.

 

김연경은 당시 몸이 작고 왜소하여 경기중 빠르게 날아드는 공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김연경은 24시간 동안 공을 늘 몸에 끼고 살면 공을 제대로 컨트롤 하는데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방법은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효과가 입증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당시에 국어시간에 배웠던 윤선도나 정철의 고전시가에 담긴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 사상을 김연경의 공아일체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구에 쏟아 붓는 일종의 김연경만의 무대포 전략이었다.

 

그래서 김연경은 24시간 배구공과 함께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훈련과 시합 때는 물론, 쉬는 시간에도 공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밥을 먹을 때도 한 손에는 공을 끼고 먹었고, 친구들과 만날 때나 외출을 할 때도 공을 늘 지니고 다녔고,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잠을 잘 때도 공을 품에 끌어안고 잤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공을 튕기거나 굴리고 던지고 쓰다듬는 등 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해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공의 감각을 마치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느낄 수 있도록 훈련해 나갔다고 한다.

 


사실 어린 시절 운동하는 것이 좋아 공을 끌어안고 살았다는 유명한 스타들의 이야기들은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현대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도 어린 시절 늘 품에 축구공을 안고 잤다는 일화가 있다. NBA의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하며 1980년대 4개 선수권 대회 승리의 주역으로 또 우리에겐 류현진의 소속 구단 LA 다저스의 구단주로 더 잘 알려진 매직 존슨도 그가 가는 곳이 어느 곳이든 항상 농구공을 들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하다.

 

공과 선수의 몸이 하나가 되는 이 공아일체 기법은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라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 다만 이 훈련이 김연경에겐 나름 큰 의미를 가진 듯하다. 김연경은 이 훈련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1년 이후 키가 급속하게 자라면서 그녀의 선수생활에 인생 역전이 이루어졌다.

 

단순히 시기상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이 훈련의 효과인지 알 수 없지만, 김연경은 이 훈련 이후 놀라운 인생의 변화를 맞게 된다. 후보 선수에서 주전으로, 그리고 청소년 대표와 더 나아가 국가대표로,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변화되는 분수령을 맞게 된다. 그 계기는 김연경이 자체 개발한 공아일체 훈련법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연경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이 훈련법이 실력이 이미 쌓인 관록의 선수에겐 큰 효과가 없을지 모르지만 한창 배구를 배워나가며 기본기를 쌓아나가는 시기에는 이런 무작정 돌진하는 훈련법이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김연경은 배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 배구에 미쳐 있었다고 술회한다.

 

훌륭한 사냥꾼은 사냥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뛰어난 상인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안다. 탁월한 전략가는 상대편 장수의 전략과 병사들의 기본 정서에 정통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선수란 상대편의 전략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공의 특성과 재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마도 김연경이 공아일체 훈련법으로 얻은 효과는 크게 두 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배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더 강해졌고 그래서 더 배구에 대한 실력이 증대되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단순 접촉 효과라고 불리는 자이언스 효과(Zajonc effect)라는 것이 있다. 우리에겐 노출효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쉽게 말해 자꾸 보다 보면 정이 든다고, 인간은 자주 보는 사람이나 물건, 사상 등 접촉빈도수가 높은 대상에 대한 호감과 매력이 증대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학창 시절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공신들이 영어책을 워낙 많이 봐서 교과서 전체를 달달 외우고, 영어사전을 베고 자기도 하고 외운 페이지는 씹어 먹었다는 전설들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자주 보고 자주 접촉했을 때 그 분야에 정통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김연경이 배구공을 늘 24시간 지녔던 것은 모든 주의 집중력을 배구에 쏟았다는 점을 나타낸다. 김연경은 그만큼 배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이 배가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둘째, 배구공과의 스킨십은 심리적 위안을 가져와 김연경은 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초등시절과 중등 과정에서 김연경의 문제는 너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운동을 했다는 데 있다. 유소년과 주니어 시절 김연경의 배구는 생존배구이자 불안배구였다.

 

키가 작아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없었고, 벤치 후보 선수로 상황에 따른 유동적 포지션을 맡다 보니 포지션 변동도 많았다. 실제 대회에 나가 활약상을 보이지 못하니 미래에 대한 불안도 증대되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쉬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쪼개어 연습량을 확대하는 방법 밖에 없었고, 그러한 수면량과 휴식량의 부족은 사춘기 시절 신체 발육과 균형 있는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간혹 이런 생각을 해본다. 김연경이 주니어 시절 홀로 깨어 연습하지 말고, 다른 동료들이 자는 시간에 함께 잠을 자고 휴식을 취했다면 사춘기 시절 키가 좀 더 일찍 크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키는 깊은 잠을 잘 때 체내에서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 양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성장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키가 크기 위해선 하루 8시간 이상의 숙면 시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연경은 배구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했고, 앞으로 배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위기감또한 너무 강하여 사춘기 시절 제대로 된 숙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한 불안정한 마음이 김연경이 키가 크지 못한 심층적 이유는 아닐까 하고 생각된다.

 

그런데 고교 1년 이후 배구공을 가지고 다니고 다니면서부터 쓸데없는 생각이 사라지고, 배구공의 따뜻한 가죽 표면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마사지 효과까지 보게 되어 근육과 신경의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잠을 잘 때 배구공을 끼고 자는 것이 정서적 안정과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어 궁극적으로 키가 자라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믿거나 말거나?

 


 

김연경의 멘토의 원칙

제자의 성공을 믿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라

 

우리는 같은 팀 구성원을 가지고도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거스 히딩크를 기억한다. 뛰어난 교사나 감독, 코치는 가르치는 일도 잘하지만 제자와 선수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도 잘한다.

 

훌륭한 감독은 플라시보 효과와 피그말리온 효과를 잘 이용한다. 선수에 대한 감독의 믿음과 신념이 선수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유소년과 주니어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과 코치는 선수의 현재상보다는 미래상을 바라보고 선수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연경은 좋은 배구 지도자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재보면 신장 192cm에 달하는 김연경은 장신 공격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선수 축에 들어간다. 그런데 주니어 시절 김연경은 키가 작아 늘 고민이었으니 이 시절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쉬었다가 키 좀 크고 와라하는 소리였고, 김연경이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하소연했던 말이 엄마, 어디 키 크는 약 좀 없어요?”였다고 한다.

 

이 놈의 키가 김연경의 인생을 쥐락펴락 하는 삶의 가장 큰 변수였던 것은 김연경의 키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장기와 정체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김연경의 키에 대한 기사는 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의 글이 있고, 스포츠 동아의 이병설 감독 인터뷰 기사가 있는데, 두 기사가 내용에 있어선 약간 다르다.

 

스포츠조선에선 안산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던 김연경은 그 당시 키가 148cm로 또래 중에 키가 큰 축에 속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연히 큰 키를 믿고 배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보통 여자아이들이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초등학교 4,5학년 동안 김연경은 키가 1cm도 더 자라지 않았다. 김연경보다 작았던 친구들이 김연경의 언니뻘로 보일 정도로 키가 자라나는 동안 김연경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고, 성장이 멈춘 대가로 김연경은 세터를 맡게 된다.

 

스포츠 동아에선 이병설 감독의 회고를 통해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연경의 키는 140cm도 안 되는 단신이었다고 한다. 애초에 배구를 시작하기에 너무 작은 키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기사가 서로 모순되지 않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동안 김연경이 10cm 정도 키가 자라났다는 것을 전제하면 된다.

 

그러나 다른 김연경 인터뷰 기사에서 김연경이 초등학교에서 배구를 시작한 후 4,5년 동안 전혀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스포츠동아 기사 쪽이 더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튼 두 기사 모두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김연경이 배구를 포기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된 내용을 싣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김연경의 부모는 딸의 배구 지원을 포기하려 했었다. 일반학생과 체육특기생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150cm도 안 되는 김연경을 차마 배구 특기생으로 밀어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때 김연경을 배구로 입문시켰던 안산서초등학교 이병설 감독은 김연경의 부모를 강력하게 설득한다.

무조건 큽니다. 속는 셈치고 나를 믿고 원곡중학교 배구 특기생으로 입학시키세요.”

 


 

김연경의 부모는 이병설 감독의 말을 믿고 김연경을 본격적으로 배구 선수로 키워보기로 한다. 다행히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더 자라 중학교 진학 무렵 158cm가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도 또 키가 2년 동안 크지 않고 올 스톱이 됐으니 배구를 지속해야 할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김연경의 어머니는 원곡중 배구부 김동열 감독을 찾았다. 이것은 김연경의 에세이집 <아직 끝이 아니다>에 나온 부분이다.

감독님, 우리 연경이가 아직도 저렇게 작아서 어떡하나요? 지금이라도 배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자 김동열 감독은 그동안 보아온 김연경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말한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연경이는 키가 작아도 자기 역할은 다 하고 나오는 얘입니다. 자기가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어요. 제 몫은 악착같이 다 해요

 

그러나 그런 말도 딸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었다.

키가 안 크면 후보만 하다가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연경이는 뭐라도 할 겁니다.”

 

김동열 감독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김연경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며, 김연경이 얼마나 개인훈련에 열정적인지를 말해주었다.

연경이 어머님, 오전 훈련 끝나고 점심을 먹잖아요. 그때 애들 쉬는 시간이 있어요. 다들 새벽부터 일어나서 달리고 훈련하면 말도 못하게 지쳐요. 점심을 먹고 나면 배도 부르겠다, 그래서 낮잠을 자요. 근데 그때 체육관에서 공 소리가 나서 누구지 싶어 가보면 연경이에요. 작은데도 아주 독한 구석이 있어요. 저렇게 하는데 뭐라도 해내겠다 싶어요.”

 

이 말과 함께 김연경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김동열 감독의 열의를 믿고 김연경의 어머니는 더 이상 배구를 그만시키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막내 딸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김연경의 어머니는 연경이 얼마나 배구를 하고 싶었으면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연습할까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마음껏 하게 해주자 하는 마음으로 김연경을 전폭 지지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연경 본인에게 갈등의 순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이상 크지 않는 키 때문에 운동 종목을 바꿔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3학년 때는 거의 줄곧 벤치를 지켰다. 당시 김연경은 170cm도 안되어 팀 내에서 키와 몸이 가장 작은 선수에 속했다. 어쩌면 배구선수로는 이미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축구로 전향한 선배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찾아갔던 원곡중 김동열 감독. 그러나 김감독은 그녀의 축구 전향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손발이 크고 골격이 좋아 곧 키가 클 것이라며 계속 배구를 하라고 말을 해주었다. 후에 김연경은 이 때 김동열 감독과 홍성령 코치 덕분에 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안산서초등학교 이병설 감독과 원곡중 김동열 감독은 자신이 한 일 중에 평생 가장 보람된 일로 김연경이 배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이라고 한다. 두 감독 모두 김연경이 반드시 키가 클 것이라 믿었고, 기본기가 뛰어나고 연습 독종인 김연경이 어디서든 제몫을 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김연경을 발굴한 안산서초등학교 이병설 감독은 황무지와 같은 한국 배구 유소년 학교의 페스탈로치와 같은 지도자이다. 자신을 도와줄 코치도 없이 혼자 훈련과 수업을 책임지며 먼 지역에 사는 선수들을 위해 직접 봉고차를 끌며 선수들을 태워 등하교를 담당했다. 그의 봉고차는 25Km를 찍고 2대나 폐차되었다고 하니 이병설 감독의 어린이 배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게다가 모든 비용을 자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정적인 감독 밑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은 김연경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 생각된다.

 

국가대표 김수지 선수의 부친이며 김연경과 황연주, 배유나, 강소휘를 길러낸 원곡중 김동열 감독과 홍성령 코치 부부는 당시 주니어 배구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코칭 스태프이다. 1993년 창단 후 2013년까지 20년간 원곡중 배구부를 이끌며 전국대회 우승을 22, 3년 연속 전국대회 4관왕의 금자탑을 달성하며 중학 여자배구 신흥 명문팀을 만들었다.

 


김동열 감독은 김연경 팬들에게는 애증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김 감독의 기본기를 강조한 가르침 덕분에 월드클래스급 김연경의 기초공사가 중학교 시절에 이루어졌고, 수비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갖추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김연경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아 벤치에서 한 많은 사춘기를 보내며 마음고생을 많이 시킨 감독이니 김연경에게 병과 약을 제대로 준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김동열 감독은 김연경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해진다. 그만큼 김연경이 자랑스런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연경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양심적으로 선을 긋는다. 김연경은 고등학교 때 급성장한 선수이며 자신은 중학생 시절 기본기만 충실히 가르쳤을 뿐이라고 말이다. 기본기가 좋았던 김연경은 다른 팀 감독들이 탐을 내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절대로 남에게 양보는 안하면서도 팀 성적을 위해 김연경의 출전에는 인색했던 성적지향 감독님.

 

그래도 김동열 감독은 키도 작고, 배구 실력이 모자랐음에도 늘 감독님 저 시켜주세요라며 끊임없이 경기에 내보내 달라고 보채던 김연경이 정말 예뻤다면서 속으로는 가장 아끼던 제자였음을 고백한다. 자신은 기본기만 가르쳤을 뿐인데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후 자신을 스승으로 인정하는 김연경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양심적인 감독이다.

 


고교생 김연경을 대한민국 최고의 루키로 지도한 수원한일전산의 박기주 감독은 김연경의 진짜 실력을 인정해준 감독이다. 17년간 수원한일전산을 고교급 우승 20여 차례에 올렸던 그는 한국 주니어배구의 산증인이자 고교배구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2010년도 월간 <경기교육>에 실린 경기도교육청 현종헌 명예기자가 쓴 김연경 선수에 대한 박기주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그가 김연경을 얼마나 아끼는 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인터뷰 기자가 김연경이 어떤 선수인지 묻자. “한마디로 앞으로 그런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일본의 덴소 감독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선수로 봤고,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은 200년이 지나도 나오기 어려운 선수로 봤다면, 박기주 감독은 김연경을 앞으로 전무후무한 선수로 보고 있다.)

 

학창 시절 김연경을 묻자. “보통 자기 제자 평할 때 좋은 말만 하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아주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분위기 메이커였고요. 성격도 기가 막힐 정도로 좋습니다.”라며 제자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박기주 감독은 배구를 제대로 아는 감독이다. “보통 배구를 스파이크로 실력을 평가하는데, 사실은 리시브가 뛰어난 선수가 우수한 선수입니다.” 이런 배구 철학을 갖고 있는 박기주 감독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김연경의 실력이 일취월장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김연경이 고등학교에 올라와 인정받게 된 것은 키가 급격하게 자라나 타점과 파워가 강해진 것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수비력과 리시브가 강한 김연경의 재능을 높이 산 박기주 감독의 눈썰미도 작용한 것이다.

 

박기주 감독은 이러한 리시브와 수비 능력에 공격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김연경을 고교 2년차부터 레프트 윙으로 적극 활용했는데, 이 때부터 세계 최고의 레프트 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유난히 발이 큰 김연경은 박기주 감독의 신발을 빌려가 신곤 했다. 김연경과 박기주 감독은 운동화를 나눠 신는 매우 막역한 사이로, 호랑이 감독과도 땀 냄새 나는 신발을 나눠 신을 정도로 사회성 뛰어난 김연경의 능력치는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박기주 감독은 하나를 가리키면 열 개를 알아듣는 김연경을 가르치는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박기주 감독 역시 훈련 강도가 높고 엄격한 선수 관리로 정평이 난 감독이다. 기량보다는 인성과 젓가락질에서부터 인사법, 숙소생활, 생활자세에 이르기까지 깐깐한 선수 관리로 유명하다. 이러한 강도 높은 관리력 때문에 박기주 감독을 피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

 

박기주 감독이 이러한 선수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좋은 기량과 능력을 가지고도 프로에 진출하여 숙소생활과 인간관계에 실패하여 선수생활을 접는 제자들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선수들 간의 협력과 좋은 인성과 예의를 강조하는 잔소리쟁이 감독님의 가르침 덕분에 김연경의 좋은 품성과 리더십이 더욱 견고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컨대, 김연경은 초등학교 배구 전도사 이병설 감독 밑에서 배구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배우고, 중등 주니어 배구의 승부사 김동열 감독으로부터 착실한 기본기와 수비의 기초,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밑바닥을 다졌다. 그리고 고교계의 미다스의 손 박기주 감독으로부터 세밀한 고급 기술과 기본 덕성과 사회성을 다져가며 김연경 배구철학과 기본교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김연경의 본업 중심주의

배구 이외의 것에는 2등주의를 고집한다.”

 

최근 김연경은 MBC <나 혼자 산다>, JTBC <비정상 회담>,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지난 중국 프로리그 장쑤와의 플레이오프 전이 벌어지는 시기에는 잠깐 휴가를 얻어 동계 올림픽이 벌어지는 강원도 평창과 강릉에 방문하여 쇼트트랙을 관람하고 스노 발리볼 이벤트 경기를 치루기도 했다.

 

김연경 주변에는 장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2-3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휴가를 얻은 이런 김연경의 배구 외도에 김연경의 주의 집중력이 분산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팬들도 많았는데, 김연경의 평상시 소신을 들어보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후 결과도 증명한다. 김연경은 이후 상하이의 역전극을 이끌며 장쑤를 대파하고 결승에 오르게 된다.

 

김연경을 아는 사람은 김연경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알고 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프로 선수이며 프로 중의 프로이다. 김연경은 팬미팅이나 방송 활동 등으로 몸이 분주해질 때마다 잊지 않으려 항상 마음 속에 떠올리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본업인 배구이다. 그녀의 인생은 오직 배구에만 몰입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모두 여유있게 생각해왔다.

 

이것은 김연경 스스로가 진단하는 자신이 배구 선수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이다. 김연경은 자신의 책 <아직 끝이 아니다>에서 자신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간단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고 말한다.

 

김연경은 배구 외에는 잘하는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주변에서는 공으로 하는 운동에는 모두 소질이 있다고 하는데, 본인 입장에서는 배구 외에는 특기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오직 배구였다고 고백한다. 배구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해왔다 자부했다. 배구를 더 잘하기 위해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야 할 훈련과제들을 언제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왔고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거침없이 뛰어들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배구에서만큼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철저히 1등주의를 표방했다. 사실 배구로 볼 때 세계의 중심으로 나가기 위해 그녀는 가족과 조국도 뒤로 하고 배구의 기술 연마와 발전을 위해 여성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결혼과 연애도 뒤로 미룬 채 <나 혼자 산다>의 단골 게스트가 된 것이 아니던가?

 


김연경은 배구를 더 잘 하기 위해 배구 외의 영역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한발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절대 지지 않는 영역은 배구 하나만으로 한정했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주의력과 열정, 시간, 에너지의 집중과 분산의 효율적인 원칙이 오늘날의 김연경을 만든 것인지 모른다.

 

집중과 분산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법칙은 ‘8020법칙으로 알려진 파레토의 법칙이다. 경제 소득의 분포를 다루는 상위 20%가 전체 소득과 재산의 80%를 차지한다는 이 법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데, 미국의 유명 컨설턴트인 리처드 코치는 이 법칙을 개인의 성공 원칙과 기업의 성공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례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한 분야에서 성공하는 개인이 되려면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20%에 자신의 80% 자원을 쏟아 붓고 나머지 자원 20%80%의 비 핵심역량에 쓰라고 조언을 하고 있다.

 

김연경을 보면 그런 8020법칙을 누구보다 잘 활용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배구에 자신의 모든 80%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머지 80% 영역에는 20% 에너지로 적당하게 만족하는 삶의 방식을 살아온 것이다.

 

김연경은 고백한다. 배구를 해오면서도 배구 외적인 환경적인 많은 문제에 항상 봉착했어야 했다고. 그런 경기 외적인 문제들에도 똑같은 에너지를 사용했었다면 오늘날 김연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김연경에게도 적지 않은 사회 이슈성 문제들이 있었다. 팀 내에서 겪는 인간 갈등도 있었고, 이적 갈등의 문제도 심각했었으며, 무릎 부상과 재활 과정도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최근 중국 상하이 팀에서 활동할 때도 춥고 낡은 집의 문제와 걸핏하면 공사를 하는 이웃, 중국 언론들의 김연경 흠집내기와 깎아내리기, 세터 미양의 이해할 수 없는 공 분배와 부적절한 토스 문제, 중국 윗선의 외압 이것은 외국이라 이해한다고 해도 김연경을 감싸주어야 할 국내 여론 역시 김연경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민감한 샐러리캡 문제 때문에 반페미니즘 성향의 네티즌들에게 비난의 중심이 되기도 하는 등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김연경은 정규시즌 우승과 MVP를 수상했고, 중국 정부의 외압이 없었다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우승과 MVP를 수상했을 것이 유력했던 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자기 관리에 뛰어난 철의 여인인지 감탄을 마다할 수 없다.

 


김연경은 배구 외의 것들, 그 문제가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배구 경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면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그 문제를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단순화 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힘을 써왔다고 한다.

 

이것은 타이거 우즈와 마이클 조던을 비롯하여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을 갖춘, 자기 분야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각 분야의 최고 선수들은 시합을 뛸 때 오직 그 경기 승부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타이거 우즈는 게임에 임할 때 공을 때리는 일 이외에는 전혀 주의력을 사용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유명하다.

 

김연경이 경기에 임할 때가 그와 같다. 김연경이 초창기 프로리그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게 된 이유도 집중력과 관련이 있다. 김연경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경기에 들어가면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녀의 고도의 집중력 때문이다.

 

김연경은 경기가 끝난 후 반드시 비디오 분석을 통해 이전 자신의 플레이를 복기 하는데, 부상으로 통증이 있었던 경기의 장면과 몸 컨디션이 최고 상태에 있었던 날의 플레이 상황이 전혀 차이가 나지 않아 자기 자신도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12 런던 올림픽 4강에 올랐을 때 우리 국민들은 물론 대표팀을 출입하던 기자들도 김연경의 부상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당시 김연경은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심각한 무릎 부상과 복근이 찢어지는 근육부상 게다가 어깨 부상까지 3중고를 겪고 있었는데, 그녀의 경기력은 상대적으로 몸 컨디션이 나았던 예선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 김연경은 시합이 끝나면 숙소에서 누워 있다가 경기장에만 나오면 펄펄 날았다고 한다.

 

이런 심각한 부상 속에서도 메달권에서 제외된 국가 선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올림픽에서 MVP를 받을 정도의 놀라운 기량을 전 세계에 선보여준 김연경의 집중력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한민국 사람으로 가슴이 숙연해 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애국심의 발로인지 메달에 대한 집념인지 아니면 김연경표 승부욕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배구에 대한 열정하나만큼은 세계 제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연경의 관계성 우선의 원칙

배구는 6명이 하는 합주곡이다.”

 

김연경은 발이 넓고 오지랖이 넓은 선수이다. 김연경은 스포츠 선수이기 전에 인간적으로 사람들을 좋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나누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는 사교적인 성품을 지녔다.

 

김연경 주변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 모여든다. 김연경의 인스타그램엔 수많은 배구 월드클래스는 물론 남녀노소 국적을 떠나 수많은 인물들이 팔로워로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원탑의 최고등급 배구선수가 갖는 특권이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사람들을 좋아하는 김연경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김연경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MBC <나혼자 산다>를 보면 김연경은 마트에 가서도 일부러 시식코너를 돌며 시식대 앞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겨 하고, 중국인 보일러 수리공이 왔을 때도 운동선수 DC를 해달라며 한 마디라도 사람 사이에 정감이 오가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김사니 선수의 은퇴식을 준비하며 집에서 혼자 음식을 장만하며 툴툴 거리던 김연경이 절친 김수지와 만년 룸메이트 양효진, 아끼는 선배 한유미와 김사니가 집에 왔을 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시청자들은 김연경의 입이 귀에 걸리는 모습을 함께 목도 했을 것이다. 서른이 넘은 월드 클래스이고 세계적인 샐레브리티인데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있으면 꼭 여고생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 순수하고 풋풋한 모습이 팬들에게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반기며 좋아하는 이런 성격 때문에 김연경에겐 국적을 넘어 좋은 친구들이 많다. 페네르바체의 에다, 눗사라, 이젠 브라질로 이적한 나탈리아를 비롯 상하이의 마윤웬과 장레이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물론 필자는 중국인 친구들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마윤웬과 장레이가 비록 김연경에게 진심일지라도 이들을 미인계로 활용하는 권모술수의 달인 왕즈텅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중국 고위층의 배후가 있을테니 말이다.


 

김연경은 감독 코치 선수들 등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과만 친한 것이 아니다. 흥국생명 시절의 김연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와 식당 아주머니와도 매우 친했다고 한다. 버스운전기사는 김연경만 있으면 버스 안이 선수들의 즐거운 대화로 시끌벅적해 지는 것이 정말 사람 사는 곳 같았다고 회고하고 있고, 식당 아주머니는 자신에게 이모 이모 하면서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잘 먹던 김연경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한국이란 타지와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외국인 용병들에게도 김연경은 특별한 친구였다.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이 다른 외국인 선수에게 먼저 다가가 처음 말을 걸고 그들과 친구 관계를 맺는 것도 김연경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흥국생명 고 황현주 감독에 의하면 시즌 초반 화장실에 가보면 외국인 용병 선수가 배탈이 나서 훈련에 못나오곤 했는데 알고 보면 장난끼 많은 김연경이 매운 음식을 먹여 외국인 선수를 골려준 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김연경에 의한 호된 신고식을 치룬 외국인 선수는 덕분에 국내 선수들과 더 빨리 친해지고 서로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일찌감치 청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 최다 득점을 올린 푸에르토리코 국가대표 출신 카리나 오카시오는 2008년도에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에서 손을 맞췄었는데 당시 카리나는 김연경과 함께 흥국생명 우승의 주역이었다. 카리나는 김연경 덕분에 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연경은 용병으로 추운 나라에 온 카리나에게 가장 많이 말도 걸어주고 관심을 많이 가져준 선수였다. 카리나는 어려울 때 김연경과 대화를 나누면서 울기도 많이 했다고 전한다. 카리나는 김연경이 많이 보고 싶고 항상 같은 팀에서 언제든지 뛰고 싶은 선수라는 말을 남겼다.

 

2007년 흥국생명에서 함께 뛰었던 케이티 윌킨스도 팀 내에서 김연경을 가장 절친이라고 한 바 있는데, 25살의 윌킨스에 비해 6살이나 어렸던 19살 김연경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우린 친구가 맞다면서 월킨스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수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때 벌써 월킨스는 김연경에게 ! 식빵이란 말을 배웠다는 소문이?

 

김연경의 이런 사회성 넘치는 인간미와 활발한 상호 교감 능력은 어느 팀에서나 팀워크의 밀도를 높이고, 네트워크 확장의 효과를 가져왔다. 김연경이 들어가는 팀이 강해지는 것은 이러한 좋은 감정과 정보의 상호 간의 활발한 교류 증가 현상 때문이다. 김연경은 어느 팀에나 들어가 모든 개인들이 고립된 섬으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다리로 연결된 육지가 되게 만든다.


 

2017-2018 중국리그에서 상하이 팀이 김연경의 합류 이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한 팀워크를 구축하게 된 것도 김연경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김연경은 지난 2018112일 중국 동방체육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합류 3개월 차에 철저히 팀 속에 융화될 수 있었던 자신의 비결을 밝혔다. 김연경은 팀원과 하나가 되기 위해 우선 중국어를 배웠다. 그중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쨔요!’를 가장 먼저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팀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했다. 힘든 훈련 중에도 유머스러운 몸짓과 농담을 하여 분위기를 돋우고, 경기장 밖에서 팀원들의 생일을 찾아다니며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김연경은 자신이 하나의 스타의 위치에 머물기보단 경기장에서 가장 열정적인 선수, 모두를 앞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 좋은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선수로 남길 원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상하이에서 김연경은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용병으로 통했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과 터키에서도 그녀는 가장 성공적인 외국인 선수였다.)

 

일찍이 세계 최고 리그의 유명 감독들은 이러한 김연경의 리더십과 네트워크 능력을 높이 샀다. 바키프방크의 조반니 구데티와 전 페네르바체의 아본단자 감독은 김연경이 가진 능력 중 최고의 능력은 모든 선수들을 하나로 엮어 그들이 가진 능력치 이상의 실력을 달성하게 만드는 시너지의 극대화 능력이라고 보았다. 중국 국가대표 감독 랑핑 역시 김연경 있는 한국팀김연경 없는 한국팀을 서로 다른 팀으로 구분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김연경에게 있다고 말하며 김연경이 있으면 덩달아 모든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전폭적으로 향상되는 특유의 현상의 이면을 궁금해 했다.

 


 

김연경의 표현배구의 원칙

버라이어티한 세레모니와 우렁찬 파이팅으로 팀웍을 살린다!”

 

김연경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그렇게 게임을 할 때마다 환호성을 크게 지르는가?” “왜 비행기 타는 세레모니와 힙합 댄스를 추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래 밖으로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보다는 속으로 삼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유교문화권, 더구나 삼종지도를 덕으로 삼아온 여성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했던 문화라서 그런지 우리문화 속에는 아직도 여자 선수들의 힘찬 아우성과 파이팅에 관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러한 종래의 시각으로 볼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가 김연경이다.

 

여기에 대한 김연경의 대답을 들어보면, 이러한 표현이 단순히 감정상의 분출이 아니라 팀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임을 알 수 있다.


 

김연경은 배구가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팀웍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단체 경기임을 중시한다. 그리고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는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한다. 또한 배구는 각 포지션에 따라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좋은 팀은 강점을 가진 선수가 약점을 가진 선수의 단점을 보완해 주지만 나쁜 팀은 좋은 강점을 가진 선수들의 능력을 약점을 가진 선수가 사장시킨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배구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팀원끼리 얼마나 좋은 호흡을 맞추고 전체적으로 좋은 경기 흐름을 만드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한다.

 

김연경은 이러한 팀 전체에 활력을 주고 한 가지 목표에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큰 환호성과 세레모니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해 왔다고 한다. 괜히 포효하고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다. 한 경기에서 득점이 났을 때 득점을 한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기쁨을 나누면 팀 안에 긍정적 에너지가 한층 더 고양이 된다. 또 다른 선수가 다시 득점을 냈을 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쁨을 표출시키면, 아예 승리의 흐름을 우리 팀으로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코트 안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벤치에 앉아있는 코칭스태프들과 후보 선수들도 큰 파이팅을 통해 함성과 환호성을 질러주면 코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갖고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

 

이것은 김연경 스스로가 경험한 것이다. 5세트 2시간 30분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을 하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유니폼이 땀에 젖어 물에 젖은 수건처럼 부풀어 오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다리에 쥐가 나서 점프를 하기도 어려운 데, 이럴 때라도 주먹을 불끈 쥐고 동료들의 파이팅 소리를 듣거나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을 듣게 되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힘이 갑자기 솟구친다고 말한다. 갑자기 에너지 음료 몇 박스를 먹은 것 같은 힘이 불끈 솟아나 체력 만땅의 상황에서도 할 수 없던 고공 점프와 날카로운 스파이크를 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연경은 후보 선수로 벤치를 지키고 있을 때에도 언제나 열심히 자신의 팀을 응원했었다고 한다. 후배들이 경기를 뛰고 자신이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역시 후배들을 열심히 응원했었다. 다른 동료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냐고 했지만, 응원은 후배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팀 모두를 위한 것이었기에 비록 벤치에 있더라도 팀의 승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응원했었고, 그러한 응원가와 함성들이 주전 선수가 된 이 시점에선 코트 내로 옮겨왔을 뿐이라고 한다.

 

김연경은 팀내에 잠복한 치어리더와 같다. 거의 벤치에서 생활했던 중학교 배구부 시절 다른 선수들이 연습에 지쳐 숙소에 있을 때 김연경은 마이크를 잡고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부르거나 코믹한 춤을 추고, 연예인 모사하기와 감독과 코치 흉내내기로 분위기를 띄웠다고 한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동료들과 선후배를 웃겨주면 모든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가고 기분도 날아갈 듯 좋아졌다고 한다.

 

김연경의 박진감 넘치는 이런 표현배구는 김연경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세계의 배구 유망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대표팀의 세터 딩샤라고 할 수 있다. 딩샤는 위안신웨와 함께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한다. 그런데 이러한 딩샤 역시 표현배구를 중시하는 김연경을 롤모델로 열공하던 김연경 추종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김연경의 유니폼을 선물로 받고 딩샤는 매우 기뻐하며 인증샷을 찍는다.


 

남의 나라 선수이지만 위안신웨와 딩샤가 열정적으로 괴성을 지르며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매우 흥겹고 부러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빨리 저런 김연경의 후배들이 많이 나와 연경신과 함께 코트에서 춤을 추는 장면을 많이 보았으면 한다.



 

한편 김연경은 파이팅 넘치는 세레모니로도 유명하다. 세계 유명한 선수들은 저마다 독특한 세레머니가 있다. 가령 인간 탄환 100m 세계 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는 결승선에 1등으로 들어온 후 활 쏘는 세레모니를 취하고, 레알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골을 넣은 후 가슴에 바짝 힘을 준 후 두 팔을 밑으로 향하는 유명한 호우 세레모니를 보여준다. 최강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는 유니폼을 벗고 자신의 등번호를 상대팀 팬 앞에서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피파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행위임으로 여기서는 운동화에 입맞춤하는 골 세레모니를 사진에 첨부했다. 잉글랜드 에버튼에서 뛰고 있는 웨인 루니는 잔디 위로 미끌어지는 슬라이딩 골 세레모니로 유명하고,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안정환의 반지 세레모니는 스포츠를 감동의 정점으로 물들게 해주는 황홀한 세레모니 그 자체였다.


 

김연경은 여자배구 선수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세레모니를 보여주는 선수이다. 가장 많이 취하는 세레모니는 시금치 먹은 뽀빠이 팔뚝에 힘들어 가는 팔씨름 세레모니이고, 가끔은 복싱 세레모니와 무에타이 세레모니를 보여준다. 그러다 더 기분이 좋아지면 그야말로 배구 코트 위의 호날도가 된다. 그러나 김연경이 좋아하는 호날도의 호우 세레모니로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면 김연경은 완전히 대한독립 만세 세레모니를 펼쳐 체육관 안에 자신의 에너지를 대방출한다, 김연경 세레모니의 최고 정점은 비행기 세레모니로 배구 코트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며 우주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왕복선 세레모니를 펼쳐 보인다.

 

사실 배구코트는 실내경기라서 잔디 구장에서 펼쳐지는 축구의 화려한 골 세레모니 만큼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은 부족하다. 하지만 김연경은 풍부한 표정과 에너지 넘치는 즐거운 세레모니로 배구팬들의 배구 보는 즐거움을 증폭시켜 준다. 김연경이 뛰는 경기는 스토리가 있고 기승전결과 대단원의 절정감이 느껴진다. 마치 연극이나 드라마 한 편을 보는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김연경의 세레모니는 단순히 배구팬들에게 주는 시각적 즐거움과 연극적 효과, 그리고 스토리텔링 효과만 있는 걸까? 아니다. 김연경의 세레모니 역시 경기의 승부와 연관이 깊은 고도의 스포츠 전략이다.

 

심리학에는 파워 포즈 효과라는 것이 있다. 우리들은 흔히 마음먹기에 따라 몸 상태가 따라간다고 흔히 알고 있는데,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에이미 커디(Amy Cuddy) 교수는 그러한 사회적 통념과 반대로 몸이 가는데 마음이 따라간다는 보디랭귀지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한다는 파워 포즈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무력한 기분이 들 때, 주먹을 불끈 쥐고 이 까짓것!’하고 기합을 주어 근육을 단련하면 의지력과 정신력도 덤으로 강해진다고 한다. 특히 가슴을 쫙 펴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당당한 자세 즉 파워 포즈를 취하면 실제로 그 사람의 힘과 능력치가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고개를 떨구고 가슴을 오므리고 팔을 밑으로 축 늘어뜨리는 로우 포즈를 취하면 실제 그 사람이 가진 힘과 능력치는 떨어지고 만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신이 취하는 자세에 따라 체내 호르몬 구성이 달라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힘 있는 사람은 몸에 테스토스테론이 많고, 코티졸은 적은데, 약한 사람은 반대로 코티졸이 많고 테스토스테론이 적다. 그런데 파워 포즈를 취하게 되면 체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져 힘과 공격성이 상승되어 승부욕이 솟구친다, 반대로 로우 포즈를 취하게 되면 반대로 체내 코티졸 수치가 높아져 불안감과 두려움이 상승되고 자신감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에이미 커디 교수는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만세 포즈로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다리도 최대한 옆으로 벌리는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을 키고 웅크린 채 턱을 괴는 자세를 취하게 하였다. 각각의 자세를 2분 동안 취하게 한 후 참가자들의 타액을 체취해 호르몬 구성을 분석해 본 결과, 파워 포즈를 취한 사람은 평균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20% 증가하고 코티졸이 25%나 감소한 반면, 로우 포즈를 취한 사람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0% 감소하고 코티졸이 15%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활용해 본다면,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파워 포즈를 취했을 때 일반팀보다 호르몬 구성상 45% 이상 더 높은 능력치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패배감에 젖어 로우 포즈를 취하게 되면 일반팀에 비해 25% 이상 능력치가 하락한다. 그리고 파워포즈를 취한 팀은 로우 포즈를 취한 팀보다 60% 이상 더 강력한 호르몬 구성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김연경의 강력하고 화려한 세레모니와 우렁찬 함성은 단순한 게임의 효과음이 아니라 개인은 물론 팀 전력의 획기적인 상승을 가져오는 강력한 심리적 무기임을 알 수 있다.

 

 

김연경의 건강한 자기애의 원칙

나를 사랑하는 만큼 인생은 풍요롭다.”

 

스포츠 선수 중 김연경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우 넓고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선수도 없다. 배구를 사랑하는 배구팬들 사이에선 역사에 남을 만한 그 높은 기량과 그녀의 독보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완성형 레프트 욍 포지션에 대한 감탄사로 배구의 신 연경신을 숭배하는 그룹들이 있다.

 

샐러브리티로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터키리그에서 경기장이 떠나갈 듯 포효하는 화려한 세레머니에 감동한 월드클래스 스타 김연경을 흠모하는 그룹들이다.



한편 김연경은 여자 프로배구 샐러리캡 문제나 국가대표 엔트리를 채우지 못하는 배구협회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는 잔다르크 총대녀의 모습으로 패미니스트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어찌보면 성공한 남성 모델이 아닌 여성의 이상적인 성공 모델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김연경이란 월드 클래스의 등장은 패미니스트는 물론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그렇다고 김연경이 여자에게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군가산점도 없고 자신의 프로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대표 활동에 앞장서는 그녀의 우국충정에 반하여 그녀의 애국활동을 열렬히 지지하는 보수주의자 남성팬들도 많다. 된장녀, 김치녀 추방과 진정한 양성평등을 외치는 우익 청년들에게도 김연경은 남녀를 떠나 존경받는 선수이다.

 

정말 우리나라 일부 남자선수들, 김연경 선수를 보고 배워야할 선수들이 많다. 군면제가 달려 있는 경기에는 죽어라 참여하면서 군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국가대표 소집에 무관심한 남자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최근 그녀를 좋아하게 된 많은 팬들은 배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배알못들이다. MBC <나혼자 산다>에 등장한 김연경의 거침없는 자기애와 자기합리화, 주변 동료들과 가족들 간에 이루어지는 개그본능을 자극하는 대화들을 보고 인간 김연경의 매력에 한껏 반한 사람들이 나중에 배구에 입문하고서 선수로서 김연경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 경우들이 많다.

 

김연경은 지난 2016 리우올림픽 한일전를 치루는 중 스파이크 실수를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우연히 내뱉은 , 식빵이란 말로 한순간에 식빵녀로 등극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범했다면 인성 논란이 벌어질 만한 사건으로 월드클래스가 내뱉은 말치곤 국어순화에 도움이 안 되는 말인데도 불구,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김연경은 대중들에게 더 친숙한 이미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예의차림의 대명사 샐래브리티 내숭녀가 아닌 시원스런 입담의 소유자 김연경의 솔직함에 더 반했던 것이다.


 

김연경은 건강한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로 알려져 있다. 김연경은 자존감과 자기 긍정성, 자기사랑이 충만한 자기합리화의 대가다. 김연경이 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공개한 자신의 집에는 여기 저기 김연경 본인의 대형 사진들이 벽에 가득 붙어있고, 방 하나는 배구를 하며 받은 각종 트로피와 메달들이 곱게 모셔져 있다. 그녀는 방 하나를 오로지 개인박물관 겸 명예의 전당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김연경은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 일단 그 방에 먼저 들르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다음부터 김연경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나? 방송에서도 김연경은 그 박물관을 청소하며 내가 봐도 뿌듯하다. 대단하다 김연경이라고 스스로 칭찬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나혼자 산다> 병원 방문편을 보면 김연경의 출중한 자기애 시리즈를 볼 수 있다. 복근 부상과 대상포진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들러 보통 선수 같으면 걱정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할 텐데, 의사가 한 예쁘다는 인사말에 실제로 보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재활치료사 앞에서 재활 스트레칭 자세로 요염한 자세를 취하게 되자 속옷광고 들어오겠는데?”라고 말하는 등 자기애 한가득한 유머스런 대화로 시종일관 웃음꽃이 만발하게 만들었다.

 

김연경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삶의 태도는 김연경이 이 시대 여성들에게 걸 크러쉬의 대명사가된 이유이다..



 

김연경은 프로 데뷔 이전에도 모델 변정수나 가수 비, 살인미소 김재원과 닮았다는 이유로 스포츠신문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김연경의 개성 넘치는 외모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걸 크러쉬에 대한 김연경의 생각은 어떠할까? 김연경은 자신의 책 <아직 끝이 아니다><여성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외모와 패션 감각, 센스와 지성미를 갖추고 사회적 성공을 이룬 일반 여성들의 모델로서의 걸 크러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연경은 팬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배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김연경은 운동선수의 실력보다 외모와 패션 등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2007-2008년 김연경이 갓 스물 나이에 흥국생명 루키로 활약하던 시절, 당시 흥국생명은 핑크 스파이더라는 별칭으로 미녀군단으로 통했다. 황연주, 이영주, 전민정, 김연경, 한송이, 구기란, 진혜지 등 지금 봐도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이 중 황연주, 이영주, 전민정이 특히 미녀 3인방으로 어딜가나 화제를 몰고 다녔다. 진혜지는 모델급 외모로 당시 남자배구 최고 인기 스타 김세진과의 염분설을 뿌리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연경 역시도 개성 넘치고 엣지 있는 행동으로 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스포츠신문은 물론 일반 신문에서도 배구 경기력보다는 미녀 3인방과의 데이트와 같은 연예 기사가 특종을 이뤘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 김연경은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문제에 대해 한 기자에게 따졌다고 한다. 밑의 대화는 김연경의 에세이 <아직 끝이 아니다>에 나온 김연경의 직접적인 말이다. 스무 살 루키 선수의 인터뷰 내용치곤 매우 당차고 똑소리가 나지 않는가?

 

기자분들이 선수의 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여자 배구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부분 미녀 군단’ ‘미녀 3인방’ ‘미녀들의 대결미녀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남자 배구에선 미남 대결이란 말이 없잖아요. 왜 여자 배구만 유독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는 거죠? 선수들 모두 먼저 배구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김연경은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배구가 얼굴로 하는 운동이 아니란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유니폼이나 외모가 배구의 인기에 부분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그러한 점이 배구의 실력과 본격적인 경기의 묘미 이상의 인기 요소가 된다면 오히려 배구 종목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배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객관적 평가가 지켜지지 않는 스포츠 비평 문화는 결국 스포츠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김연경의 자기애는 실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배구를 꼭 잘했기 때문에 그녀가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해온 것은 아니다.

 

김연경은 키가 작아 후보 선수로 벤치생활을 했을 때도 여전히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쾌활하며 명랑했다. 주전 선수들을 곯려주고 장난을 많이 쳤고, 후배 앞에선 선배 역할을 제대로 했고, 아무리 선배라도 배구에 대해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지적을 했었다고 한다.

 

집단 따돌림 문화가 있는 일본의 JT마블러스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일본 선수들의 텃새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유럽 최고 리그인 터키 리그에 진출하여 관록의 로건 톰과 소콜로바, 파비아나, 나즈 등 쟁쟁한 최고의 선수들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김연경은 언제나 자신이 그 위치에 있는 이유를 찾았고, 그 위치에서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자신이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남 앞에 전혀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무적의 자존감 김연경의 자기애가 나르시즘적 병적 현상은 아닐까 의심을 하곤 한다. 그러나 김연경의 자기애는 건강한 성품의 일부분이다.

 

만약 병적 나르시즘의 일종이었다면, 험난한 사춘기 어둠의 터널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며, 다양한 개성을 가진 선수들과 환상의 호흡을 맞출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기애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는 크게 두 가지이다. 잘못된 병적 나르시즘은 자신만 돋보여야 하며 다른 이들은 자신의 부속품으로서 일종의 도구로 생각한다. 또한 자신은 존경과 사랑만 받아야 하며, 무시당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김연경은 팀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배구 외적인 부분에서는 거의 양보를 미덕으로 하며, 선수 생활 동안 꾸준히 당해온 후보 선수로서의 차별과 동양인으로서의 차별 등을 실력으로 극복해 왔다.

 

이와 같은 김연경의 자기애는 김연경의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김연경은 배구선수로선 아주 힘든 유소년기와 주니어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김연경은 어떻게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 또 김연경의 자존감과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배구 여제, 왕관의 무게를 견딘 자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규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에 의하면 자존감이란 두 가지 믿음이라고 한다. 첫째, 자신이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기본적인 도전들에 대해 자신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과, 둘째로 자신에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자기효능감과 자기존중이란 말로 바꿔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존감이 높으면 오만하거나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별종과 같다는 것은 자존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너새니얼 브랜든에 의하면 너무 높은 자존감이란 없으며, 모든 문제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라고 했다. 진정으로 높은 자존감을 가진 인물은 자신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남들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너새니얼 브랜든은 그의 책 <자존감의 여섯 기둥>이란 두꺼운 책을 통해 자존감 역시 우리가 훈련으로 키울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며 다음의 6가지 신념 체계를 수행하는 것을 통해 자존감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너새니얼 브랜든이 강조한 신념체계 6가지가 김연경의 평소 가치관과 매우 비슷해서 놀란 바 있다. 아마 김연경의 인생역정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았던 팬들이라면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6가지란 무엇일까?

 

첫째, ‘삶을 의식하며 살기이다. 삶에 문제가 닥쳤을 때 대충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삶의 방관자로 사는 사람은 삶을 회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현실의 삶을 의식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삶을 살아간다.

 

김연경은 어떤 사람인가? 배구를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그야말로 하루를 살아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둘째, ‘있는 그대로의 자기 수용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장점은 물론 단점과 문제점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가감 없이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

 

김연경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잘 받아들인다. 중학생 시절 작은 키 때문에 수비수가 되는 것을 수용했고, 프로데뷔 후 3년 연속 무릎 수술을 받고 긴 재활훈련을 해야 할 때도 그 현실을 잘 받아들였다. 김연경은 높은 이상을 갖고 있었지만 언제나 현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출발했다.

 

셋째, ‘자기 책임 의무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부모탓 세상탓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김연경은 키가 작아 벤치에 머물렀던 후보 선수 시절, 키가 작은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보다 키가 작아도 할 수 있는 수비수로 전향했고, 뛰어난 수비수가 될 수 있도록 독자적인 리시브 훈련을 수행했다.


 

넷째, ‘자기 주장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의 생각, 확신, 감정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알며, 나의 가치관과 기분을 스스로 존중할 줄 안다.

 

김연경은 페네르바체로 이적한 첫 해에, 팀 동료들로부터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동양인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동료들은 모두 월드클래스로 김연경의 위치와 비교가 되지 않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김연경의 외국어 실력은 너무 짧아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피력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김연경은 억울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때마다 자신의 입장을 철저히 서투른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표현했다. 그러한 김연경의 적극적이고 당당한 행동은 결국 동료들의 입장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다섯째, ‘목적에 집중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선장이다. 자기가 가야할 곳과 머물러야 할 곳을 알고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설정과 실행을 할 줄 안다.

 

김연경은 늘 자신이 지향해야할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아왔다. 주니어 시절에는 주전 선수를 꿈꿨고, 고교 시절엔 프로선수를 꿈꿨으며, 국가 대표가 되는 꿈을 꿨고, 해외로 진출하여 대한민국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유명한 선수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리고 팀을 우승시키는 선수가 되는 것을 꿈꿨고, 지금은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삼고 있다. 김연경은 오늘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여섯째, ‘자아 통합이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내가 한 약속을 지킨다. 또한 공명정대해서 도덕적 일관성을 지킨다. 타인에게 요구한 기준을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며 스스로의 기준에 떳떳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김연경은 어린 시절 엄마와 새끼 손가락으로 약속한 결코 배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결국 지켜냈다. 김연경은 약속과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수이다. 때로는 말이 너무 앞서가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지만 김연경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낸다. 김연경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선수이다.

 

이상을 통해 보면 김연경이 왜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심이 강할 수 밖에 없는 지 그녀의 강철 멘탈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김연경의 코믹과 유머의 원칙

크게 웃은 만큼 시원해지고, 함께 웃은 만큼 가까워진다.”

 

김연경과 김연아는 세계적인 월드클래스이다. 그야말로 배알못이나 듣보잡들도 김연경이 누구인지, 피겨에 대해 생판 모르는 아프리카 아이들도 김연아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물론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코리안 디스카운트로 그 실력에 비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면이 있지만 김연아와 김연경은 축구의 리오넬 메시나 농구의 마이클 조단 급의 레전드이다.

 

그런데 김연아와 김연경의 대중들과의 소통 방식은 많이 달랐다. 김연아는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지 않고 갈라쇼나 대중광고를 통해 대중들과 주로 소통을 해왔다면, 김연경은 주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해 왔다.

 

사실상 김연아와 김연경 급의 선수에게 TV 예능 프로그램은 위험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말 한마디 잘못에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고 광고주들이 떨어져 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각 영역의 최고 자리에 있는 스타들은 막 개봉되는 영화 드라마 홍보나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연아는 은반 위에서 그동안 자신이 구축했던 세련되고 아름다우면서도 귀여운 그 이미지를 잘 유지해온 선수이다.

 

반면에 김연경의 방송활동과 그 행보는 파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배구 코트에서와 방송 출연에서의 모습이 너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배구 코트에서는 그 높은 기량과 환상적인 백어택, 묘기 수준의 리시브와 디그 실력으로 대중들에게 존경과 경외감의 대상으로 그야말로 연경신을 보여준다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털털하다 못해 탈탈한 옆집 사는 재미있는 누나 같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를 애잔한 나이임에도 구르는 낙엽만 보고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여고생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장난끼 많은 누님 같은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김연아가 대중들과의 적당한 거리 유지를 통해 은퇴 이후에도 신화적 존재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면, 김연경은 MBC <나 혼자 산다> 등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대중들과의 장벽을 모두 제거함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스타로 거듭났다.

 

아마 동서양을 불문하고 김연경처럼 대중들과 거리감 없이 친근한 관계를 형성한 월드클래스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월드클래스이지만 누구나 그녀를 거리감 있는 신격화된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대중적인 친숙함의 근저에는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즐겨 참여한 김연경의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김연경은 프로팀과 대표팀 선수로서 바쁜 일정 사이사이에 예능활동을 위해 깜짝 방송 출연을 해왔다.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김연경은 단골 게스트로서 등장하여 월드클래스의 터키생활과 상하이 생활의 민낯과 한국 국가대표 배구선수들과의 동료애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나 혼자 산다>의 시청률 상승의 일등공신으로 등극하여 이젠 김연경과 <나혼산>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찰예능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최근 KBS2 <안녕하세요>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세 아들과 넷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 아내가 새벽까지 식당일을 하고 있는 사연을 접하고 시청자들과 함께 분노를 삭히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런던 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2012년도 <개그콘서트> ‘불편한 진실코너에 동료 한송이와 함께 특별 출연하여 키 큰 여자들을 모독하던 황현희에게 키 굴욕을 선사하는 시원스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SBS <강심장>에 출연하여 엠블렉 이준의 엉덩이에 스파이크 곤장을 때리기도 했다. 2015<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4대 최강자전에선 현주엽, 송종국, 홍진호, 신수지와 함께 출연하여 파트너인 유재석과 함께 우승을 차지 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의 섭외 요청을 받았던 김연경은 MBC <무한도전> 릴레이툰 결과 발표를 위해 깜짝 출연하여 걸크러쉬와 식빵, 학창시절 별명인 보거스 등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었고, 이어진 KBS2 <언니들의 슬랭덩크> 22회에 특별 꿈계주로 출연해 라미란, 홍진경, 김숙, 제시, 민효린 등과 함께 김연경과 언니쓰를 결성하여 뒤늦은 나이에 래퍼로서 힙합에 도전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작년 JTBC <비정상회담> 151회에 출연해서는 러시아 미인대회 출신 알리사 만요노크가 배구하는 인형이란 애칭을 갖고 있고 인기에 편승해 실제 인형으로 제작되었다며 열변을 토하는 러시아측 대표 말을 듣고 MC 유세윤이 이 선수에 대해 아냐고 묻자 금시초문 운동은 잘 못하나 본데요?”라고 답하여 방송에 참여했던 패널들을 뒤집어 지게 만들기도 했다.

 



김연경은 거침없는 왕입담과, 센 언니들을 제압하는 진짜 센 언니로도 유명한데,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카리스마 한혜진을 눈빛 포스 하나만으로 제압하고,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독보적인 센 언니 캐릭터 제시를 디스 한방에 보내버리는 막강한 스파이크 언어술사로 예능계의 센 언니 세계를 평정하며 센 언니 월드의 지존 자리에 올랐다. 센 언니 세계에서도 월드 챔피언 MVP를 먹은 듯.

 

센 언니와 걸 크러쉬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현 시대는 오랜 경제불황에서 오는 여성들의 위기 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다. 예전의 여성은 살림만 잘하고 아이만 잘 돌보면 됐었지만 지금의 여성은 전자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탁월한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여성들의 생존에 남성들의 지지와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던 근대 이전 사회만 해도 여성들은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인 순종과 침묵의 여성상이 되어야 했다. 그 시대에 여성들의 자기실현은 불가능했다. 내조하던 남편의 직업적 승진과 치맛바람으로 명문대를 보낸 자식들을 통한 대리 만족으로 삶의 행복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들의 금단의 영역이었던 입법 사법 행정부는 물론 각 기업체 임원과 육군 사관학교도 여성에게 활짝 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만큼 삶은 더 치열해졌고, 여성의 삶은 힘겨워졌다. 그 자리에 오르고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반 남성보다 강력한 근성과 직업적 능력이 필수적이다. 알파걸적 프로 능력은 물론 직장 남성 부하들을 강력하게 통솔할 리더십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제 여성에겐 현모양처 이미지가 삶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양성평등한 사회에서 실력과 리더십으로 360도 동등한 평가에도 인정받을 수 있고, SNS에서 쉴 새 없이 설쳐대는 악플러들과 어그로들의 방해공작에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여성들의 본보기가 될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란 척박한 땅에 태어나 아시아인으로서 배구의 메이저리그라 할 수 있는 터키와 유럽을 평정하고 일본의 이지메와 유럽의 인종차별을 뛰어넘고 배구가 가진 기술적 능력을 최상으로 달성하여 전 세계 원탑으로 한 세상을 주도하는 프로 중의 프로인 김연경의 걸 크러쉬는 여성들이 지금껏 가장 보고 싶어 했고 선망해 마지않는 걸 크러쉬의 모본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김연경이 쑥 크러쉬라 불리는 가모장적 김숙과 문화계에 큰 파장을 가져온 반물질적 친자연주의의 이효리, 육감적인 여성미를 가지고 최상의 자리에 오른 포미닛 현아와 40대가 넘은 나이에도 남성들을 긴장시키는 여전한 몸으로 왕성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김혜수의 걸 크러쉬와 다른 점은, 다른 이들이 여성 공화국의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켜 주는 여성 전사 이미지가 강하다고 할 때, 김연경은 남녀를 떠나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높은 프로 직업의식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 또한 남자들도 할 수 없는 도전적인 해외 진출과 차별 속에서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강력한 헤비멘탈을 가진 인물로 이미 김연경은 걸 크러쉬를 초월한 인물이란 점이다. 김연경 신드롬과 김연경 팬덤 현상을 그저 걸 크러쉬 현상에 한정지어 보는 것은 그래서 매우 위험하다.

 

자 그렇다면, 최근 방송예능 활동에서 보여준 김연경의 개그 본능과 쇼맨십은 언제부터 시작된 능력일까? 또 그것이 배구선수로서의 성공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김연경은 합숙생활을 하던 학창시절부터 배구부 내의 오락부장겸 개그맨으로 통했다. 팀 동료와 선후배들이 호랑이 감독 선생님의 혹독한 훈련으로 기진맥진하고 원성이 자자할 때 김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숟가락을 손에 들고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돋웠고, 2부 순서로 자신을 괴롭히던 감독과 코치의 표정과 자세, 말버릇을 흉내 내며 개인기를 뽐냈다.


 

동료들과 선후배들은 이런 김연경의 능청스런 모습을 보고 배꼽이 빠지게 웃다보면 그날 있었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아가고 감독님에 대한 원망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신나게 놀고 큰 소리로 한바탕 웃고 나면 선수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더 한층 가까워졌다.

 

김연경은 이처럼 다른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면서 자신의 스트레스와 피로 역시 풀어갈 수 있었다.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즐겨 읽는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주면서 자신 속에 있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키가 자라지 않는 단신 후보선수로 누구보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감독에 대한 원망이 많았던 김연경이지만 친구들과 감독 선생님을 웃기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연경은 덕분에 자신의 감정의 응어리들도 상처로 남지 않게 풀어갈 수 있었다.

 

웃음 연구가로 유명한 마틴 그로단은 <웃음을 넘어서>라는 책을 통해, ‘유머 감각을 지닌다는 것은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이해하는 인격을 의미한다고 했다. 웃음은 단순히 감각적 쾌락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 과정의 산물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행복감이란 것은 고통과 번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과 번민을 초월하여 경험하는 고차원적인 충족감으로서 웃음은 그 순간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유머가 풍부한 사람은 삶의 고통과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찰리 채플린이 초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삶을 코미디로 승화시켰던 것이나 조선 시대 양반 계급에 핍박받던 노비들이 봉산탈춤을 만들어 그 시대를 풍자했던 것처럼 개그본성과 유머를 가진 사람들은 인생의 부조리와 비극성을 희극으로 만들어 내는 감정의 연금술사인 것이다.

 

김연경의 삶의 일대기를 보면 고통과 고난이 많은 삶이었지만 김연경은 언제나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식빵 언니는 울지 않는다KBSN 댜큐의 제목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캔디의 주제가처럼 김연경은 배구 코트의 식빵언니와 영원한 캔디로서 21세기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액션히어로가 되었다.

 


 

김연경의 못된 손 스킨십 커뮤니케이션

 

김연경은 장난끼가 많고 스킨십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김연경이 여자였으니 망정이지 남자 선수였으면 오해도 많이 받았을 만큼 다양한 스킨십을 구사하는 선수이다. 특히 김연경의 손은 배구를 할 때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언어를 초월하는 동료애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된다.

 

김연경이 경기 중간마다 동료들이 공격에 성공을 하면 머리를 톡톡 두들겨 주거나 수비 때마다 센터 뒤로 가서 어깨를 툭툭 쳐주는 것을 팬들은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재영과 양효진이 주로 스킨십의 대상인데 이것은 착한 손 스킨십이고 김연경의 짖궂은 장난끼를 담은 못된 손 스킨십은 다음과 같다.


 

올해 중국 올스타전에서, 남방 대표로 선출된 김연경은 귀여운 용모로 국내팬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장쑤 소속 궁샹위의 엉덩이를 살짝 꼬집는 장면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MBC 예능 <나혼자 산다> 터키편에서는 페네르바체 체육관에 방문해 평소 친했던 스태프의 턱수염을 잡아당기는 화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김연경의 장난은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일본 국가대표 전설의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의 턱을 몰래 만지거나 브라질 국가대표감독 호세 로베르토 구이마라에스의 배를 쓰다듬거나 페네르바체 단장의 배를 만지기도 할 정도로 김연경의 손장난은 거침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동료들과는 주로 주먹다툼을 벌이는 장면도 많이 연출한다. 주로 UFC 파이터들이 경기 전날 기자단 앞에서 보이는 쇼맨쉽이다. 팬들은 김연경이 페네르바체 시절 눗사라와 상하이 시절 장이찬과 서로 주먹을 크로스 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김연경의 장난은 약간은 유치해 보이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선수들이 서로의 친밀감을 확인하는 요긴한 수단이자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한 때 페네르바체에서 뛰었고 현재 출산 문제로 선수생활을 중단한 터키 국가대표 세터 나즈 아이데미르는 페네르바체 시절 김연경은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를 갖고 있었다며 김연경의 장난에 흔들리면 안된다는 충고를 한 바 있다.

 

한국 대표팀에서 김연경 다음으로 가장 장난기가 많은 존잘 김희진은 대표팀 최고 미남으로 통한다. 김연경은 한때 김희진을 엄청난 미남으로 보고 말을 붙여볼 생각까지 했었다고 하는데, 김희진은 201611월 한국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김연경이 주장이 된 후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김연경이 실력과 강한 멘탈과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 뿐만 아니라 평소엔 장난을 치며 후배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개그도 많이 하는 따뜻한 선배라고 말한다.

 

김연경은 나이 많고 연차가 높은 선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배 말을 하늘 같이 따르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모범이 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을 보이고 따뜻한 스킨십과 재미있는 개그로 후배들을 웃겨줄 수 있는 선배라야 신세대 후배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후배들의 김연경에 대한 평가는 무서울 때는 굉장히 무섭고, 재미있고 편할 때는 친구 같이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진 카리스마 쩌는 선배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능력이 코트에서 하나 된 팀웍을 형성하고 강한 결속력의 근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사회체육학회지에 발표된 엄대영의 <스포츠조직에서 멘토의 유머감각이 멘토링기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논문을 보면, 국가대표팀이나 프로팀과 같은 엘리트 스포츠 조직과 배구협회와 같은 스포츠행정 조직은 물론 취미로 운동을 하는 동호인 집단 할 것 없이 스포츠를 하는 모임에서 팀의 리더인 멘토가 유머를 즐기고 유머를 긍정적으로 표현할 줄 알 때 조직 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보다 유연한 분위기속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고 원만한 인간관계로 개인과 조직의 역량과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얻게 된다고 한다.

 

즉 스포츠 팀에 유머 감각이 뛰어난 리더가 있을 때 그 조직은 조직내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덜어낼 수 있으며 쓸데없는 긴장감과 딱딱하고 지루한 분위기를 부드럽고 쾌활한 분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리더의 유머감각은 스포츠 조직의 성과도 높여준다고 한다. 팀원들의 사기와 실력을 신장 시키고, 소속감과 결속감을 강화시켜주며, 새로운 신기술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하여 팀원들의 재능과 조직 역량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김연경의 유머의 유효성은 중국 상하이팀의 성과로도 검증된 바 있다. 상하이 맏언니 장레이는 김연경이 팀에 온 후부터 따분하고 지루하던 연습시간이 즐거워졌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김연경의 카리스마와 유머라는 당근과 채찍 리더십은 단체 체벌과 권위적 통제로 스포츠 조직을 이끌고 있는 온니 채찍형 한국 스포츠 리더십에 하나의 대안적 모델을 제공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리더십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팀에도 김연경처럼 유머가 풍부한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운동선수의 직무 만족도는 물론 그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꽃을 선물한 사람의 손에는 꽃향기가 남고, 다른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요리사는 가장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듯이,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선사하는 김연경은 지금 그의 동료들과 팬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하루하루를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김연경의 청결과 정리의 원칙

장롱 안의 옷도 각을 잡아라.”

 

반전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깔끔하고 청초해 보여 이슬만 먹고 살아갈 것 같은 여인이 알고보니 어지럽히기 대장이나 잡동사니 수집광이었을 경우에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와는 반대로 털털하고 대충 살 것 같은 여인이 알고 보니 정리의 화신이며 청소의 달인일 때 의외의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보았던 가장 지저분한 여자 주인공은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왔던 우에노 주리가 연기한 노다 메구미였다. 상큼한 외모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메구미의 집은 그 반듯한 외모와 아름다운 선율과는 반대로 그야말로 쓰레기 더미가 한가득했다.

 

탤런트 이수경과 한은정은 독특한 의미에서 귀여운 더티스트였다. MBC <나혼자 산다>SBS <일요일이 좋다-맨발의 친구들>에서 선보였던 이수경과 한은정의 집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이수경과 한은정은 깨끗하고 단정한 외모로 누구보다 도시적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수경은 아파트를 원룸식으로 사용하는 건어물녀 생존 라이프를 선보여 팬들을 웃음짓게 했다. 방을 포기하고 거실에 침대를 놓고 모든 것을 침대 위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합리적 더티스트였다. 외출을 할 때도 머리 앞만 샴푸를 해주는 절약정신도 뛰어나 운동량과 동선, 소비량을 최소화하는 합리주의적 귀차니스트적 삶을 표방하는 애교쟁이였다.

 

반면 엘레강스 한은정은 집의 가구와 벽, 바닥은 외모처럼 우아하고 깨끗하게 정리했고, 넓은 집안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서랍을 열자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가방과 종이 더미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어 누구보다 세련된 싱글리스트 한은정의 집에 큰 기대를 갖고 있던 강호동과 그 일행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반면에 <무한도전>에서 가장 안 씻을 것 같은 남자순위에서 1위에 등극했던 노홍철은 오히려 깔끔하고 단정한 정리벽이 심한 남자로 알려져 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집 내부의 가구와 인테리어가 하나의 톤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냉장고 안의 음료수까지 열을 맞춰 집어넣는 치밀한 정리벽을 자랑했다.

 


그런데 큰 키와 털털하고 시원스런 성격으로 깔끔함과는 좀 거리가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김연경이 소문난 정리벽으로 스포츠계의 정리여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마 많은 팬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다.

 

MBC <나 혼자 산다> 터키편과 한국 귀국편, 상하이편을 보면 공통적으로 김연경의 집이 매우 심플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키에 연봉퀸이지만 머무는 공간은 미니멀리즘의 공간이었다. 여행과 합숙, 이국생활, 원정경기 등으로 수없이 짐을 싸야하는 잡노마드족인 김연경의 집에는 최소한의 가구와 최초한의 집기만이 존재했다.


 

김연경의 정리스타일은 직속직빵이었다. 김연경은 몸이 피곤해도 정리를 뒤로 미루지 않는다. 어디서든지 돌아온 즉시 트렁크를 열고 정리를 시작한다. 모든 것을 제 자리에 놓고 옷도 장롱과 옷장에 넣을 때 반드시 각을 잡는다.

 

TV를 보다가 액정이 1도라도 조금이라도 기울어져 있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한다. 장식장과 트로피 위에 상륙한 먼지는 제거해야 할 1순위 테러리스트이다.

 

정리여제는 청결여제이기도 했다. 세수를 하면 바로 세면대의 물기를 제거하고 물티슈를 활용해 서랍 위 먼지를 완벽하게 제거하여 한 순간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는 철벽수비를 보여주었다.

 

혼자 하는 식사라 해도 김연경은 식탁 위에 접시를 놓을 때 최대한 디스플레이를 고려한다. 직접 차린 음식들은 정교한 음식 코디네이터인 김연경의 디자인에 따라 질서 있게 배열된다.

 

김연경의 정리벽은 어릴 때 더 심했다고 한다. 주변 정리가 잘 돼야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성격 때문에 더 정리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흥국생명 센터 김나희에 의하면 김연경은 흥국생명 시절 코트에서는 남성적인 면이 있었지만 평소 성격은 깔끔하고 세심하여 특히 방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과자나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곧바로 치워야 할 정도로 깔끔했다. 그리고 옷장 속의 옷도 다 각을 잡아서 다 개어놓고 정리하는 스타일이라 룸메이트가 나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김연경은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는 선수가 배구도 잘한다는 정리의 배구철학을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월드클래스가 된 비결이 그녀의 정리습관 덕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리정돈과 배구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일단 정리정돈과 배구의 공통점은 둘 다 공간을 활용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리정돈과 배구는 둘 다 순간의 결정, 결단력이 필요한 작업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정리정돈이 매 순간 이것을 버릴 것인가, 남길 것인가?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 하는 순간 판단에 따라 물건을 재배열 하듯, 배구 선수 역시 이 공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쪽으로 공을 보낼 것인가 저 쪽으로 공을 보낼 것인가? 순간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실,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들은 현재 꼭 필요한 물건을 제외한 물건을 잘 버리는 사람들이다. 끊고 맺음이 분명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잘 제거하는 사람들이다.

 

배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축구나 농구는 드리볼 과정이 있지만, 배구는 순간적인 공과의 터치만이 존재한다. 한 순간에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강타로 때릴 것인가? 연타로 넘길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배구에만 몰입하기 위해 정리정돈과 청결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제 때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두고두고 우리의 앞길에 장애가 되듯이,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은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우리들이 한 가지 일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주의력을 분산시킨다. 일단 제 때 정리하지 못한 일들은 미완성 과업으로 우리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면 출근한 후에 혹시 가스 불을 제대로 끄고 나왔는지 혹은 보일러를 가동시키고 나오지 않았는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나온 것은 아닌지 영 찜찜했던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집안일이 걱정이 되어 본업에 충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리정돈이 안된 어수선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수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잠재의식 속에 수많은 사물들이 하는 요구들을 듣고 있는 것이다. 개지 않은 이불은 저를 개서 이불장에 넣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고, 지저분한 바닥은 저를 깨끗이 닦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으며, 설거지가 안 된 접시와 그릇들은 저를 빨리 닦아서 선반에 올려주셔야죠하고 말하고 있다. 읽지 않고 모아놓은 잡지와 신문들은 저를 빨리 보고 필요한 부분은 스크랩 해주셔야죠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고, 먼지가 내려 않은 TV저도 한번쯤은 닦아주셔야 주인이지하고 말하고 있다 그 외도 .........

 

한번 상상해 보라.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웨이터가 레스토랑에서 수많은 고객으로부터 수십 가지 메뉴의 음식 주문을 동시에 받고 있는 상황과 같다.

 

따라서 어지럽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집에 들어간 주인은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정리가 안 되고 지저분한 집에 살고 있을수록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 청소와 정리정돈을 할 용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무의식이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의 요구에 짓눌린 상황이다.

 

그러나 김연경처럼 모든 청소와 정리정돈을 최단시간에 마무리 짓는 사람은 집에서 누구보다 편하게 쉴 수 있고, 밖에 나와서도 집에 대한 걱정을 모두 잊고 오직 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우연히 떠난 유럽 여행에서 사람은 트렁크 하나만 있으면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리정돈 컨설턴트의 세계로 들어선 <정리정돈의 습관> 저자 고마츠 야스시는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리정돈의 귀재라고 말한다. 삶에서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과 머릿속을 늘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을 진행할 때 결단력과 실행력, 판단력이 빨라 업무속도가 빠르며 남보다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성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은 자신의 책상이다. 저명한 자기경영서 <정상에서 만납시다>를 쓴 지그 지글러는 깨끗한 책상은 성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낮은 직급에 머무는 사람일수록 서류 더미에 파묻혀 정신 없이 살아가고, 높은 직급에 오른 인물일수록 깨끗한 책상에서 판단력과 직관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어떤 책에서 깨끗한 책상은 한 인간을 자신의 꿈으로 날려보내 줄 꿈의 활주로라고 하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 항공모함에서 갑판 청소는 너무도 중요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갑판 위에 비닐 봉지라도 하나 떨어져 있으면 비행기가 이륙과 착륙을 하다 그것에 미끄러져 바다로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의 비행기 활주로처럼 보통 사람들의 책상은 자신의 꿈으로 자신을 데려다 줄 일과 독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활주로가 깨끗해야 비행기가 잘 뜰 수 있듯이 책상이 깨끗해야 꿈을 향한 자신의 도약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다.

 

김연경처럼 자신의 생활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라. 활주로를 청소하는 갑판청소원처럼 자신의 책상 위를 청소하라. 청결은 신성한 모든 공간의 공통점이다. 언약궤가 놓인 유대교의 성전에서부터 불교의 대웅전과 오늘날의 맥도날드와 디즈니랜드까지 청결한 공간은 기도와 꿈과 최상의 서비스와 환상이 존재하는 곳이다.

 

필자는 정리의 여제 김연경이 이처럼 월드클래스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런 정리정돈 습관과 청소 습관이었을 거라 믿는다.

 

 

 

김연경 출생의 비밀과 올림픽의 상관 관계

올림픽 때문에 너무 많은 걸 희생하지 않기를....”

 

김연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김연경의 올림픽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팬들은 김연경이 런던 올림픽에서 당시 우승했던 브라질을 예선에서 3-0으로 이기고도 부상 때문에 준결승에서 미국에게 패하고 3,4위 결정전에서 아깝게 일본에게 진 것 때문에 올림픽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을 못한 회한도 그 이유가 되지만, 김연경이 올림픽 메달에 간절히 매달리는 데에는 좀 더 다른 이유가 있다.


 

김연경은 태생 자체가 올림픽스럽다. 김연경의 책 <아직 끝이 아니다>를 보면 김연경의 어머니는 연경신을 잉태했을 때 꿈에서 거대한 푸른 용을 보았다고 한다. 온몸이 반짝이는 비늘로 뒤덮인 그 용은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솟아올랐는데 세상은 그 용의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 부근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콩처럼 작고 하얀 구슬이 꿰어 있는 목걸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콩알이 점점 자라더니 보석처럼 빛을 내며 메달 형상으로 자라났고 어느 새 금빛으로 반짝이는 메달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김연경이 태어난 해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다.

 

김연경의 어머니는 김연경이 상복이 터진 이유가 자기 태몽 때문이라면서 김연경이 타박을 할 때마다 자신을 잘 모시라고 한단다. 김연경도 우승과 메달에 그만큼 집중하는 자신을 볼 때 자기와 태몽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김연경은 올림픽을 제외한 국제대회에서 모든 상을 휩쓸었다. 한국 V리그와 일본 프리미어 리그, 터키 리그와 유럽컵,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했고 경기마다 MVP를 받았다. 런던 올림픽에서도 4위를 했지만 MVP를 받았을 정도로 전 세계 배구인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메달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터키 리그에서 활동할 때도 올림픽 금메달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제일 부러웠다고 한다.

 

필자는 김연경이 메달 수집광으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올림픽에 이처럼 매달린다고 보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을 실현하지 못한 것 같은 어떤 미련과 서른 한 살이란 전성기 기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해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심정, 비인기 종목에 머무르고 있는 배구 종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라 믿는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토너먼트 전승 우승 금메달 획득과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를 이기고 준우승을 차지한 2009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이라는 기록적인 흥행 덕분에 일찌감치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만 해도 2002년 월드컵 4강의 여파로 동네에서 아이들은 전부 축구만 했고 야구장엔 파리만 날렸다고 한다. 야구계에선 어떻게 하면 야구를 살리느냐를 놓고 모두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우승을 하면서 축구와 야구의 관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야구경기를 하는 날이면 온 동네가 시끄러워졌고, 야구장엔 여자들도 몰려가기 시작했다. 야구 선수 모자와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으며 동네 아이들은 축구 클럽에서 리틀 야구부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동네에 있는 축구 클럽이 없어졌고 2008, 2009년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거의 야구를 했다고 한다.

 

객관적인 기록도 이를 증명한다. 2006년 기준 야구선수들 현황을 보면 초중고교 대학선수들은 2826,400명이었다. 그런데 2015년 기준 45516,000명으로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김연경은 올림픽 준비를 위해 6년 동안 뛰었던 배구의 메이저 리그인 터키 아로마 리그의 활동을 접고 2017-2018 중국 리그로 이적을 감행했다. 오직 대한민국 국가대표 일정에 맞춰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것이 김연경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사전에 중국 리그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김연경은 월드 클래스로 차마 못 볼 것을 보았고 배구여제가 겪지 말아야 할 것들을 겪었다. 배구가 정치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목도했고, 자신이 중국배구의 선전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겪어야만 했다.

 

정말 이번 2017-2018 중국 챔피언 시리즈는 중국이란 나라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클래스를 철저히 자국의 선전 도구로 이용해 먹는 음흉한 모략에 치가 떨린다.



 

권모술수 4자성어가 난무한 중국 챔피언 리그

 

배구 여제 김연경이 작년 6위 상하이팀을 이끌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상하이를 준결승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디펜딩 챔피언 장쑤는 블로킹 넘사벽 바이선전의 위안신웨와 득점 2위 저장의 에이스 리징을 데려온다.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합종연횡(合縱連衡)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김연경의 활약으로 상하이가 장쑤를 무너뜨리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고, 세트 스코어 3-2로 앞장서 가자 상하이는 MVP 자리를 놓고 결승전은 끝나지도 않았는데 공신들의 자리다툼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막장 오분전 논공행상(論功行賞)이다.

 

6차전, 7차전, 상하이팀은 그동안 자신을 정규 시즌과 결승전까지 오르게 한 김연경을 공격 3옵션으로 철저히 배제한다. 쩡춘레이 MVP 만들기와 김연경 죽이기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미양의 토스는 쩡춘레이와 장이찬에게 집중되고 김연경에게는 똥볼처리 역할이 맡겨졌다. 그야말로 사냥개는 사냥감을 잡을 때까지만 이용하고 사냥이 끝나면 잡아먹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현장이었다.

 

마지막 5세트 사력을 다한 김연경에 의해 14-15까지 쫓아갔다가 마지막 어려운 2단 토스 공을 때리다 공이 선을 넘어가 결국 상하이는 톈진에 석패를 한다. 결승전 승리의 주역은 18살의 리시브 면제 레프트 윙 리잉잉, 패배의 책임은 월드 클래스 김연경에게 돌아갔다.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현장이었다.


 

이번 상하이의 패배와 김연경의 실패로 김연경의 4개국 리그 우승 신화와 MVP 달성 기록은 무너졌고, 랑핑에 의해 주도된 중국의 체계적인 유소년 훈련 프로그램은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거친 월드클래스 김연경보다 뛰어난 것이 증명된 것이다. 중국 리그는 터키 리그나 일본 프리미어 리그나 한국 V리그보다 강하다는 왜곡된 믿음을 중국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상하이의 내홍과 토사구팽으로 톈진과 리잉잉은 승리를 얻었고, 중국 공산당은 터키 리그를 정복한 김연경도 중국 뉘파이 정신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체제 선전의 유용한 도구를 얻었다. 그야말로 어부지리(漁夫之利)

 

이제사 김연경이 터키 리그 최고 명문 구단인 엑자시바시로 이적하게 되어 정말 다행지만, 만일 상하이 잔류나 중국 다른 구단으로 옮겼더라면 더 심한 결과를 볼 수도 있었다. 만약 내년에 김연경이 중국 리그에 남는다면 김연경에 대한 중국의 당 차원의 대대적인 집중 견제로 부진과 슬럼프, 김연경의 부상 기사를 접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공산당과 언론은 김연경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시나스포츠 등 중국 매체들이 김연경을 자국 대표 선수들과 왜곡된 기준점을 가지고 비교하여 김연경의 위치를 주팅과 리잉잉 사이 수준의 존재로 격하 시켰고, 준프로 리그인 중국 수퍼 리그의 흥행과 선전에 이용했다. 가장 값진 왜곡 성과는 세계 최고의 배구 스타 김연경을 랑핑이라는 중국의 정신적 지도자의 수하로 복속시킨 것이다.

 


링핑도 배구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스포츠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뛰어난 선수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탈바꿈한 랑핑이 걸어간 길은 배구 지도자를 꿈꾸는 김연경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선수 이력만으로 한정해 볼 때 기술적 완성도와 멘탈에 있어 랑핑은 김연경과 동일한 급으로 논할 상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배구의 모든 것을 통달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만이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연경은 배구 선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는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하이TV들에 의한 간계에 의해 어떻게 해서든 김연경이 랑핑을 존경한다는 말을 받아내게 했고, 그것은 그들의 뉘파이 (중국 여자 배구 애칭) 정신을 강화시키는 데 이용되었다.

 


 

닝보 대첩, 김연경과 이재영의 대중국 설욕전

2018 FIVB VNL 중국전 대승리 3-0(25-15, 25-15, 25-13)

 

그러나 역전의 여왕, 김연경은 지난 517일 중국 닝보에서 열린 2018 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 중국과의 3차전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을 상대로 역대급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이날 경기는 중국에선 닝보 참사나 닝보 참변으로 불리며, 중국 시나스포츠는 이 경기를 2009년부터 한중 국가대표가 가진 총 22차례 경기 가운데서 최악의 경기로 기록하였다. 특히 지금까지 중국이 한국과 가진 75차례 경기 중에서 중국 안방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한국에게 진 경우는 없었기에 이 날 경기 후 중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랑핑이 이끄는 중국 대표팀은 전날까지 한 세트도 빼앗기지 않는 완벽한 2승으로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김연경과 이재영, 김희진의 삼각편대가 고른 득점을 올린 한국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중국 대표팀은 김연경의 공격을 막기 위해 60% 이상의 서브 목적타를 김연경에게 넣었으나 김연경은 전혀 흔들림 없이 택배 리시브로 이효희에게 정확하게 공을 전달했고 세터 이효희는 중국 블로커를 따돌리며 이재영과 김희진에게 때리기 좋은 토스를 올려 쌍포 화력이 살아날 수 있었다.

 

양효진과 김수지 중앙 블록은 중국의 주포 리잉잉과 류샤오퉁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여 리잉잉을 5점대에 묶어버렸고, 임명옥과 김연경은 묘기에 가까운 디그를 선보이며 중국의 강력한 스파이크를 막아냈다.

 

중국은 201cm 위안신웨의 높이를 활용한 중앙공격을 앞세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지만, 고비고비마다 중국의 수비진을 김희진의 강력한 스카이 서브와 이나연의 마구 서브가 심하게 흔들어댔다.

 

다급해진 랑핑 감독은 수차례 작전 타임을 불러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지만, 중국팀은 리시브 불안과 블로킹에 막혀 자기 팀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시종일관 흔들렸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물론 김연경이었다. 서브 목적타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택배 리시브로 세터가 자유자재로 공을 토스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간간히 레프트 윙 대각 공격과 강력한 후위 백어택으로 중국 수비진을 와해시켰다. 그리고 블로킹 감각도 날카로웠다. 또 어렵게 리시브 된 똥볼들을 잘 처리하여 어렵게 수비된 공이 헛되지 않게 했고, 평소 보다 수비 공간을 넓혀 묘기에 가까운 멋진 디그를 선보였다. 김연경과 임명옥의 수비력 안정이 팀 승리의 발판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재영과 김희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이재영은 김연경과 함께 16점씩을 올리며 국내 최고의 레프트 윙의 면모를 선보였다. 이재영의 대각 공격은 빠르고 예리하게 전개되어 중국의 장신 블로커들의 방어를 무력화 시켰다.

 

김희진은 전날까지 타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무력한 경기를 했었지만, 이날은 평상시 자신의 기량을 회복하며 10점대 부활포를 선보였다. 김희진의 회복은 우리 팀에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덕분에 쌍포가 가동되어 중국 블로커를 분산시킬 수 있었고, 보다 다양한 공격 방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날의 승리는 김연경과 이재영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김연경은 이날 승리로 중국 리그에서 당했던 수모를 해소하고 중국 언론의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었고, 이재영은 작년 일본 나고야에서 펼쳐진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에서 중국에 당한 25-4의 치욕스런 패배를 설욕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날의 경기 승리를 네 가지 차원에서 값진 경기 결과였다고 본다.

 

첫째, 중국 챔피언 리그의 진정한 승자는 김연경이였다. 이날의 경기 결과는 중국의 임대룰과 미양 세터의 요상한 볼 배급, 중국 측의 정치적 음모가 없이 공정한 승부가 펼쳐졌다면 김연경은 상하이를 우승시킬 수 있었고, 경기의 MVP는 당연히 김연경의 몫이 되었을 것이란 점을 간접 증명해 주었다.

 

둘째, 김연경 신화는 랑핑 신화보다 강하다. 랑핑과 리우 올림픽의 영웅들인 그의 애제자들은 홈그라운드의 잇점에도 불구하고 김연경이 이끈 한국팀을 이길 수 없었다. 주팅과 장창닝, 쩡춘레이가 없어서 중국팀이 한국에게 무릎 꿇었다고 중국인들은 정신 승리를 주장하지만 이들과 함께 모두 경기를 치뤄본 김연경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이 날 이들이 모두 있었더라도 한국팀은 승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국가적 인물의 중요성과 지도자란 측면에서 랑핑이 위대한 존재일지는 모르겠으나 배구라는 스포츠만을 기준으로 김연경은 랑핑보다 더 위대한 선수임에 틀림없다.

 

셋째, 월드클래스 김연경은 주팅 리잉잉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중국 언론은 시종 일관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김연경과 공격 위주 선수인 주팅과 리시브 면제 리잉잉을 오직 득점력 하나만 가지고 비교해왔다. 함께 뛰는 선수들의 수준도 무시했다. 바키프방크의 주팅과 톈진의 리잉잉이 상하이에서 뛰던 김연경과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단적으로 토스를 올려주는 바키프방크의 나즈와 톈진의 야오디는 김연경에게 이상한 공만 올려주는 상하이의 미양과 너무나 큰 수준 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점들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철저히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번 한중전을 통해 올해 한국 V리그 최고의 세터 이효희의 토스만으로도 딩샤와 야오디의 공을 받는 리잉잉보다 월등한 김연경의 공격력을 볼 수 있었다. 득점력 차이는 165, 수비 공헌도의 차이는 비교 불가능했다.

 

넷째, 김연경이 건재하면 올림픽 메달 획득도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다. 세계랭킹 1위 중국을 그것도 원정에서 매 세트 당 10점 이상 차이로 셧아웃 승리를 거둔 한국팀의 경기력은 올림픽 메달 전망 가능성을 밝게 한다.

 

그러나 필자는 어디까지나 김연경의 건재가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김연경이 부상 없이 현 기량을 유지하며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올림픽 메달도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현 차해원 감독의 스피드 배구는 정체성도 모호할 뿐 아니라, 현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개별 특징과 부합되지 않는 면이 많다. 스피드 배구를 강조하다보면 국가대표 주력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이 우려된다. 이 점 한국 여자배구 스피드 배구 전략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시간이 된다면 따로 글을 올리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김연경 선수의 올림픽 메달에 대한 그 간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 하지만, 전성기 커리어와 건강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올림픽 메달을 추구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메시와 호날도도 자신의 팀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킬 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메시와 호날도도 월드컵 금메달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메시도 자신의 국가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위해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 팀 생활을 접고 남미 리그로 돌아오는 경우는 없었으며 또 그것을 바라는 아르헨티나 국민도 없었다.

 

필자도 우리나라 여자배구팀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계 배구 강국들에 비해 인적 투자와 인프라 구축에 상당히 인색해 왔던 우리들의 실정을 생각해 볼 때 일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의 희생만으로 국제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상당히 행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메시와 호날도가 자신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을 왜 우승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축구나 배구는 단체경기이다. 어떻게 한 개인이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가?

 

그보다는 보다 생산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즉 어째서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과 같은 나라에서 메시나 호날도와 같은 뛰어난 축구 영웅이 나타날 수 있었는가 그 개인의 재능과 남다른 노력을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찬가지로 김연경이 왜 우리나라에 올림픽 메달을 가져오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그보다는 어떻게 우리나라와 같은 배구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월드클래스 김연경이 나타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 후세를 위해서도 더 유익한 질문이다.

 

이번 글은 그런 의미에서 김연경이란 배구 영웅이 한국이란 배구의 불모지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는 과정을 추적한 글이다.

 


 

김연경의 엑자시바시 선택과 행복배구

 

일찍이 필자는 좋아하는 스타가 많았다. 프로야구, 축구, 영화, 드라마, Kpop 등 다이아몬드 구장과 잔디 구장,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는 수많은 스타들의 열렬한 팬으로서 일찌감치 덕질의 기쁨을 구가하던 사람이었다. 필자의 대중문화 사냥은 늘 즐거운 활동이었다. 그런데 김연경의 팬이 된 후 그 덕질은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가 훨씬 많아졌다. 김연경 팬카페에서 어떤 팬들도 고백 하던데, 필자 역시 여지껏 김연경의 팬노릇만큼 어려운 덕질은 없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팬들의 마음은 스타와 일심동체로 스타들의 인생에 빙의하여 스타들의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법이다. 그런데, 김연경이 가는 곳에 팬심으로 동참하다 보면 너무 억울할 때가 많았고 주변에 이용만 당할 때가 많아서 팬심으로서 짠 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김연경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그야말로 배구로 말하면 배구 역사에서 다시 나올 수 없는 최고 기량과 멘탈을 가진 선수이다. 모든 감독들이 그녀를 원하고, 수많은 배구선수들이 한번만이라도 김연경과 뛰어보고 싶은 그런 꿈을 갖게 만드는 현대배구의 신화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 번도 그 수준만큼 제대로 대우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페네르바체에서는 임금체불로 허울 좋은 세계 연봉퀸 역할을 했고 받쳐 주는 선수가 없어 소녀가장 역을 하며 혹사 과정을 밟았다.

 

소녀가장 역할은 중국으로 이적한 상하이 광밍 유베스트 시절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천신만고 끝에 정규 리그 우승을 이끌고 결승전까지 힘겹게 올라갔으나 중국 공산당의 배후 조종으로 4개국 우승 달성과 이적 첫 해 MVP 수상이라는 기록이 깨졌다. 그리고 일본 팬들이 배설물 세터라고 부르는 미양 세타의 농간에 세계 최고 공격수가 공격 3옵션과 우승의 들러리 역을 하며 믿었던 상하이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톈진의 18세 리시브 면제 공격수 리잉잉과 비교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은 김연경이 터키 엑자시바시와의 계약으로 중국을 떠난 지금도 김연경에 대한 보복을 계속하고 있다. 발리볼네이션스 홈페이지에는 그날그날 경기에 대한 선수 기록이 나오는데, 김연경을 비롯한 한국팀의 기록은 계속 수정되고 득점과 리시브 성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늘날짜로 김연경의 공격 득점이 121점에서 91점으로 수정되었고, 리시브 성공률도 3%로 떨어졌다, 리시브 면제 리잉잉의 리시브 성공률이 14%로 기록되어 있으니 중국의 통계조작은 참으로 어의가 없다. 나중에는 기록만 남을 텐데, 후세들은 김연경을 어떻게 기억할지 걱정이 된다.


 

그런데 김연경의 팬들에게 최근 즐거운 일이 생겼다. 팬들이 그동안 간절히 바랬던 김연경의 엑자시바시 행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승부조작국 중국을 탈출한 것이 기쁘다. 이젠 미양의 얼굴을 다시 볼 필요도 없고, 시나스포츠의 김연경 인신공격성 기사들에 김연경이 다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임금체불로 배구여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받쳐줄 선수가 없어 홀홀 단신 팀 승리를 견인해야 했던 소녀가장 배구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엑자시바시에는 보스코비치라는 세계 최고의 아포짓 윙이 있어 쌍포 가동으로 김연경의 공격 부담을 덜 수 있고, 올라운드 플레이어 라르손이 있어 수비불안에 제2의 리베로 역을 하던 상하이에서와 같은 체력적 부담을 이젠 겪지 않아도 된다. 터키 자국 세터 감제와 이전 페네르바체에서 호흡을 맞췄던 에즈기는 상하이의 세터 미양과 비엔위치엔보다 김연경에게 좋은 토스를 올려줄 것이라 기대 되며, 브라질 출신 팀 전문 닥터와 트레이너들도 훌륭하다고 한다. 김연경도 엑자시바시가 선수들의 몸 컨디션과 체력을 철저히 관리해 주는 곳이라 기대가 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업이나 스포츠 구단에는 두 종류의 기업과 구단이 있다. 인재를 자원으로서 투자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조직과, 반대로 인재를 소모품이나 비용으로 보는 조직으로서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조직이다. 지금까지 김연경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주로 후자와 같은 모습의 팀과 조직에서 뛰었다. 인재를 위해 투자와 육성은 하지 않고 단기적 팀 성적과 코칭 스태프들의 스펙쌓기를 위해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그런 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해 왔다.



 

그런데 엑자시바시는 선수들을 팀의 자원으로 보고 선수들의 체력과 선수들의 커리어를 총체적으로 잘 관리해주는 팀이라고 하니 김연경이 이제야 제대로 관리를 받으며 도쿄 올림픽까지 컨디션 조절을 하며 마지막 전성기를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겠구나 하고 기쁜 마음이 든다. 이제야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팀에 들어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엑자시바시는 현존 세계 최고의 호화 군단이 뛰고 있는 최고의 인적 구성을 가진 명문 구단이다. 클럽 배구에 있어선 세계 최고 리그의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뛰는 팀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두 월드클래스다. 백업 멤버들도 그만하면 훌륭하다.

 

김연경의 팬들은 김연경이 엑자시바시에서 뛰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2년간 세계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펼치는 그림 같은 명승부를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치 프로야구의 류현진과 추신수의 활약을 보면서 미국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인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수준 높은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아직 류현진이 월드시리즈 결승에 올라 경기하는 모습이나 손흥민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UEFA컵에서 뛰는 것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여자배구에 있어서는 클럽 배구의 정상 리그인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최강의 공격수로 뛰는 김연경을 보는 호사스런 기쁨 또한 누릴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레프트 윙 김연경과 아포짓 윙 보스코비치의 쌍 날개와 올라운드 플레이어 김연경과 조던 라르손의 쌍두 마차가 이끄는 엑자시바시 팀이 올해 과연 어디까지 비약할 수 있을지 2018-2019 시즌 터키 리그가 엄청 기대 되는 바이다.


 

이미지 출처: CEV 홈페이지, 김연경 인스타그램, 조선일보, KBSN <식빵 언니는 울지 않는다>, FIVB. SPOTVNEWS, 대순회보, 오마이뉴스, 에펨코리아, 아시아경제, 뉴스원, MBC <나혼자산다>, 스타인뉴스, 페네르바체 홈페이지, 스포츠타임즈, 스포츠동아, 경기일보, KBS <런닝맨>, KBS, 한겨레, 미주 헤럴드경제, 연합뉴스, 올댓부츠, 디시인사이드 김연경 갤러리, 웨이보, 인스티즈, 뉴시스, 흥국생명 홈페이지, 경향 QQ,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TOPSTARNEWS, 일간스포츠, 신화스포츠, 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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